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미 개발된 기술도 활용 못 한 ‘인파 관리’

김보미 기자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일대에서 열린 이태원지구촌축제를 찾은 시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일대에서 열린 이태원지구촌축제를 찾은 시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계기로 행정이 이미 실시간으로 방대하게 축적한 도시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3일 정부는 인파 사고 안전확보 태스크포스(TF)에서 기술을 이용한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뒤늦게 밝혔다. 그러나 기술을 재난 상황과 맞물려 분석하고 지역에 맞게 학습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TF에서는 휴대전화 위치 정보(CPS)와 지능형 폐쇄회로(CC)TV, 드론 등으로 수집한 정보를 기반으로 도심의 실시간 밀집도를 파악해 경찰·소방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인파 이동 흐름 관리와 현장 방송, 재난 문자 발송에도 활용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거론됐다.

외국의 경우 ‘인파 관리’(crowd management)에 필요한 기술을 경찰·소방을 비롯한 행정과 접목한 가이드라인이 이미 보편화된 상황이다.

일본 도쿄도 도시마구 홈페이지의 재해대책 소개를 보면 이 지역은 주요 역사 등에 설치된 52대의 방재 카메라가 인파 병목 현상 등을 확인해 구청 재해대책본부에 경고를 보낸다. 중심가 이케부쿠로역 이용 승객이 연 9억명에 달하는 등 인구 밀집도가 높은 지역 특성상 혼잡 등과 같은 이상 상황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군집 행동 해석 시스템’을 2015년 도입한 것이다.

일본 도쿄도 도시마구의  군집(인파 밀집) 행동 해석 시스템. 방재 카메라에 찍힌 인파를 분석해 이케부쿠로역 앞의 밀집도와 사람들의 이동 흐름을 보여준다. 도시마구 홈페이지

일본 도쿄도 도시마구의 군집(인파 밀집) 행동 해석 시스템. 방재 카메라에 찍힌 인파를 분석해 이케부쿠로역 앞의 밀집도와 사람들의 이동 흐름을 보여준다. 도시마구 홈페이지

사람과 사람이 겹쳐 찍힌 부분도 구분해 혼잡도 단계를 판단하며, 넘어지거나 쓰러진 사람이 있으면 인파 흐름의 변화 등을 해석해 경고한다.

미국 뉴욕시는 올해 핼러윈 기간 지역의 100곳이 넘는 골목을 차 없는 거리로 운영했다. 가장 붐비는 타임스스퀘어 등 주변에 차량 진입을 막고 보행로를 늘릴 때 보행자 사고가 35% 줄어든 반면 대중교통 이용이 평소보다 늘어 인접 도로의 차량 속도는 오히려 5% 이상 빨라진다는 데이터에 따른 것이다. 미국 비영리단체 국제경찰장협회가 작성한 인파 관리 가이드라인의 경우 밀집 상황이 도시 규모·상황별로 제시돼 있다.

도시별로 지자체·민간이 수집하는 빅데이터가 효용성을 가지려면 행정에서 이를 분석해 시민을 위한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하지만 아직 한국은 학습이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서울 전역에는 8만대가 넘는 CCTV와 2500개의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데이터 센서가 있다. 센서는 날씨 정보를 비롯해 자외선, 소음, 방문자 수를 수집한다. 서울시가 KT 기지국 신호를 활용해 만든 ‘실시간 도시데이터’는 사고 당일 첫 112 신고 때부터 이태원 일대의 인파가 급증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 이미 서울시는 시내 교량 10곳에 설치된 500대 이상의 CCTV 영상을 인공지능(AI)이 24시간 분석하는 기술로 자살 방지 및 투신자 구조에 도입 중이다. 다리에서 서성거리는 움직임부터 난간에 매달리고 난간을 넘는 행동, 신발을 벗는 동작까지 이상 징후를 찾으면 통합관제센터에 경고를 보낸다.

CCTV에 AI가 접목된 기술은 중대재해예방 등에서 활용돼 작업자가 안전복을 입지 않았거나 추락 등 위험 구역에 진입했을 때 관리자에게 알람을 전송하는 식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의 니시나리 카츠히로 교수는 2020년 ‘개개인에게 전달되는 위기 대응 네비게이터 구축’ 연구에서 “교통과 달리 인파의 흐름·속도에 관한 연구는 적어 체류(군중 병목) 발생을 억제하는 방식은 체계화돼 있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다”며 세계화로 여러 연령대·국적 사람들이 집결할 기회가 늘어나는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시내 한강 교량에 설치된 CCTV로 위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한강교량 CCTV 통합관제센터’.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제공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시내 한강 교량에 설치된 CCTV로 위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한강교량 CCTV 통합관제센터’.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제공

이미 여러 정보가 공개된 한국은 이를 안전 관리와 연결하는 체계 구축이 시급한 셈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미 서울시가 수집한 데이터만으로도 인파 관리는 충분히 가능하다”며 “정부가 AI 등 데이터를 활용한 재난 대응 매뉴얼을 빨리 만들어 각 지자체가 지역 특성에 맞게 수정·보완하고 소방·경찰과 협조할 수 있는 대응 체계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기술적으로는 CCTV의 사각지대나 강변 등 물리적 접근이 어려운 구역은 관련 법을 개정해 열 감지가 가능한 드론을 띄워 파악할 수도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 역시 “개발된 기술이 행정과 결합하려면 위기 매뉴얼뿐 아니라 현장에서 경찰 등과 협업하는 훈련과 학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구원은 2019년 발간한 ‘디지털 기반 도시관리 공간의사결정 지원체계 구축’ 보고서에서 “휴대전화·스마트카드·CCTV·신용카드 매출액 등의 새 데이터가 기존 인구 기반의 통계·행정 데이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한다”며 “현장에서 관찰된 데이터가 공간의사결정에 활용될 수 있도록 실시간 처리 및 분석 기능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 안전 TF는 이날 특별·광역시와 인구 50만명 이상의 도시에서 지하철 역사 등지에 인파 밀집으로 사고 우려가 생기면 사전 경보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또 경찰과 소방관이 현장 대응을 할 수 있게 명확한 지침과 권한을 부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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