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쓰러진 택배 노동자…‘과로사’로 중대재해법 위반 적용할 수 있을까

유선희 기자
길에서 식사를 하는 로젠택배 경기 이천터미널 택배 상하차 업무 담당 일용직 노동자들. 노동자 제공

길에서 식사를 하는 로젠택배 경기 이천터미널 택배 상하차 업무 담당 일용직 노동자들. 노동자 제공

지난달 19일 새벽 로젠택배 경기 이천터미널에서 50대 일용직 노동자 A씨가 숨졌다. 서울을 포함해 수도권 곳곳에서 첫얼음이 관측된 추운 날이었다. 식사하고 업무를 재개한 지 몇분 안돼 몸에 이상을 느낀 A씨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이후 깨어나지 못했다.

A씨는 앓고 있는 병이 없었다. 동료 노동자들은 ‘과로’가 사망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A씨는 지속적으로 야간노동을 하면서도 휴게시간은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로젠택배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다. 그러나 지난 1월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이후 노동부가 과로사 사건에 대해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적은 아직 없다. 노동자들은 이번에야말로 중대재해법 위반을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A씨는 일용직으로 3년 넘게 이천터미널에서 택배 상·하차 및 스캔·분류 업무를 담당했다. 업무시간은 월요일엔 오후 7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6시, 화요일부터 금요일 그리고 일요일은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였다.

근로계약서상 보장된 휴게시간은 1시간이었다.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근로기준법에 근거해서도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이면 30분 이상, 8시간이면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을 줘야 한다. 하지만 동료 노동자들의 증언과 영상 등을 종합하면 밥 먹는 시간을 포함해 휴식시간은 총 15분 정도에 불과했다. 업무 시간에 앞서 일을 시작하는 날도 있었다. 사고가 난 당일에도 A씨는 15분만에 식사를 마쳤고 업무를 재개하자마자 쓰러졌다.

A씨가 병원에 이송될 때도 동료 노동자들은 계속 일했다. B씨(40대)는 “퇴근할 때쯤 사망소식을 들었다. 현장에 오래 다닌 터라 인사도 주고받는 사이였는데 마음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며 “사망사고 다음날에도 회사는 재발방지 대책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업무환경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이같은 문제를 직접 회사에 제기하기 어렵다. 직접 건의하면 “불만이 있으면 사표 쓰라” “외국인력이 있다”는 답변이 돌아오곤 한다.

원청인 로젠택배는 “휴게시간 미보장 등에 대해선 현재 확인하고 있다”며 “회사는 당사 터미널에서 작업하는 근로자 보호를 위해 하청업체에게 근로기준법상 근로조건, 보건관리 등 관련법령을 준수할 것을 도급계약 내용으로 포함해 체결하고 있다.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도급계약을 해지하는 부분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로젠택배 측은 “근로시간을 확인한 바로는, 과로로 인정될 만한 근로가 없었다는 것을 도급사로부터 회신받았다”고 설명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하청 도급업체와 맺는 근로계약서. 노동자 제공

일용직 노동자들이 하청 도급업체와 맺는 근로계약서. 노동자 제공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부검 결과가 나오는 대로 사인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7일 근로복지공단은 현대제철 포항2공장에서 ‘주 6일·72시간 노동’을 하다 숨진 크레인 운전사에 대한 과로사를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노동부는 해당 사건에 대해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를 아직 적용하지 않았다. 노조는 “산재로 인정된 노동자의 과로사조차 중대재해법 적용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사고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제대로 된 처벌과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될 때 기업살인을 막을 수 있다. 중대재해법을 적용을 즉각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떨어짐이나 추락, 끼임 등의 중대재해에 비해 과로사에 대한 중대재해에서 노동부가 법 적용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기계적으로 노동시간 준수 여부로 안전보건 의무 조치를 따질 경우 법 적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 중대재해전문가네트워크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과로사에서 개인질병 여부는 의학적인 관점이고, 노동 여건을 봐야 한다. 주 52시간을 준수하더라도 휴식시간 보장이나 연속작업으로 인한 노동강도에 대한 조치를 하는 것 등이 안전보건확보 의무다”라고 지적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산재 보상으로 인정한다고 해서 모두 중대재해법으로 가지고 오면 처벌도 쉽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논란만 일 수 있다. 종합적인 판단이 있어야 한다”며 “과로사에 까다롭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추락이나 끼임 등 안전조치 위반이 명백한 중대재해에서도 고의성이 없거나 예견 가능성이 없으면 검찰 지휘를 받아 종결 처리한다”고 했다.


Today`s HOT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한국에 1-0으로 패한 일본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폭우 내린 중국 광둥성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교내에 시위 텐트 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 황폐해진 칸 유니스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개전 200일, 침묵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