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생활 20년···그는 죽어서도 외로웠다

이효상 기자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북한이탈주민 김모씨의 집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효상 기자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북한이탈주민 김모씨의 집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효상 기자

[주간경향] “탈북자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40~50년 뒤의 미래로,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 문화로 이동했다. 이런 급격한 변화에서 겪는 속병이 곪아터지지 않게 치유하고 싶다.”

지난달 서울 양천구의 아파트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북한이탈주민 김모씨는 2010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입국 8년차였던 그는 북한이탈주민 전문상담사로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통일부는 그해 처음으로 탈북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심리상담과 정착 지원을 위해 1기 전문상담사 30명을 선발했다. 북한이탈주민 출신 전문상담사는 7명이 뽑혔다. 김씨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험난했던 탈북, 순조로운 정착

김씨의 북한이탈은 험난했다. 탈북 과정에서 한차례 강제 북송됐다고 한다. 당시의 경험은 2011년 유엔난민기구(UNHCR)와 국제이주기구(IOM)가 공동주최한 국제회의에서 김씨가 발표한 발제문에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당시 김씨는 토론자로 참석해 “중국에 거주하는 탈북여성들은 끊임없이 북송의 위협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공안에게 붙잡히면 변방대로 잡혀갔다가 북송됩니다. 북송 여성들은 보위부 취조를 받은 후 죄질에 따라 수감시설을 달리합니다. 수감시설은 매우 열악하고 비위생적입니다. 제공 음식도 극히 부족해 많은 사람이 질병과 고통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중략) 특히 많은 북한이탈 여성들에게 수치스럽게 생각되는 아픈 기억과 탈북과 도피생활, 북송 등의 과정에서 야기된 건강문제는 간과할 수 없는 주요한 유병 요인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국제회의에 발제자로 초청될 정도로 그의 남한 안착은 순조로웠다. 전문상담사로 일하기 전에는 간호사로 근무하며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지방자치단체 주민센터에는 2009년 김씨를 복지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지자체는 대학을 졸업한 김씨에게 근로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상담사로서의 삶도 성공적이었던 걸로 보인다. 김씨와 함께 1기 북한이탈주민 전문상담사로 일했던 북한이탈주민 A씨는 “처음 1기 전문상담사 교육을 받는데 겉모습만 봤을 때 김씨는 너무 세련돼 우리끼리 탈북민이 맞느냐는 이야기도 했다. 그 정도로 가장 남한화된 분이었다”며 “남북하나재단의 전문상담사로 일하다가 2017년 퇴사했는데, 퇴사할 때까지 일을 정말 잘했다. 다들 평가가 좋았다. 강인한 사람이었고, 옳고 그름이 정확했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했다.

탈북 20년차를 맞는 올해 10월, 김씨는 자택에서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살아 있었다면 올해로 마흔아홉 살이다. 시신은 겨울옷을 입고 있었다. 이를 근거로 그가 지난겨울 사망한 게 아니냐는 추정도 나온다. 무려 1년 전이다. 김씨의 죽음은 한국사회의 복지 사각지대를 다시 드러냈다. 동시에 북한이탈주민에게 남한 정착이 평생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줬다.

한때 전문상담사 활동…각종 공과금 연체에도 1년간 아무도 몰라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주무부처 통일부의 실패

2017년 남북하나재단을 퇴사한 이후 김씨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이탈주민 커뮤니티에서도 그와 관련한 소식이 끊겼다. 북한이탈주민 출신으로 남북하나재단에서 근무하는 B씨는 “2017년 갑자기 그만둔다고 했다. 왜 그만두는지 물으니 못해 본 영어 공부도 하고 미국에도 가겠다고 했다”며 “워낙 근무할 때 잘해서 각종 심사역이나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고 싶어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화번호가 바뀐 상태여서 ‘정말 미국에 갔구나’라고만 생각했다”고 했다.

이후 그의 이름은 정부의 복지위기가구 감시망에서 발견된다. 김씨가 월 1만4650원의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지 3개월이 되던 지난해 5월 보건복지부는 북한이탈주민 위기 대응을 담당하는 통일부와 위기가구를 관리하는 지역 주민센터 김씨의 위기정보를 각각 전달했다. 당시 위기정보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이때 이미 김씨는 월 11만원가량의 주택 임대료와 월 5만원 상당의 관리비를 6개월째 체납하고 있었다.

