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밥에 고추장 놓고 먹었는데…” 노인 통합돌봄 ‘식사’ 만족도 뚜렷

최미랑 기자

① 아들아 딸아, 내 밥은 걱정 마라

충남 청양군 대치면 주민 하명이씨(87·왼쪽)가 생활지원사 권세희씨(63)로부터 통합돌봄센터서 만든 밑반찬을 건네받고 있다. 유명종 PD

충남 청양군 대치면 주민 하명이씨(87·왼쪽)가 생활지원사 권세희씨(63)로부터 통합돌봄센터서 만든 밑반찬을 건네받고 있다. 유명종 PD

농촌지역 홀로 사는 고령 노인들
필요 때 돌봄 못 받는 사각지대에

충남 청양군은 ‘지역 소멸’을 얘기할 때 으레 거론되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다. 전체 인구 3만335명 중 38%(1만1454명)가 65세 이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해왔다.

평생 먹거리를 생산했지만 노년의 식사는 초라하다. 타지로 나간 자녀들은 늘 마음이 쓰인다. 사골국이 든 레토르트 파우치도 보내보고 유행하는 유동식 제품도 부쳐보지만 입에 맞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신세 지는 게 싫은 부모는 그저 ‘괜찮다’고만 할 뿐이다.

대치면에 홀로 사는 하명이씨(87) 사정도 비슷하다. “참으로 좋은 세상에 살아서 이런 운을 만났어요. 이 시대에 태어난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몰라요.” 지난달 28일 자택에서 만난 하씨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거듭 이렇게 말했다. 청양군 통합돌봄센터에서 지원하는 밑반찬 배달 서비스 얘기다.

살던 곳에서 노년을 보내려면

생활지원사가 배달해주는 음식이 없었다면 기력을 잃고 집을 떠나야 했을 거라고 하씨는 생각한다. 생활지원사는 가져온 반찬이 입에 맞는지, 요즘 기력은 어떤지 물어보며 하씨의 안부를 챙긴다.

그는 논밭에 ‘동네’가 생기기 시작한 1971년부터 지금의 집에 살았다. 직접 지은 집에서 4남매를 키워냈다. 지난해 말 낙상으로 수술을 받고 하마터면 집에 돌아오지 못할 뻔했다. 굳은 의지로 재활을 버텨 의사로부터 ‘기적’이라는 칭찬을 들으며 퇴원했지만, 집에 돌아오니 밥 문제가 막막했다.

“어르신들은 식사가 정말 중요해요. 잘 드시기만 하면 자기 집에서 생활할 정도의 기력은 되시는 분들이거든요.” 매주 두 번씩 반찬을 들고 하씨 집을 방문하는 권세희 생활지원사(63)가 말했다. 이날의 반찬은 새우를 넣은 호박볶음과 생선튀김. 청양군 통합돌봄센터에 마련된 조리실에서 노인 일자리에 고용된 인근 주민들이 전문 조리사와 함께 만든다. 권씨를 비롯한 생활지원사와 사회복지사가 배달을 책임진다.

어떻게 이런 서비스가 가능했을까. 하씨처럼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지 않은 65세 이상 노인들은 필요한 돌봄을 제때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요양보호사의 지원까지는 필요하지 않지만, 독립적으로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노인들이다.

“혼자 사시는 노인 가구가 3000가구가 넘어요. 여기는 농촌 지역이라 가구 간 거리도 상당히 멉니다. 돌봄 사각지대가 광범위해요.” 송영숙 청양군청 통합돌봄팀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들이 지역사회로부터 적절한 수준의 도움을 받아 살던 곳에서 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보건복지부가 추진한 ‘지역사회 통합돌봄’ 사업의 취지다.

청양군을 비롯해 선도지역으로 지정된 전국 16개 기초자치단체는 2019년부터 사업을 시행해왔다. 중앙 정부로부터 받은 예산을 기반으로 노인의 삶이 나아지게 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기획한다. 현장 관계자들 말을 들어보면 만족도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게 식사 관련 서비스라고 한다.

청양읍에 위치한 통합돌봄센터 조리실에서 마을 주민들이 밑반찬을 나눠 담고 있다. 유명종 PD

청양읍에 위치한 통합돌봄센터 조리실에서 마을 주민들이 밑반찬을 나눠 담고 있다. 유명종 PD

건강한 노인들이 조리 일손 돕고
이장 등이 대상자 찾는 역할 맡아

온 마을이 함께하는 먹거리 돌봄

통합돌봄의 허브 기능을 하는 통합돌봄센터와 청양군청에는 관련 문의가 쏟아진다. 하씨처럼 현재 서비스를 받는 이들은 월 최소 1만원을 자비로 부담하고 있다. 한진희 청양군청 통합돌봄팀 주무관은 “반찬을 만들고 배송하는 데 드는 실비를 전부 부담할 테니 우리 부모님도 이 서비스를 받게 할 수 없냐는 문의가 종종 온다”고 말했다. 통합돌봄센터 소속 이미래 복지사는 먹거리를 제공한 이후 노인들의 기력이 눈에 띌 정도로 회복된다고 말한다. “맨밥에 고추장, 간장, 새우젓만 놓고 식사하시는 경우가 많았어요. 반찬을 보내드리니까 지금은 다양한 먹거리를 접하실 수 있죠.”

