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장벽의 도시
투명장벽의 도시

기획취재팀 | 김보미(전국사회부) 배문규·김한솔·김지혜(스포트라이트부)

2001년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이동권 시위. 영화 <버스를 타자>의 한 장면. 박종필추모사업회 제공

2001년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이동권 시위. 영화 <버스를 타자>의 한 장면. 박종필추모사업회 제공

지난 4월 방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서울로 장거리 통근을 하는 경기도민의 애환을 그려내 공감을 받았다. 드라마 속 삼남매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산 넘고 물 건너 서울로 출근했다. 출근 버스를 타느라 전력질주를 하고 회식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야 하는 모습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출퇴근의 애환조차 누리지 못하는 것이 장애인들의 현실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의 핵심 요구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이다. 지하철, 저상버스, 특별교통수단 등 장애인들 교통수단의 확충 요구도 포함돼 있다. 지방 소도시에서는 장애인 교통사정이 더욱 열악해 비용이 비싼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이동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열린 ‘장애인 이동권 지역 간 차별 철폐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선 장애인 이동권의 도시와 농촌간 격차에 주목했다. “대도시권 역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지역은 더 열악하다”는 것이다.

지켜지지 않는 저상버스 도입률

국토교통부 2020년 교통약자이동편의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시내버스 3만5445대 중 저상버스는 9840대로 도입률이 27.8%에 불과했다. 서울만 57.8%로 절반을 넘겼을 뿐 광역시는 20~30% 수준이었다. 경기(14.1%)를 비롯해 강원, 충남, 전남, 경북 등은 10%대에 머물고 있다.

저상버스가 아예 다니지 않는 기초자치단체도 많다. 경기 군포·의왕·안성·연천, 강원 태백·삼척·동해, 충북 제천, 충남 공주·계룡, 전남 남원, 경북 영주·상주·문경 등 14곳은 저상버스가 한 대도 없었다.

저상버스는 출입구에 계단이 없고 차체 바닥이 낮으며, 휠체어 승강장비와 교통약자용 좌석을 갖춘 버스다. 휠체어와 유아차가 오르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노약자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정부는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라 5년마다 관련 계획을 세운다. 저상버스 도입률 1차 목표는 31.5%, 2차는 41.5%, 3차는 42%였다. 하지만 실제 도입률은 1차 12%, 2차 22.3%, 3차 27.8%에 그쳤다. 지난달 발표된 4차 계획에선 목표를 62%로 세웠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10년 안에 저상버스 도입률 100% 달성도 불투명해 보인다.

버스도 지하철도 없으면

저상버스가 부족하고, 지하철도 없는 지역에서는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특별교통수단은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한 차량이다. 국토교통부는 보행불편 장애인 150인당 1대로 기준을 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정대수를 넘긴 지역은 경기(112.8%)·경남(105.9%) 두 곳뿐이었으며, 서울은 85.1%에 그쳤다. 부산(56.4%)과 인천(57.3%)은 법정대수의 절반을 겨우 넘겼다.

보급률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운영 방식이다. 서울의 장애인콜택시는 622대인데 야간(밤 11시~오전 7시)에 운행하는 차량은 단 20대이다. 부산은 장애인콜택시 181대 중 야간 운행 차량이 4대에 불과했다. 늦은 밤 아프거나 큰일이 생겼을 때 장애인은 이동할 수 없는 것이다.

지자체마다 운행시간, 운행범위, 이용방법이 제각각인 것도 문제다. 지역에 따라선 야간 운행을 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경기의 한 지역에선 하루 전 예약해야만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고, 병원 등 의료서비스 이용 목적이 아니면 인근 지자체로 이동할 수도 없었다.

이재민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사무국장은 “지난해 12월 교통약자법 개정으로 교체·폐차시 저상버스 의무도입 규정이 시행되었지만, ‘저상버스 도입이 어려운 노선에 대한 예외 조항’이 있어 사실상 의무라고 보기도 어렵다”며 “저상버스 도입이 가능하도록 예산과 패널티를 마련하고, 저상버스 보급을 심사하는 민관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앙정부 책임성 강화가 필요하다. 장애인 이동수단에 국비를 투입해 실제 법이나 계획이 이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속버스는 여전히 ‘그림의 떡’

고속·시외버스는 저상버스가 전무하다. 1만여대의 고속·시외버스는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대상에서 빠져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1월 저상버스를 시외·고속·광역버스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도입 시기나 비율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발표한 4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에서 고속·시외버스 노선 중 철도 이용이 어려워 버스 외 대체수단이 없는 노선을 중심으로 휠체어 탑승 가능 버스 도입을 확대한다고만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1월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기획재정부 장애인권리예산 반영 촉구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노후 시내버스, 마을버스 등을 교체할 때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한 내용 등을 담은 교통약자법에 여러 한계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헌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1월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기획재정부 장애인권리예산 반영 촉구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노후 시내버스, 마을버스 등을 교체할 때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한 내용 등을 담은 교통약자법에 여러 한계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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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장벽의 도시①] 대도시는 지하철이라도 있지만…‘장애인 이동권 지역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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