발견도 늦었지만, 위기정보 접수 후의 대응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통일부는 지난해까지 북한이탈주민 취약계층에 대해 반기별로 1회씩 전수조사를 벌였다. 2021년 초 김씨 관련 위기정보를 넘겨받은 통일부는 그해 상반기 취약계층 조사대상에 김씨를 포함시켰다. 남북하나재단이 운영하는 지역별 하나센터 중 서울남부하나센터가 김씨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 두절’로 처리했다. 서울남부하나센터는 김씨가 북한이탈주민 전문상담사 시절 근무했던 전 직장이기도 하다. 서울남부하나센터를 운영하는 한빛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는 “퇴사하고 연락이 두절됐다. 아무하고도 연락이 안 됐다”고 했다. 직접 방문조사를 했냐고 묻자 이 관계자는 “우리가 조사한 결과를 통일부에 보고했고, 통일부에서 이 사건 관련 대응을 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결국 그해 상반기 김씨에 대한 통일부 차원의 지원은 없었다.

통일부의 취약계층 조사와 지원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뤄졌는지는 오리무중이다. 간접적으로 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는 있다. 통일부는 2021년 상반기에 북한이탈주민 취약가구 7517명을 조사대상으로 삼았다. 조사 이후 실제 지원을 받은 사람은 467명에 그쳤다. 김씨처럼 ‘연락 두절’ 등으로 인해 ‘미확인’으로 남은 인원이 3176명으로 전체 조사대상의 40%를 넘었다. 대상자에 대한 소재 파악 및 접촉 시도가 적극적으로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셈이다.

통일부의 대응 실패는 계속됐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통일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통일부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10월까지 복지부로부터 최소 7차례 김씨와 관련한 위기정보를 전달받았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통일부의 북한이탈주민 취약계층 전수조사가 전화조사 방식으로만 이뤄져 미응답 사례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오자, 통일부는 지난해 하반기 조사대상을 고위험 취약계층 1582명으로 좁혀 집중관리방식으로 전환했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 조사의 미응답 인원은 50명으로 줄었지만, 정작 김씨는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통일부가 해당 조사를 실시한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김씨는 건보료(10개월), 주택임대료·관리비(13개월), 통신비를 체납한 상태였다. 금융연체 사실도 확인됐다. 그럼에도 통일부는 김씨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김상희 의원은 “사회보장정보원과 지자체가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조사를 벌이고 있음에도, 통일부가 별도로 위기 탈북민 발굴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이유는 탈북민의 어려움을 한단계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며 “연락 두절, 결번, 거주 불명과 같은 이유로 조사에서 제외되고 있는 탈북민의 상황까지 파악해 통일부가 적극적인 대책을 수립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에서도 사각지대

김씨가 사는 지역의 주민센터 지난해 5월부터 최소 5차례 복지부의 위기정보를 넘겨받았지만 김씨와 접촉하지 못했다. 당초 복지부가 전달한 위기정보에 김씨의 휴대전화 연락처는 공란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주소지로 찾아가고 우편 발송도 했는데 만날 수가 없었다”며 “추측만 가지고 임의로 출입문을 강제 개방하고 확인해볼 법적 근거나 권한이 없다. 징후가 없다면 경찰에서도 출동하지 않는다. 일선 지자체에서 위기 대상자들의 상황을 확인해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이런 사고를 방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김씨의 생존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건 지난해 3월 9일이다. 김씨가 살았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는 김씨가 지난해 3월 9일 마지막으로 관리비 독촉장을 수령하고 사인했다는 기록이 있다. 해당 아파트엔 3000세대가 입주해 있다. 이중 약 10%가 북한이탈주민 세대다. 김씨는 이곳에서만 20년을 살았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그때 이후로는 그 집에서 온수를 안 썼다. 사고 후에 누군가 그분 사진을 보여줬는데 관리사무소 직원 중 한명이 다른 탈북민들 모시고 와서 처음 아파트 입주할 때 안내해주던 분이라고 하더라. 아마 상담사 일을 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워낙 젊어 이분 같은 경우는 위기상황이라고 인지를 못 했던 것 같다. 이분에 대해서는 누가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했다.

이웃들도 낌새를 차리지 못했다. 김씨와 같은 층에 사는 이웃주민 C씨는 “오가며 마주치면 목례를 했다. 점잖고 조용한 분이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다기에 깜짝 놀랐다. 이 층에만 탈북민들이 몇가구 사는데 서로 왕래는 잦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굳게 닫혀 있던 김씨의 집 문을 연 것은 결국 ‘밀린 집세’였다. 서울주택도시(SH)공사는 김씨의 임대료 체납이 15개월째 접어들던 지난 1월 명도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지난 10월 19일 오전 8시쯤 SH공사와 법원 직원, 관리사무소 관계자 등이 강제 퇴거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김씨의 집 문을 강제 개방했다. 아파트 출입문에는 안전고리가 걸려 있었다. 김씨는 침대 위에 겨울옷을 입고 누운 채 발견됐다. 집 현관에는 부츠 한켤레만 놓여 있었다. 양천경찰서 관계자는 11월 1일 “기본적으로 변사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 국과수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골 사체로 발견된 북한이탈주민 김모씨의 자택 우편함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낸 보험료 납입 고지서가 꽂혀 있다. 이효상 기자