대상자를 찾는 일이 우선이다. 실무자들은 지역사회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이웃 사정을 잘 아는 마을 이장·부녀회장 등의 역할이 크다. 이들은 읍·면의 복지 담당 공무원들과 함께 통합 돌봄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

복지부의 선도사업은 2019~2022년 진행되는데, 기간 중에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대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맞춤형 돌봄이 쉽지 않아 식사 서비스를 기획하는 이들도 안타까움이 컸다. 고령층과의 대면 접촉이 사실상 금지되다시피 했던 기간에는 집 앞에 유동식을 놓고 온 뒤 전화로 안부를 묻는 방식으로 대체됐다. 이제 다시 조리실을 가동해 신선한 반찬을 배달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통합돌봄센터 조리실에서는 오전 일찍부터 조리가 시작된다. 마을 고령자 가운데 기력이 좋은 분들이 번갈아 나와서 일을 돕는다. 반찬이 완성되면 스테인리스 용기에 나눠 담아 생활지원사와 복지사들이 배달한다. 용기는 방문 때 수거하기 때문에 일회용품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 반찬을 만드는 재료는 어디에서 올까. 청양군은 농산물 소비량보다 생산량이 월등히 많은 지역으로 소비보다는 판매가 우선이다. 이 지역에서 나는 좋은 재료로 노인들에게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대치면 탄정리에 설치 중인 먹거리 종합타운. 농산물종합가공센터, 농산물안전성분석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유명종 PD

대치면 탄정리에 설치 중인 먹거리 종합타운. 농산물종합가공센터, 농산물안전성분석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유명종 PD

생산·유통·소비 순환 ‘푸드플랜’
청양군 먹거리 통합지원센터 통해
경로당 등에 지역 농산물 공급

청양군의 먹거리 종합 계획

이 질문에 답을 찾는 지자체의 노력이 ‘푸드플랜’에 담겨 있다. 푸드플랜은 지역 내 먹거리의 생산, 유통, 소비를 하나의 선순환 체계로 묶어서 관리하는 종합 관리 시스템이다. 2007~2008년 식량위기를 계기로 서구권 국가에서 중요성이 대두됐다. 국내에선 전주시(2015년)를 시작으로 지자체가 속속 푸드플랜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농업 지역은 주민 대부분이 먹거리 생산자이기 때문에 판로를 개척하는 게 중요한 미션이다. 청양군은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지원을 받아 푸드플랜(지역먹거리종합계획)을 수립했다.

“피로를 구기자! 숙취를 구기자!” 지난달 28일 청양군지역활성화재단에서 만난 정환열 상임이사는 이곳 특산물 구기자를 이렇게 홍보하고 다닌다고 했다. 전북 지역에서 농업 컨설팅을 해온 그는 2020년 재단이 설립된 이래 먹거리통합지원센터와 마을공동체지원센터를 이끌고 있다.

“청양 지역 생산물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농가들에 수혜를 주는 게 궁극적인 목표거든요.” 무농약 농사를 짓는 할머니·할아버지들부터 귀농·귀촌한 젊은이들까지 다양한 농가를 접촉해 생산과 판매의 전략을 논의한다.

대치면 탄정리의 1만1125㎡ 부지에 세운 공공급식지원센터와 농산물종합가공센터, 농산물안정성분석센터는 좋은 먹거리를 내다 팔게 돕는 일은 물론 주민이 잘 먹도록 하는 일이 두루 이뤄지는 곳이다. 인근의 대전 등 대도시 공공급식에 납품할 식재료 안전성을 검증하는 일, 소농이 생산한 작물을 부가가치 식품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시도 등이 여기서 이뤄진다. 지역 내 돌봄 대상이 늘어나면서 이들에게 지역이 생산한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이 더해진다.

“푸드플랜의 기본 전제가 ‘국민이면 누구나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거잖아요. 어린이와 노인 등 먹거리 취약 계층에 청양의 좋은 식재료를 공급하는 일도 우리가 맡고 있어요.” 좁은 지역사회에서 공공이 식자재 공급을 맡을 때는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정 이사는 말한다. 오랜 시간 영업해온 지역 상인들 매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먹거리 통합지원센터는 수익이 크지 않아 민간에서 반기지 않는 소비자를 먼저 찾아간다. 구매량이 많지 않은 소규모 지역아동센터나 경로당 등에 낮은 단가로 식재료를 공급하는 것이다. 지역산 농산물 공급비중을 70%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현 시점의 목표다.

최근에는 어린이를 위한 음식을 만드는 데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동복지카드로 편의점에서 핫바를 사먹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먹거리를, 더 매력적인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보내는 청양군 통합돌봄센터와도 접점을 넓혀나가고 있다. 군에서 생산한 나물과 쌀을 주재료로 한 유동식이나 간편식 등을 개발해 납품하는 방식도 협의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 정부가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을 지원하는 건 올해 말까지다. 통합돌봄센터를 통한 먹거리 돌봄은 내년부터 청양군이 직접 확보한 예산으로 시행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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