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참사

뒤에선 “밀어” 앞 사람은 ‘뒤로’··· 가운데선 “살려달라” 비명 터져나왔다읽음

목격자들이 전하는 참사 순간의 상황

“앞쪽에 사람들이 쓰러진 걸 모르니까

줄다리기하듯 양 끝에서 동시에 힘을 주면서

사람들이 한 덩어리처럼 앞뒤로 움직였다

그 이후 여기저기 비명 들리며 사람들 쓰러져”

지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려 압사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30일 구급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려 압사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30일 구급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뒤에서 ‘밀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앞에선 뒤로 가고 뒤에선 미니까 가운데서 ‘살려달라’는 비명이 나왔다. 2~3분도 안 돼서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핼러윈을 앞두고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을 찾은 김모씨(35)는 당시 목격한 사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고 현장 인근 2층에 위치한 술집에서 골목으로 몰려든 인파를 구경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축제 분위기로 들떴던 해밀톤 호텔 옆 폭 4m, 길이 45m의 좁은 경사로는 곧 아수라장이 됐다. 김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앞쪽에 사람들이 쓰러진 걸 모르니까 초반엔 줄다리기하듯이 양 끝에서 동시에 힘을 주면서 사람들이 한 덩어리처럼 앞뒤로 움직였다”며 “이후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고 했다. 다른 목격자들도 오후 10시30분쯤부터 사람이 밀려나기 시작하다가 10시40분쯤부터 앞쪽에서부터 차례로 사람이 넘어지면서 5∼6겹으로 쌓였다고 했다.

인파 속에 있던 20대 여성 A씨는 “내리막길에서 앞에 사람이 넘어졌다. 사람들은 계속 밀려들었다”며 “내 바로 뒤에 있던 사람이 토를 했다. 얼굴색이 금세 변한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20대 남성 이모씨는 “갑자기 앞에서 안 가니까 (사람들이) 밀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밀기 시작하니 중심이 쏠리다가 (쓰러지게) 된 것”이라며 “몸이 눌리면 숨이 안 쉬어지니 까치발을 들고 있었다. 옆에 있는 사람과 손잡고 버텼다. 사람들이 ‘여기 사람이 죽어간다’ 외쳤다”고 했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려 대규모 인명사고가 발생, 현장이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려 대규모 인명사고가 발생, 현장이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유명인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다”는 목격담도 여럿 나왔다. 유튜버, 인터넷방송 진행자(BJ), 연예인 다수가 사고 현장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참사 상황이 이들의 카메라를 통해 그대로 온라인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한 BJ는 사고 현장에서 인파 속에 낀 상태로 생방송을 진행하며 시청자 후원금을 모금했다. 한 외국인 유튜버는 참사 현장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 그대로 게시했다가 비판 여론이 일자 영상을 삭제했다. 서울 시내 대형 종합병원 소속 현직 간호사도 사상자에 대한 응급처치 상황을 촬영해 ‘브이로그’(일상을 촬영한 영상 콘텐츠) 형식으로 올렸다가 뭇매를 맞았다.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입은 각종 ‘코스튬’ 의상과 분장이 사고 대처를 늦췄다는 증언도 나왔다. 20대 여성 최모씨는 “사람들이 바닥에 누워있고 경찰이랑 소방대원들이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처음엔 코스튬을 입고 플래시몹 같은 걸 하는 줄 알았다”며 “사고 심각성을 당장 알아채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20대 남성 B씨는 “얼굴이 파랗게 질린 사람들을 보면서 ‘분장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말이 나왔다”며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일부 목격자들은 ‘예견된 참사’라고 했다. 사고 발생 6시간 전부터 사고 발생지인 해밀턴 호텔 주변이 포화상태였다는 것이다. 사고 당일 오후 4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핼러윈 축제 현장에 있었다던 이모씨(29)는 “그날 이태원은 대낮에도 몸을 옆으로 틀어야만 안 부딪히고 지나갈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며 “낮이 이 정도인데, 자정 무렵에는 어느 정도일지 가늠도 안 갔다. 같이 간 친구랑 이러다 무슨 일 나지 않겠느냐 싶었는데, 결국 끔찍한 일이 터져버렸다”고 말했다. 사고 하루 전인 28일 이태원을 방문한 직장인 김모씨는 “사고 전날도 사람들이 몰려서 이러다 누구 죽겠다는 말이 나왔었다”며 “시청이나 구청에서 왜 현장 관리가 없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 28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 관광특구 일대가 인파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 28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 관광특구 일대가 인파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사고 목격자 C씨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한 데 엉킨 모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끔찍한 장면이었다”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계속 떠올라서 미치겠다. 구토도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온라인에도 사고 목격자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한 시민은 “현장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도 있지만, 사망자들 얼굴이 떠올라 죄책감이 든다”는 게시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보건복지부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유가족, 부상자, 목격자 등 1000여명에 대한 심리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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