백골 사체로 발견된 북한이탈주민 김모씨의 자택 우편함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낸 보험료 납입 고지서가 꽂혀 있다. 이효상 기자

반복되는 무연고 고독사

북한이탈주민 고독사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19년 북한이탈주민 모자 사망 사건이다. 2008년 탈북한 한모씨와 그의 일곱 살 난 아들이 2019년 7월 아파트를 방문한 수도검침원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아동수당 10만원과 양육수당 10만원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모자는 2019년 3월 아들의 만 6세 생일이 지남에 따라 아동수당이 끊기자 단돈 10만원으로 생활해왔다. 그해 5월 한씨는 거래은행에서 잔고 3838원을 인출했다. 모자는 그해 5월 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에는 50대 남성이 경기도 평택에서, 지난해에는 70대 남성이 부산에서 각각 숨진 채 발견됐다. 전형적인 무연고 고독사였다.

통일부 통계를 보면 북한이탈주민의 무연고 사망이 갈수록 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무연고 사망자는 2019년과 2020년에 각각 7명씩 발생했다. 2021년에 3명으로 줄었지만 올해는 9월까지만 11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수조사가 아니기에 무연고 사망자 숫자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절차를 대행하는 남북하나재단의 관계자는 “관할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장례를 치르는 경우도 있고, 북한이탈주민 동료들이 장례를 대신 치르는 경우도 있어 (통일부) 통계보다 숫자는 더 많을 수 있다”며 “정착기간이 장기화하면서 이탈주민분들이 고령화된 것도 무연고 사망이 늘어나는 원인일 수 있다. 2019년 탈북 모자 사건 이후 통일부에 안전지원팀이 꾸려지면서 사례 발굴이 많아진 측면도 있다”고 했다.

무연고 사망의 배경에는 북한이탈주민의 취약한 경제적 기반이 자리하고 있다. 남북하나재단이 수행한 2021년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를 보면, 북한이탈주민의 고용률은 56.7%로 한국 전체보다 4.5%포인트 낮았고, 실업률은 7.5%로 3.8%포인트 높았다. 남한에서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물었을 때 ‘하층(34.5%)’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중하층(34.0%)’이라는 답변이었다. ‘병원비가 부담돼 진료를 받지 못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7.2%, ‘공과금을 체납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6.6%였다.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는 응답은 13.3%로 일반 시민 대상 조사의 응답률 5.2%(2020년 기준)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자살 충동을 경험한 이유로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26.8%)’, ‘신체적·정신적 질환 때문(25.8%)’이라는 답변이 많았다.

고립감도 하나의 원인이다. 북한이탈주민 상당수는 혼자 탈북했다. 2021년 정착실태조사를 보면 북한이탈주민 가구는 1인 가구인 경우가 32.8%로 가장 많았다. 특히 1인 가구 비중은 60대 이상 연령층에서 63.3%로 가장 높았다. ‘갑자기 많은 돈을 빌릴 일이 생길 경우 도움받을 수 있는 주변 인물이 없다’는 응답이 53.0%로 나타났고, ‘낙심하거나 우울해서 이야기 상대가 필요한 경우 도움받을 사람이 없다’는 응답도 21.9%로 나타났다. 북한이탈주민 5명 중 1명은 속내를 털어놓을 주변인도 없는 셈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의 고립감은 코로나19 기간 더 깊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의 ‘2021년 북한이탈주민 경제사회통합 실태보고서’를 보면, ‘최근 1년 동안 연속적으로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는 응답이 35.1%에 달했다. 이 같은 응답 비중은 비경제활동인구에서 55.6%로 높았고, 남성(18.9%)보다 여성(40.9%)에게서 높게 나타났다. 임순희 북한인권정보센터 총괄본부장은 “북한이탈주민 분들은 기존의 사회망 네트워크가 좁은데다 코로나19 때문에 그나마 있던 관계망도 단절되면서 문제가 심화됐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북한이탈주민 고독사를 방지하려면 일반 시민들과의 복지망을 일원화하고 심리치유를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순희 본부장은 “연령에 관계없이 예방차원에서 1인 가구에 대한 관리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해보인다. 북한이탈주민이 정착한 지 오래됐는데 취약층 명단을 다시 통일부로 보내기보다 지역 행정복지센터에서 일반 시민들과 함께 관리를 받도록 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수 있다”고 했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도 “심리적인 문제가 제일 크다. 북한이탈주민 상당수는 탈북 과정에서 겪은 트라우마와 북한에 가족을 두고 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괜찮아졌다가도 남한 정착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감정이 다시 올라오기도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심리치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