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 포기’ ‘작물 변경’ 등유가격 폭등에 “씨앗 심을 엄두 안나” 절규하는 화훼농가읽음

김세훈 기자

작년 10월 ℓ당 1100원 → 올해 11월 1700원

비용 절감 위해 손 많이 가도 연탄 떼는 농가 늘어

영세농가들 “전기난방 초기 투자 비용 지원” 호소

전문가들 “농가연합 지열난방 등 체계적 도움 필요”

29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헌인화훼단지의 한 화원에 난방 표지판이 붙어 있다. 김세훈 기자

29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헌인화훼단지의 한 화원에 난방 표지판이 붙어 있다. 김세훈 기자

“씨 뿌리기가 무서워요.” 경기 과천시에서 화훼농원을 운영하는 노정현씨(46)는 매년 이맘때쯤 하던 한련화와 채송화 파종을 미뤘다. 나날이 치솟는 난방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노씨는 한파에 대비해 250평 규모의 온실에 비닐을 추가로 덧대고 전기스토브와 기름보일러도 마련했다. 그럼에도 작년 같은 시기 한달에 100만원 남짓 들던 난방비가 올해는 300만원가량으로 늘었다. 노씨는 다른 작물을 키워볼까도 고민했다가 이내 생각을 접었다. 그는 “작물마다 요구되는 기술이 달라서 함부로 바꿨다가는 쪽박을 찰 각오도 해야 한다”고 했다.

1일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작년 10월 ℓ당 1100원을 오르내리던 등유가격은 올해 11월 들어 1700원대로 뛰었다. 면세등유의 ℓ당 가격도 1400원에 육박한다. 등유로 난방을 하는 화훼농가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일부는 작물 변경 등 고육책을 쓰기도 하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은 농가는 아예 파종을 포기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헌인화훼단지는 쌀쌀해진 날씨에 입동 준비가 한창이었다. 몇몇 화훼농업인들은 가로변에 전시된 꽃들에 비닐을 씌웠다. 온실 벽 곳곳에 솜이 덧대진 모습도 눈에 띄었다. 온실 위에는 열효율을 높이려고 검은색 부직포를 덮었다. 온실 옆에는 겨울나기를 위한 연탄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헌인화훼단지의 한 온실 벽 군데군데 솜이 붙어 있고 그 옆에는 난방을 위한 연탄이 쌓여 있다. 김세훈기자

헌인화훼단지의 한 온실 벽 군데군데 솜이 붙어 있고 그 옆에는 난방을 위한 연탄이 쌓여 있다. 김세훈기자

늘 돌아오는 겨울이지만 올겨울 화훼농가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43년째 화훼농원을 운영하는 이모씨(78)는 올해 나무 파종을 포기했다. 이씨는 “3~4월이 대목이라 이때 나무를 출하하려면 지금 씨앗을 뿌려야 한다”며 “싹을 틔우려면 계속 불을 때줘야 하는데 난방비가 올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씨는 열대관목인 포인세티아 재배도 그만뒀다. 군데군데 붙은 솜 사이로 보이는 이씨의 온실 내부는 텅텅 비어 있었다.

900평 규모의 온실 중 400평을 등유로 난방하는 박성근씨(60)는 지난달 280만원을 들여 등유 2000ℓ를 넣었다. 박씨는 “2000ℓ라고 해도 23~24일이면 다 쓴다”며 “작년에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난방비를 1500만원 정도 썼는데 올해는 비용이 크게 늘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박씨는 난방비를 줄이려고 고온식물인 베고니아 비중을 줄이고 추위에 강한 벌나무 비중을 늘렸다. 박씨는 “온실마다 에너지 효율이 다른데 우리는 그나마 에너지 효율이 좋은 편이다. 효율이 낮은 농가는 겨울나기가 더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기름값은 한 번 오르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등유 가격이 ℓ당 1200원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결국 전기난방 비중을 높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문제는 전기난방에 들어가는 시설투자 비용이다. 박씨는 “전기는 가격이 등유처럼 가파르게 오르지 않아 안정적이지만 초기 설치비용이 2000만원 정도 들어간다”며 “10년 정도 꾸준히 운영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임차농들에게는 부담되는 액수”라고 했다.

난방 방식을 바꿀까 고민하는 건 박씨 만이 아니다. 오모씨(70)는 “등유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 과천에 있는 화훼농가들은 상당수가 연탄 난방으로 되돌아갔다”며 “연탄 가격도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등유에 비해서는 저렴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연탄은 등유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지만 일일이 갈아야 해서 손이 많이 가고 전기 에너지에 비해 환경오염 유발 가능성도 높다.

작년 초 헌인화훼단지에 농원을 연 이정길씨(40)는 “난방비가 올랐다고 화훼 가격을 무작정 높이기도 쉽지 않다. 결국 농가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셈”이라며 “영세농가들에게는 전기 난방시설 설치 비용을 일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행정 지원이 이뤄진다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대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보조금 지급과 같은 단기적인 대책보다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지하수를 활용한 지열난방 등 재생에너지 난방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영세농가들의 경우 여러 농가들이 연합해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경제적 부담을 낮추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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