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성희롱 진정’ 10년 새 2배 증가···절반 이상 ‘직접고용 상하관계’

이유진 기자
지난해 1월25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관계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의의 정의로운 권고 촉구를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기남 기자

지난해 1월25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관계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의의 정의로운 권고 촉구를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기남 기자

#1.야구부 감독 A씨는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의 부모 B씨에게 술자리에서 “남편이 아니면 한번 안아보고 싶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 좋아하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발언했다.

#2.학원 원장 C씨는 소속 강사 D씨에게 미니스커트, 킬힐, 커피색 스타킹, 진한 화장 등을 입고 강의할 것을 요구했다.

#3.E씨는 자신의 성관계 요구를 거부한 직속 부하 직원 F씨에게 퇴사를 종용하고 업무에서 배제했다. 근무평가에서 최하위 점수를 주어 연봉이 삭감되도록 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일 오후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성희롱 예방과 실효적 피해구제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고 지난 10년(2012~2021년)간 인권위가 조사한 성희롱 진정사건 통계와 결정 사례를 공개했다. 이번 토론회는 인권위가 ‘성희롱 진정사건 백서 제2권’을 발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다.

인권위는 ‘업무 관련성’ ‘성적 언동’ ‘성희롱 2차 피해’ 등을 성희롱 판단 기준으로 본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앞서 제시한 사례들이 이 같은 기준에 부합한다고 했다. 발제자로 참여한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준을 구체적으로 종합해 상대방이 그런 행위를 원하지 않았고 성적 굴욕감을 느꼈는지, 합리적인 여성의 관점에서도 성적 함의가 있고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줄 만한 행위였는지에 의해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지난 10년 동안 접수된 성희롱 진정사건의 당사자간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 인권위 제공

국가인권위원회에 지난 10년 동안 접수된 성희롱 진정사건의 당사자간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 인권위 제공

이번에 발간된 백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인권위에 접수된 성희롱 진정사건은 총 2411건이다. 2002~2011년 접수된 1079건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2411건 중 2365건이 종결 처리됐으며, 이 중 구제조치(인용)가 이뤄진 비율은 12.9%에 달한다. 구제조치 304건을 유형별로 보면 권고가 136건으로 가장 많았고, 합의종결 116건, 징계권고 25건, 조정 23건, 수사의뢰 2건, 고발 2건 등의 순이었다. 권고·징계권고가 수용된 비율은 67.1%였으며, 일부 수용 17.4%, 불수용 15.5%로 집계됐다.

발생기관별 접수건수는 공공영역이 609건(이하 인용 76건), 민간영역이 1766건(228건)이었다. 공공영역 기관별 접수건수는 교육기관 263건(22건), 공공기관 194건(21건), 지방자치단체 92건(12건), 중앙행정기관 65건(9건), 경찰 38건(1건), 군 26건(9건), 교정시설 18건(1건), 사법시관 4건(1건), 입법기관 1건(0건) 순이었다. 민간영역에서는 개인사업체가 929건(120건), 기업 등 영리단체 534건(89건), 다수인 보호시설 95건(3건), 비영리 단체 64건(10건), 의료기관 42건(6건) 순으로 나타났다.

접수된 진정사건에서 당사자 간 관계는 직접고용 상하관계가 52.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직접고용 동료 관계 12.2%, 재화 용역 7.0%, 교육자와 교육생 5.5%, 공권력 행사 4.1% 등이 뒤를 이었다. 가해자 지위는 중간관리자가 38.5%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대표 32.2%, 평직원 15.5%, 고위관리자 11.2%, 기타 2.6% 순이었다. 피해자 성별은 여성 85.5%, 남성 14.5%로 집계됐으며, 피해자 연령은 30대 37.1%, 40대 24.4%, 20대 17.7%, 50대 13.3%, 60대 6.2%, 20대 미만 1.3% 순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성희롱 진정사건 백서 제2권’(왼쪽)과 1일 열린 정책토론회 자료집. 이유진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성희롱 진정사건 백서 제2권’(왼쪽)과 1일 열린 정책토론회 자료집. 이유진 기자

인권위는 백서에서 각하 또는 기각된 사례들을 소개하며 성희롱 판단의 복잡성을 설명했다. 퇴사한 가해자가 전 동료인 피해자를 만나 성희롱한 사건이나 피해자가 퇴사한 이후 인사팀에 항의 방문했다가 성희롱 당한 사건 등은 업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해 사건을 각하했다고 밝혔다. 다만 피해자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통보했지만 성희롱 당시 퇴직 처리가 되지 않은 사건, 가해자가 “다시 출근할 수 없겠냐”며 업무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전화를 한 사건에선 업무 관련성을 인정했다.

이날 토론 세션에서는 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 소장, 배수진 서울지방변호사회 성희롱피해구제센터 센터장(법무법인 천지인 변호사),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 등이 ‘존엄한 일터 구축을 위한 인권위의 역할’ 등에 대해 토론했다.

신 회장은 “인권위 진정의 경우 가장 큰 걸림돌은 사건 처리 기간의 장기화”라며 “성희롱 판단(인용)의 지체는 피해자의 정신적·신체적 피해 회복 장기화로 피해자 일상회복의 걸림돌이 되며, 2차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인다”고 했다. 이어 “인권위 진정 기한이 1년 이내의 사건으로 한정하는 문제도 있다”며 “2차 피해와 재발 방지를 위한 사후 보호조치가 확대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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