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멈추자 일상이 멈췄다···“거대 플랫폼 의존 사회 돌아봐야”

이유진 기자    이령 기자
카카오 멈추자 일상이 멈췄다···“거대 플랫폼 의존 사회 돌아봐야”

“새벽 4시40분부터 영업을 했는데, 콜이 없어서 거리에 나오신 분들만 태우고 있어요. 아까 다른 기사분 만났는데 그냥 집에 돌아간다고 하더라고요.”

16일 오전 기자와 만난 택시기사 전모씨(61)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전씨는 매월 3만9000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카카오 택시 호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전날부터 이 서비스가 먹통이 돼 전씨의 영업도 큰 차질을 빚은 것이다. 그는 “어떤 기사는 시간당 2만원을 벌다가 어제는 4시간 일하고 2만5000원 벌었다고 하더라”며 “카카오가 문어발처럼 (사업을 벌여) 난리인데, 이런 사고가 나면 대처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카카오 서비스 장애는 전날 발생한 경기 성남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가 원인이다. 전날 오후 3시30분쯤부터 먹통이 됐던 카카오톡은 이날 오전 10시간여 만에 일부 복구됐으나, 데이터센터 서버 복구율은 37.5%에 불과한 상태다.

국내 최대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에 역대 최장 시간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자 카카오톡뿐만 아니라 카카오택시, 카카오페이, 카카오커머스 등 모든 관련 서비스가 멈춰섰다. 영업에 차질을 빚은 소상공인부터 메신저 불통으로 발이 묶인 시민까지, “일상이 멈췄다”는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시민 대다수가 일상 생활에서 카카오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절감했다는 반응, ‘카카오 의존 사회’의 위험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카카오톡 접속장애

카카오톡 접속장애

특히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장애는 시민의 삶 전반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주말을 맞아 강원도 춘천에 있는 본가를 찾은 이모씨(30)는 코레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15일 오후 3시7분 왕십리행 표를 구매했다. 이후 청량리역에서 하차한 이씨는 앱 승차권 QR코드를 찍고 개찰구로 나가려 했으나 카톡 계정을 연동해 로그인한 코레일 앱이 작동하지 않아 역 내에 발이 묶였다. 이씨는 “결국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통과했다”며 “1300원의 추가 요금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카카오톡으로 선물받은 기프티콘을 사용하기 위해 가족과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방문한 김성진씨(49)도 카카오톡 먹통에 애를 먹었다. 김씨는 “(앱이) 금방 복구될 것으로 기대해 저를 포함한 여러 손님이 식당에서 대기했다”며 “1시간이 넘게 카카오톡 앱이 실행되지 않아 결국 카드 결제를 하고 나왔다”고 했다.

카카오 서비스를 이용하는 자영업자들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서울 강서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A씨는 “카톡 먹통으로 하루 영업이 망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이용객의 절반 이상이 카카오헤어샵 서비스를 통해 방문 예약을 하는데, 서비스가 먹통이 돼 예약 손님의 발이 끊겼다”며 “예약 손님에게 알람이 가지 않은 것은 물론 새로운 예약도 받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카카오커머스에 입점한 한 제과점주는 “어제 하루 주문량이 ‘0건’인 상황”이라며 “복구까지 장사를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 누적 가입자가 3800만명에 이르는 카카오페이 오류도 불편을 초래했다. 한 편의점주는 “카카오페이 결제가 되지 않자 일부 손님들이 화를 내며 돌아가기도 했다”며 “우리도 억울한 상황”이라고 했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 ‘안전신문고’ 공지 갈무리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 ‘안전신문고’ 공지 갈무리

카카오 서비스와 연동한 정부 앱도 작동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앱 ‘안전신문고’는 전날 공지를 통해 ‘카카오 메시지(톡), 지도, 위치연동, 메시지 발송 서비스 장애가 발생해 카카오 서비스와 연동해서 서비스를 운영 중인 안전신문고 앱과 포털의 신고 기능에 장애가 발생했다’고 안내했다. 이밖에도 카카오 계정을 연동한 가상자산 거래앱 업비트의 접속이 제한돼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온라인에서는 카카오 자전거나 킥보드 서비스를 이용한 시민들이 반납 미처리로 요금 폭탄을 맞을까 걱정하는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카카오 서비스 이용 중단을 선언한 시민들도 속출했다. 직장인 김모씨는 “전 재산을 카카오뱅크에 넣어뒀는데 불안한 마음에 더는 사용을 못 할 것 같다”며 “카카오 한 계정으로 비대면 업무를 처리해온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 알게 됐다”고 했다. 한 누리꾼은 카카오톡 앱 삭제를 인증하며“디지털 플랫폼에 의존하는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카카오라는 한 기업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의존하고 있었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 교수는 “이번 기회에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책임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며 “플랫폼 기업의 단순한 실수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들 기업이 우리의 일상과 사회에 미치는 거대한 영향력에 맞게 산재 수준의 처벌과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카카오 서비스 오류로 인한 일상의 마비는 카카오톡이 소비자 독점적 앱이라는 점에서 발생한 문제”라며 “카카오에 대한 의존이 지나치게 높았다는 점과 이러한 독과점을 완화할 정부 정책이 부족했다는 점이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윤석열 정부의 ‘온라인 플랫폼 자율규제’ 기조가 영향을 받을 지도 주목된다. 문재인 정부 때 공정거래위원회 주도로 추진됐던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제정은 현 정부 출범 이후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코로나19로 우리 삶의 무게추가 온라인으로 빠르게 전환된 것에 비해 관련 정책이나 규율은 속도를 뒤따르지 못했다”며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는 온라인 플랫폼 자율규제 체계의 허술함과 문제점도 따져볼 일”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데이터 전문가는 “카카오 정도의 대기업이 데이터센터 한 곳에서 불이 났다고 해서 이렇게 오래 서비스가 멈추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며 “전국민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인 만큼 카카오를 비롯한 플랫폼 대기업은 위기대응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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