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능력주의 담론, 세대 말고 ‘지식 중간계급’ 통해 봐야”

정용인 기자

<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지도> 펴낸 장석준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 인터뷰

[주간경향] 2019년 8월 23일 저녁.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이 촛불, 정확히 말하면 스마트폰 플래시를 켰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입시 의혹을 향한 촛불이었다. 이날 켜진 ‘촛불’의 함의는 탄핵 전 최순실의 딸 정유라 승마 의혹에 대한 이화여대생들의 촛불시위와 일맥상통하는 듯했지만 사뭇 달랐다. 촛불시위에 참석한 한 학생은 “조국 교수가 말로만 외치던 공정과 정의를 직접 실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이날이 분기점이었다.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권은 상당수 20대의 인기를 잃었다. ‘내로남불 정권’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공정과 정의는 조국 전 장관을 수사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고, 결국 정권의 반대편에 서서 20대 대통령이 됐다. ‘조국 심판’에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해 9월 서초동에서는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을 내건 대규모 촛불시위가 열렸다. 윤 대통령이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운 공정이 자신의 가족과 측근들에게는 작동하지 않는 ‘선택적 공정’이라는 비판은 현재까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어느 의미든 이때 촉발된 ‘공정’의 의미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공정론의 또 다른 함의가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지적도 꾸준히 있었다. 능력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출신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관념이다. 그 ‘능력’이라는 것의 경계선을 확정지을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미국 미식축구 감독 배리 스위처)라는 말처럼 공정론의 바탕에 깔려 있는 능력주의는 또 다른 어떤 집단의 집합적 이해를 대변하는 이데올로기일지도 모른다.

장석준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이 계급을 프리즘으로 삼아 한국의 능력주의를 분석하는 책을 최근 펴냈다. 공정론의 근간이 되는 능력주의 비판을 다루는 주목할 만한 책들, 예컨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2020)이나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2021), 김동춘의 <시험능력주의>(2022)와 같은 책이 이미 나와 있는데도 굳이 이와 관련된 책을 한권 더 보태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한국사회가 순정한 능력주의를 받아들이게 되는 역사·사회적인 토대를 구체적으로 밝혀보고자 한 것이 나의 의도였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9일 경향신문사에서 그와 인터뷰를 했다.

장석준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이 11월 9일 서울 경향신문사에서 한국의 능력주의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장석준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이 11월 9일 서울 경향신문사에서 한국의 능력주의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공정·능력주의 문제를 다룰 때 과거의 잣대는 주로 세대였습니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문제나 조국대전 당시에도 2030세대의 어떤 문제 제기로 봤고요. 그런데 이번에 낸 책을 보면 세대보다는 지식 중간계급이라는 계급의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제기했더군요.

“네. 한국사회의 병목현상이라고 표현할 만한 문제들을 계속 세대로 환원해 진단·분석하는 조류가 확산하니 그에 대해 교정하려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중앙대 신진욱 교수가 쓴 <그런 세대는 없다>와 같은 책이 대표적이죠(주간경향 1471호, 신진욱 교수 인터뷰 “기성세대 기득권이란 진단, 엉뚱한 처방 낳고 있다” 참조). 저도 그 취지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착시가 있다고 봐요. 현상적으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해서 특정한 어떤 성향이나 감정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은데 실은 그 젊은 세대가 왜 그러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들은 공교육체제가 가장 발전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이 가장 선진적으로 발전한 상황에서, 대량으로 완전한 고학력을 갖췄지만 사회적으로는 좋은 일자리가 모자란 그런 상황에서 사회에 진출하는 세대이기 때문이에요. 그 세대는 거의 인류사적으로 전무후무하게 압도적인 다수가 제가 지식 중간계급이라고 이야기했던 그런 범주에 많이 속해 있는 세대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나타난 겁니다. 겉으로 보기엔 세대 문제이지만 실은 계급이라는 아주 고전적인 잣대를 놓고 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이지요.”

-현재 주간경향 지상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최근 <좋은 불평등>을 펴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것을 운동구호로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정책단위에서 작동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에서도 통상적인 비판과 달리 25년짜리 진보정책을 5년 정권 내에 실현하려고 했던, 어떻게 보면 가장 급진적이고 순진한 정부였고 그런 기조에서 10%대 최저임금 인상을 했다가 2년, 3년차에 정책을 대폭 수정했다고 비판했어요. 그런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비정규직 제로정책이 과연 급진적 정책이었냐 볼 때 저는 급진적 정책이 아니라 대단히 상식적이고 최소한의 접근법이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대표적으로 인천국제공항(인국공)의 경우 정규직은 다 관리직 사원이거든요. 그리고 실제 프런트에서 사람들이랑 얼굴 맞대고 인국공에서 인간의 노동으로 해야 할 일을 직접 한 사람들은 다 비정규직이었어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상식으로 설명 가능하냐는 거죠. 만약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불가능하다면 여기서 해야 할 일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예요. 관리직이 특별하게 더 고용안정을 누려야 할 이유도 없는 거고, 구조적으로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는 거죠. 그렇다면 이게 문재인 정부가 민간기업에 강요한 게 아니라 최소한 공공부문에서 이런 상식에 어긋나는 고용관행은 바꿔나가겠다고 하는 것인데, 이건 무슨 진보가 아니라 최소한 ‘리버럴’을 내거는 정부라면 했어야 할 일 아닐까요. 실제로는 그것조차 자회사를 만들어 중규직을 만드는 방식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최병천 소장이 말하는 그 부분은 민주당의 이데올로그가 선거에서 이기려면 우경화하는 방식으로만 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대단히 정치적으로 지난 정부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정·능력주의 담론, 세대 말고 ‘지식 중간계급’ 통해 봐야”

