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참사

술병과 편지 그리고 국화꽃···피해자와 유족에 ‘위로와 공감’ 보낸 시민분향소

윤기은 기자    권정혁 기자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시청 광장에서 31일 한 시민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시청 광장에서 31일 한 시민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제 친구가 하늘나라 간 것처럼 공허해요.” 신지아양(18)은 3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대입 수시에 붙은 신양은 사고 당일인 지난 29일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의 한 식당에 갔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 인근을 거닐기도 했다. 현장에서 어떤 여성은 ‘제발 밀지 말라’며 소리를 질렀다. 신양이 이태원을 빠져나온 것은 오후 10시쯤이다. 사고가 발생하기 불과 10여분 전이었다.

신양은 지난 이틀 동안 네시간밖에 못잤다. 뉴스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접한 이후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사고 당일 이태원에 갔다는 말도 아직 꺼내지 못했다. “학교에서 심폐소생술(CPR)을 배웠어요. ‘CPR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확성기로 알렸다면 제가 달려갔을텐데….” 경기 시흥시에서 홀로 분향소까지 온 신양은 “희생자들이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식 일 같아” “내게도 생길 수 있는 일”…‘공감’ 표시한 시민들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시청 광장에서 31일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시청 광장에서 31일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참사 발생 이틀이 지난 이날 서울광장과 이태원광장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 합동분향소가 문을 열었다. 시민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분향소를 방문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과잠’(대학교 학과 점퍼) 차림으로 분향소를 찾은 김모씨(21)는 10여분간 광장에 서있었다. 키가 약 150cm인 김씨도 인파에 몸이 짓눌리는 경험을 종종 겪었다고 했다. 퇴근시간 급행 지하철을 타면 내리고 싶은 역에서 하차하지 못할까봐 출입구쪽에 주로 선다고 했다. 김씨는 “내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서웠다”며 “피해자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외국인 조문객들도 분향소를 찾았다. 스페인에서 온 교환학생 로리나 토레스(20)는 사고 후 메신저 단체방에 다른 학생 사진과 함께 ‘이 사람을 봤냐’는 메시지가 연신 올라왔다고 했다. 그는 “사고 당시 구급차 앞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대학은 휴강하지 않고 ‘없었던 일처럼’ 수업을 그대로 했다”며 “한국 사회가 생각보다 차갑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튀니지 국적의 지헤드 제마이(33)는 “7년간 한국에 살았고 안전한 줄 알았는데 이런 지 몰랐다”며 “내게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 가족을 어떻게 부를지 슬픈 생각이 난다”고 했다.

“자식 일 같다”며 분향소를 찾은 중년들도 있었다. 미국인 남편과 함께 관광차 한국을 들렀다는 재미교포 조추자씨(66)는 “친구 딸의 대학 동기 두명이 거기서 죽었다고 들었다. 희생자 부모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전남 광주시에서 온 송정희씨(68)는 “손주가 열아홉, 열일곱”이라며 “어린 친구들이 너무 안 됐다”고 했다.

술병과 편지 그리고 국화꽃···수북히 쌓인 추모공간

31일 서울 이태원 추모 분향소에 추모객들이 헌화와 묵념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31일 서울 이태원 추모 분향소에 추모객들이 헌화와 묵념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사고 발생 지점 인근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앞과 녹사평역 이태원광장에도 추모객들이 몰렸다.

이날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에는 문을 열기 40분 전인 오전 9시50분부터 10여명의 시민이 도착해 있었다. “희생자 중 지인이 있다”던 한 여성은 맥주 한병과 장미꽃 한송이를 부스 한켠에 두더니 이내 길바닥에 쓰러졌다. 이태원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김모씨(44)는 “사고일 오후 11시쯤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오후에 친구들이 걱정해서 전화했다”며 “원래 같으면 (사고 가 난 골목에) 갔을텐데 공교롭게도 그 날은 안 갔다”고 했다.

시민들이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공간에서 핼러윈 참사 피해자들에게 헌화와 묵념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시민들이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공간에서 핼러윈 참사 피해자들에게 헌화와 묵념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핼러윈 참사 추모공간에 편지와 술병이 놓여 있다. 권정혁 기자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핼러윈 참사 추모공간에 편지와 술병이 놓여 있다. 권정혁 기자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는 꽃다발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편지와 소주병, 맥주캔 등도 놓여 있었다. 편지에는 ‘더 많이 즐기고 더 꿈을 꾸고 더 사랑해야 하는데 미안합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더 맘껏 더 자유롭게 평화를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좋은 세상 가셔서 못다한 꿈을 이룩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사고는 명백한 인재입니다. 다시는 이런 슬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남아서 심폐소생술이라도 했어야 하는건데….” 불경을 외는 스님 뒤에서 묵묵히 이태원역 1번 출구쪽 바닥에 놓인 꽃다발을 바라보던 육군 상병 김모씨는 묵념을 마친 뒤 연신 눈물을 훔쳤다. 사고 당일 오후 10시15분 이태원에서 강남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는 그는 사람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인터뷰 내내 흐느꼈다.

세월호 참사 유족 30명도 오후 3시 이태원에 차려진 분향소를 찾아 고인들의 넋을 기렸다.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같은 아픔을 먼저 겪은 아빠로서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며 “이번 참사는 막을 수 없는 사고가 아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상황에서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대비하면 막을 수 있던 인재”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공간에서  핼러윈 참사 피해자들에게 헌화와 묵념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공간에서 핼러윈 참사 피해자들에게 헌화와 묵념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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