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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도 아닌 주제에ㅋㅋ” “마카롱 돌려”···이러니 젊은 공무원들 떠나지

조해람 기자

채용경로 비하하며 “어디 가서 공무원이라고 자랑하지 마요”

공직사회 부조리한 조직문화에 염증···2030세대 ‘퇴직 러시’

“공채도 아니시면서 그러시니 참 웃기네요?”

“공무원 쉽게 돼서 참 좋겠어요, 누구는 힘들게 시험 쳐서 들어왔는데ㅋㅋㅋ”

경향신문 일러스트

경향신문 일러스트

지난해 8월, 한 국가기관 지방관서에서 수습 과정을 밟고 있던 계약직 신입직원 A씨는 선배 공무원인 B씨로부터 황당한 메시지를 받았다. 집까지 차를 태워주겠다는 B씨의 제안을 거절하자 돌아온 답이었다. B씨는 A씨의 채용경로를 비하하며 “어디 가서 공무원이라고 자랑하지 마요 쪽팔리니깐 ㅋㅋ” 등 모욕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B씨는 평소 다른 공무직이나 계약직 직원들 앞에서도 “나는 공무원이라 잘못을 해도 자를 수 없다”는 등 직종에 따른 위화감을 조성하는 말을 하곤 했다.

B씨는 공채시험을 거친 다른 공무원에게도 ‘시보기간이 끝나면 마카롱을 돌려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보란 공채에 합격한 공무원이 정식 임용되기 전 일정 기간 실무를 하며 일을 배우는 제도다. 시보 종료 때 다른 직원들에게 떡을 돌리는 공무원의 ‘시보떡 문화’가 악폐습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한 술 더 떠서’ 마카롱을 돌리라고 강요한 것이다.

공채신분제, 시보떡···“근절돼야 할 문화”

젊은 공무원들의 ‘퇴직 러시’를 부르는 공직사회의 부조리한 조직문화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채용 경로로 사람을 차별하는 ‘공채신분제’부터 ‘시보떡’까지 불합리한 관습이 잘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사용자’인 정부, 지자체가 나서서 공직사회의 부조리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B씨의 징계의결서를 보면 채용경로 비하와 시보떡 요구 등으로 징계위원회에 오른 B씨는 ‘견책’ 처분을 받았다.

B씨는 혐의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나름의 항변을 했다. B씨는 징계위에서 수습사원 A씨에게 한 비하발언을 두고 “다른 직원들에게도 데려다주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며 “A씨가 어린 나이에 업무를 하는 것이 대견하다고 생각했지만, A씨가 (차량 탑승 제안에)‘그쪽’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먼저 무례하게 나와 기분이 상했다”고 해명했다. ‘마카롱 시보떡’을 두고는 “과거 본인이 마카롱을 돌렸을 때 반응이 좋아서 강요가 아니라 제안을 한 것”이라고 했다.

네이버 포털에 ‘시보’를 검색하면 나오는 각종 시보떡 판매게시글. 네이버 캡쳐

네이버 포털에 ‘시보’를 검색하면 나오는 각종 시보떡 판매게시글. 네이버 캡쳐

A씨의 해명에도 징계위는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징계를 내렸다. 징계위는 “제보자가 낸 대화 내용을 보면 상대방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발언이 명백하다. ‘못 자른다’는 발언 역시 직종의 차이를 거론하며 조직 내 위화감을 주는 행위”라며 “시보떡 등 관행은 근절돼야 할 잘못된 문화인데도 혐의자는 먼저 잘못된 관행을 부추기는 발언을 해 시보공무원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고 조직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켰다”고 했다. 징계위는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경징계인 견책 처분을 내렸다.

공직사회의 경직된 조직문화는 저임금·장시간노동 등과 함께 2030세대 공무원들의 주된 퇴사 사유다. 지난해 한 온라인 공무원 커뮤니티에는 “시보를 끝낸 동기가 형편이 어려워 백설기 하나만 돌렸더니 옆 팀 팀장이 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동기가 한참을 울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세종시의 한 20대 공무원이 숨진 채 발견됐는데, 유족들은 숨진 공무원이 과중한 업무와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고 주장한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7월 발표한 설문조사를 보면 중앙·지방 공공기관 노동자 23.9%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지난 8월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재직기간 5년 미만인 공무원 퇴직자는 2017년 5181명에서 지난해 1만693명까지 늘었다. 5년차 미만 공무원 퇴직자가 1만명을 넘은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5년차 미만 공무원 퇴직자는 지방직(70%)이 국가직(30%)보다 많았다. 인사혁신처는 “일과 직업에 대한 인식변화, 경직된 조직문화 등의 이유로 신입 공무원의 조기 퇴직이 늘었다”며 공직문화를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불법촬영하고도 ‘성실했으니 참작을’···“기강 바로잡아야”

전 의원이 공개한 징계의결서에는 외부에서 성범죄 등 범죄를 저질러 중징계를 받는 등 심각한 기강해이 사례도 포함돼 있다. 다른 지역 공무원 C씨에 대한 징계의결서를 보면 C씨는 2021년 7월 지하철역에서 휴대전화로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 검찰은 C씨를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죄가 인정되지만 정식 재판에 넘기는 대신 약식명령을 청구하는 것)했다. C씨는 2017년 8월에도 다른 근무지에서 불법촬영이 적발돼 사법적으로는 기소유예를, 직장에서는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

C씨는 2021년 7월 불법촬영 미수 건으로 열린 징계위에서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며 보류를 요청했다. 자신은 불법촬영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검찰의 약식기소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하려 하니 시시비비가 가려질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C씨는 징계위에 “2017년 불법촬영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뒤 전보돼 지금껏 성실히 생활하고 업무에 임했다”며 “공판 전에 징계가 결정된다면 억울하니 1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징계를 보류해달라”고 했다.

2019년 3월21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국여성연합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버닝썬 관련 공권력 유착 진상규명과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2019년 3월21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국여성연합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버닝썬 관련 공권력 유착 진상규명과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그러나 1심 법원은 C씨의 불법촬영 미수를 사실로 인정하며 검찰이 요청한 약식명령대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판결이 나왔지만 C씨는 “1심 법원이 신중한 판단 없이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며 부당한 판결을 했고, 항소심에서 다시 결백을 주장할 예정”이라며 “그간 공무원으로 일하며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업무에 임했으니 최대한의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징계위는 C씨의 요청을 기각하고 해임 처분을 의결했다. 징계위는 “1심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피해자 진술 외에도 여러 증거에 기초해 법 위반을 판단했고, 본 위원회가 사건기록을 다시 확인해봐도 1심 법원의 판단과 다르게 판단할 근거나 당위성이 없다”며 “C씨가 피해자와 합의하고 평소 업무에 성실하고 근무성적과 평판이 좋았던 점을 참작하더라도 C씨의 비위는 최근 사회문제로 크게 대두되는 불법촬영 등 디지털성범죄로 반드시 중징계의결을 요구하도록 규정돼 있다”고 했다. 과거 동종 범죄 전력이 있는 점도 중징계 사유가 됐다.

전 의원은 “많은 젊은 공무원들이 경직되고 불합리한 조직문화에 지쳐 공직사회를 떠나고 있는데도 여전히 여러 부조리가 확인되고, 외부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등 기강해이도 심각하다”며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각별히 신경쓰고 엄격한 신상필벌로 조직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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