-당시에 인국공 논란 관련으로 많이 나왔던 이야기가 비정규직들이 일하는 자회사들이 고용이 애매한 영세기업이 많다 보니 그 비정규직이 회사대표의 친인척 같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을 설령 중규직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공정의 탈을 쓴 불공정의 합법화’라는 식의 불만이었는데요.

“친인척 고용 논란은 인국공뿐 아니라 서울교통공사 등 여러곳에서 나타났습니다. 그건 오히려 자회사를 만들어 해결하려고 했던 방식이 조장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조직 내의 부패 문제로 봐야지 고용형태로 봐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대안은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요구한 대로 이것을 임단협 문제로 공개적으로 했으면 그런 문제는 최대한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걸 관료적으로 처리하려다 보니 부패의 여지가 더 많이 생기는 거고.”

-인국공 논란 등에서 제기된 공정론 배후에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있고, 사회를 자신이 밟고 올라서야 하는 사다리로 인식하는 지식 중간계급의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듭니다. 조국 대전 당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그리고 부산대에서 공정문제를 제기하며 조국 퇴진을 주장하는 촛불을 들었고 그 사회적 파장력도 컸습니다. 그런데 올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경우 처제가 관여된 ‘딸 스펙공동체 의혹’이 나왔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다들 조용했어요. 왜일까요. 상대적으로 손에 잡히는 조국 전 장관 케이스에 비해 한동훈 장관 딸의 ‘스펙 품앗이’는 일반 사람들은 생각도 못 하는 미국 대학 입시를 염두에 두고 벌인 ‘넘사벽’에 해당하는 일이라서일까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간계급의 의식 속에 자리 잡은 ‘지위 상승의 사다리’엔 자기가 위로 올라갔을 때 직접적으로 경쟁상대가 될 수 있는 부분에서 불공정 사례가 등장했을 때 훨씬 더 직접적으로 반응합니다. 자기가 도전하기도 힘든 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훨씬 거리가 먼 거고요. 조국은 국내 대학을 놓고선 그런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에 훨씬 크게 분노했고, 이거(한동훈 딸 스펙 품앗이)는 아예 실제 순수 부르주아 계급에 가까운 그런 쪽에서 이뤄지는 일이니. 부차적이지만 한동훈은 이제 시나리오(미국 대학 진학)가 전개되고 있는 거지 결과물까지 나오지는 않은 상황이었잖아요. 조국은 결과물이 나오고 한참 된 사건이었고. 그런 점도 체감도에 영향을 미쳤던 듯합니다.”

-능력주의 문제를 처음 제기한 마이클 영의 책을 보면 역사적으로 노동계급은 다른 능력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생적 평등주의의 담보자였으며 ‘우리도 너희만큼 배울 기회가 있었으면 네놈쯤은 상대도 안 돼’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흥미로운 지적이 나오는데요. 한국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그런 노동계급 문화를 가질 기회도 없었지만, 1950~1960년대 사회사를 공부해보면 재벌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했던 의식 흐름이 읽힙니다. 소 팔아 현대를 만든 정주영이나 쌀 가게를 하다 삼성을 일으킨 이병철에 대해 ‘우리도 기회만 있으면 너만큼 부자가 될 수 있었다’는 그런 독특한 평등주의적 시각을 개발연대의 어르신들은 가지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젊은 세대에겐 그런 평등주의는 소진된 것 같고, 재벌가 특히 삼성가(家) 사람들은 한국사회의 신귀족층이 된 듯한 느낌입니다.

“그게 한국사회의 독특한 맥락도 있지만 실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이 돼버린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왜냐면 대중은 항상 자생적인 능력관념을 갖고 능력이 좋을수록 거기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혹은 능력에 차이가 없는데 불공정한 대우를 받으면 안 된다는 자생적인 도덕경제 관념이 다들 있거든요. 능력주의를 바라보는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저는 두가지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자생적인 능력관념은 그 자체로는 정당하고 현재 사회가 그걸 보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능력주의란 뭐냐, 능력주의는 그런 대중의 능력관념에 기생하면서도 배반되는 어떤 체제를 만들어냅니다. 그건 특정한 체제가 요구하는 어떤 능력, 대개는 지능으로 나타나죠. 그 지능이라는 한가지 능력을 가지고 자본가가 아닌 인간을 쭉 줄 세워 누구는 일정하게 대접하고, 나머지는 배제하는, 그런 것이 현실의 능력주의입니다. 그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마이클 영이 메리토크라시라는 말을 만들어냈고요. 한국이 그걸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회지요.”

