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통약자는 전체 인구의 30%에 달합니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어린이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교통수단을 누구나 이용하는 대중교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휠체어 장애인이 지하철을 갈아타려면 비장애인보다 얼마나 더 이동해야할까. 대부분 지나쳤을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서울 지하철 환승역을 대상으로 환승 거리를 분석한 논문이 나왔다. ‘교통약자 측면의 도시철도 환승역 환승보행 서비스수준 평가방법 연구’ 논문을 쓴 주인공은 13년차 건설사 직원 정예원씨(39). 지난달 7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난 정씨는 “교통약자들이 불편을 겪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공간의 설계 기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가 교통약자의 환승을 주제로 석사 학위 논문(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을 쓰게 된 것은 그의 업무로부터 비롯됐다. “민간투자 사업 입찰의 설계 제안서를 쓰는 일을 하면서 설계지침이나 관련법령을 유심히 보게 됐어요. 장애인에 대해서는 승강기나 경사로 등 시설 규정은 있습니다. 하지만 환승의 경우 장애인 기준이 없었어요.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 환승역 69개역 중 44개역의 환승경로 58개를 분석 대상으로 했다. 장애인이동권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의 ‘교통약자 환승지도’에 나온 경로별 환승시간에 장애인 보행속도 0.78m/s을 곱해 교통약자 환승거리를 구했다.
논문에 따르면 일반인(비장애인) 환승거리는 최소 35m, 최대 355m였다. 환승시간이 최대 6분을 넘지 않았다. 반면 교통약자 환승거리는 최소 234m, 최대 1404m에 달했다. 거리도 길지만, 편차도 컸다. 승강기 배치가 역마다 뒤죽박죽이라는 얘기다. 평균 환승거리는 일반인은 150m, 교통약자는 725m로 약 4.8배 차이 났다.
최악의 환승역은 2·7호선 건대입구역이다. 일반인(77m)과 교통약자(1404m) 환승거리 차이가 18배에 달했다. “건대입구역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7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지하2층 승강장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외부도로를 이동해 횡단보도를 건너고 다시 지상3층 승강장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30분도 걸릴 수 있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비롯해 여러 경전철 노선에 대한 계획이 세워지고 있다. 정씨의 제안은 국토교통부 ‘도시철도 정거장 및 환승·편의시설 설계지침’에 교통약자 환승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자는 것이다. 지침이 바뀌면 건설사들도 교통약자를 고려한 환승 설계를 해야만 한다. 그는 논문에서 교통약자 환승시간 기준선을 10~15분으로 제시했다. “앞으로 만들어질 도시철도 노선들은 환승역이 많습니다. 현재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교통약자의 수는 늘어날 수 밖에 없고요. 교통약자를 고려한 환승 설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도 논문을 쓰게 된 계기였다. “사실 저도 전장연 시위 때문에 지각을 한 적이 있어요. ‘왜 저렇게까지 할까’ 의문이 들더라고요. 엘리베이터가 없고, 승강장 틈에 바퀴가 빠지는 현실을 보게 됐죠.” 지난 5월에는 서울역에서 9살 딸을 일부러 휠체어에 태우고 환승을 시도했다. “딸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재밌어 하더라고요. 땡볕에서 고생했습니다.(웃음) 1호선에서 공항철도로 가는 환승경로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문의하니 그냥 다른 역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울컥했습니다. 한국에서 약자에 대한 대우가 이 정도였구나 싶었죠. 딸에게 부끄럽기도 했고요.”
정씨는 최근 방문한 프랑스 파리 거리에서 저상버스만 다니는 모습이 인상깊었다고 했다. 안전판이 내려왔다 접히는 모습을 실제로 보니 낯설기도 했다. 버스 내부의 문 주변은 교통약자들과 휠체어를 위한 공간이었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다고 느꼈어요. ‘대중교통’이라는 이름답게 배제되는 사람이 있어선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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