-능력의 다원화를 이야기하더라도 상품경제에 포섭되지 않고 체제 밖에서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예컨대 <브리튼 갓 탤런트>처럼 한국에서도 <슈퍼스타K>와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그런 재능을 발굴하는 시스템이 있는데, 아이들이 장래희망으로 유튜버가 되겠다는 것도 예전엔 학벌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능력’을 평가하던 걸 넘어서 대중자본주의가 그런 재능의 다원성을 한발 앞서 포섭해 나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조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사회의 주류가 요구하는 전형화된 능력이 아닌 능력이 인정을 받으려면 결국 유일한 방식은 자기 조직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 없어요. 전통적으로는 노동조합이었고, 지금은 꼭 노조의 형식이 아니라 직업단체나 예술인단체일 수도 있는데 그런 식으로 단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능이라는 잣대로 이미 국가관료와 기업이라는 자기조직을 가지고 있는 세력과 맞서 협상하고, 그 협상을 통해서 사회 전체적 역학구도가 작동되도록 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2019년 8월 28일 밤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주최의 ‘제2차 조국 교수 STOP! 서울대인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 우철훈 기자

2019년 8월 28일 밤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주최의 ‘제2차 조국 교수 STOP! 서울대인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 우철훈 기자

-책에서 아주 재미있게 본 것이 강남 중산층 문화가 표준이 돼버렸다는 대목입니다. 노동계 상층뿐 아니라 지역사회 모두 그렇다는 건데, 핵심이 ‘아파트 소유로 자산을 형성하고 자기 자녀 대학 진학을 통해 중간계급 지위를 세습하는 것’입니다. 이런 표준모델이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지금이 제일 극성기이기 때문에 이 극성기가 붕괴로 갈지 아니면 새로운 변형으로 갈지는 봐야겠는데요. 사실 박해천 선생 등이 그 논의를 선구적으로 했고 저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실제 제가 1970년대 초에 태어나 쭉 그것이 확산하는 과정을 목격해왔기도 하고요. 지리적으로 봐도 재미있는 게 한국의 구중산층 문화가 있었지만 신중산층 문화는 원래 1960년대 동부 이촌동에서 원형이 만들어져 바로 강 건너 반포로 오게 되거든요. 그리고 반포 아파트단지 만들어질 때 대학교수와 같은 지식층이 그쪽에 결집해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로 이어졌고 강남 전체로 확대됐습니다. 군사정부에서 그 강남의 라이프스타일을 목동·고양·분당으로 쭉 확장했고, 1990년대에 이르면 거의 전국화됩니다. 이게 한국자본주의의 굉장히 중요한 한 시대적 축이었다고 보고요. 바로 그 시점에 노동계급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일어서긴 했으나 1990년대 초부터 IMF 환란을 정점으로 해서 199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이제 거기에 투항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을 직시해야 정규직·비정규직 문제 등 여러 문제의 근본적인 측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에서는 ‘지식중간계급의 동참없이 사회변혁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는데 능력주의에 포획된 지식중간계급의 하위층이 동맹할 대상, 노동계급이라는 집단의 전망이 불투명하지 않나요. 노조 조직률도 갈수록 떨어지고….

“능력주의를 비판한 책이기 때문에 지식 중간계급을 상당히 부정적인 색채로 다룰 수밖에 없었지만, 현대사회는 마르크스의 예측과 달리 자본가와 노동자 이외에도 중간계급이라는 집단까지 3계급 사회가 돼버렸다고 생각하거든요. 중간계급의 핵심이 지식 중간계급입니다. 자본주의 자체가 과학기술에 직접적으로 의존하는 형태로 가고, 그걸 관리하기 위해서 관료체계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지식경제화되고 정보화되는 상황 속에서 사회의 열쇠는 어떻게 보면 자본가보다 지식 중간계급이 가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책의 결론은 그들을 버리고 노동계급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하자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둘이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단히 어려운 이야기인 듯하지만 긍정적인 사례가 없지는 않아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 금융위기에서 일정 정도 비껴나면서 지식 중간계급의 하위계층이 여전히 능력주의 같은 이데올로기에 강하게 부착돼 있지만, 금융위기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은 나라들, 대표적으로 미국 같은 경우의 바로 그 지식 중간계급의 하위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특히 젊은 세대, MZ세대는 상당히 좌경화하면서 실제 노동조합 조직화 운동에 뛰어든다든지, 아니면 버니 샌더스와 같이 예전이면 급진좌파로 경원시했을 후보를 지지한다는지 하는 그런 흐름을 보였지요. 물론 여전히 마이클 샌델 같은 사람이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책을 쓸 정도로 제가 책에 쓴 한국사회의 부정적인 면모가 미국에서도 역시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어쨌든 반대 모습도 일정 정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반대 경향을 더 확대하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민주주의를 재생하는 일 아닌가, 조심스럽지만 그렇게 전망합니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