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무방비’ 일반고 졸업생

“직업반 3일 만에 전공 선택 강요…기술 살린 취업 드물어”

유경선·이홍근 기자

(하) 유명무실한 위탁교육

“고교 직업반 체험 기간 고작 3일
진로·적성 탐색할 시간 모자라”
직업반 ‘낙오자가 가는 곳’ 인식
통학거리 멀고 동기부여 어려워

서울 위탁학교 6곳 학생 수 줄어
정원 미달로 반 구성 취소되기도
고졸 취업 지원 10년 보장제 등
대졸 노동자와 격차 해소가 관건

서울의 한 일반고 졸업을 앞둔 A씨(19)는 취업을 위한 위탁교육을 받으며 선택한 전공을 살리지 않기로 했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다.

A씨는 일찍이 대학보다는 빠른 취업에 뜻이 있었다. 그래서 특성화고를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할 수 없이 일반고에 진학한 A씨는 취업을 위해 위탁교육을 받았다. ‘위탁교육(일반고 직업교육 위탁과정)’이란 일반고(인문계고) 학생이 외부 기관에서 위탁 형태로 받는 직업교육이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위탁교육기관인 종로산업정보학교에서 A씨가 전공으로 선택한 건 컴퓨터보안. 하지만 지금 A씨는 컴퓨터보안과 아무 상관 없는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다.

A씨에게 주어진 전공 선택 기한은 ‘3일’이었다. 진로와 적성을 탐색하기에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하루에 한 가지씩, 3일 동안 세 가지 전공을 체험하고 과를 결정해야 했는데, 기회가 너무 적었어요. 시간을 좀 더 써서 여러 가지 전공을 체험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학에 가지 않고 바로 취업을 준비하려는 일반고 학생들은 3학년이 되면 외부 직업교육기관에서 위탁 형태로 직업활동에 필요한 실무와 지식을 배울 수 있다. 일반고에선 직업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탁교육은 고용노동부 주관 과정과 시·도 교육청 소속 산업정보학교 과정이 있다. 후자는 전공대로 취업하는 경우가 점점 드물어진다. 위탁교육이 역할을 못하는 셈이다.

■일반고 위탁교육 학생 수, 5년간 40% 감소

이런 현실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시교육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시교육청 소속 6개 위탁교육기관(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서울산업정보학교·서초문화예술정보학교·아현산업정보학교·은평문화예술정보학교·종로산업정보학교) 학생 수는 2018년 2289명에서 2022년 1429명으로 40% 가까이 줄었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걸 감안해도 감소 폭이 크다.

수료자 대비 취업자 수도 감소 추세다. 시교육청이 강 의원실을 통해 제공한 자료를 보면 6개 위탁교육기관 전체 수료자 대비 취업자 수 비율은 2018년 17.7%에서 2022년 13.6%까지 떨어졌다(수료 시점 기준). 6개 기관에 투입된 시교육청 예산은 2018년 73억4905만9000원, 2019년 68억4402만9000원, 2020년 81억1530만1000원, 2021년 98억164만1000원, 2022년 93억6185만원이다. 5년간 326억5188만원을 들였지만 효과는 그닥 크지 않다.

일반고 위탁반(직업반)을 관리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이 위탁교육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학업에서 ‘낙오’된 학생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서울 성북구의 한 일반고 교사는 11일 “직업반은 취업에 관심이 있기보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공부를 하기 싫어서 오는 곳으로 통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경기 시흥시의 한 일반고 직업반 교사 남모씨도 “대부분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성적이 최하위권인 학생들이 온다”며 “기술을 배워서 취업하겠다고 결심한 학생들도 있지만, 절반에서 3분의 2 정도는 학교생활에 흥미가 없어서 직업반을 도피처로 삼는 경우”라고 했다.

동기부여가 약하니 위탁교육을 끝까지 마치기도 어렵다. 남씨는 “위탁교육기관은 대부분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며 “가뜩이나 중학교 때부터 무기력을 학습한 학생들이 많은데, 한 시간씩 걸리는 통학거리에 지쳐서 흥미를 잃고 두 달쯤 지나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남씨가 말했다. “위탁교육에서 배운 기술로 취업을 하는 학생들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한 해에 한두 명 정도밖에 없어요.”

■“핵심은 대졸 노동자와 격차 해소”

서울 도봉구의 한 일반고 직업반 교사 조모씨는 “작년에는 한 학년에 13명이 위탁교육을 받았는데 3명이 적응을 못하고 돌아왔고, 올해는 학급을 꾸릴 수 있는 최소 기준인 10명에도 못 미치는 인원이 나와서 위탁반 구성을 못하게 됐다”며 “다른 학교들도 비슷한 추세”라고 했다. 또 “인원 미달로 5차까지 추가모집을 하는 위탁교육기관, 입학할 때 20명이던 학생 수가 10명도 안 남아 있는 학과도 있다”면서 “위탁교육기관들이 설명회 때마다 ‘학생 좀 보내달라’고 호소하는 지경”이라고 전했다.

내실 있는 직업교육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대학진학을 선택하지 않는 일반고 졸업생 다수는 무방비로 취업전선에 나간다.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2022년 전체 고등학교 입학생 중 76.7%가 일반고에 입학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인문계 교육이란 ‘아카데믹 커리큘럼’인데, 80% 가까운 학생이 모두 학문 적성일 리가 없지 않으냐”고 했다. 일반고 학생들도 직업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계 고졸 취업’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고졸 취업 안전망 10년 보장제’(고졸 10년 보장제)이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경기도교육청의 ‘진로·직업교육 정책 태스크포스(TF)’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제안한 것이다.

이 제도는 고등학교 재학 3학년과 졸업 후 7년을 포함한 총 10년 기간 동안 국가가 고졸 취업자들의 사회안전망과 직업교육을 책임지고 보장하는 내용이 골자이다. 대졸자 평균 나이(28세)를 감안해 고등학교 졸업 후 7년까지를 지원 기간으로 정했다. 대졸자 평균 나이에 상응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고졸자들의 직업교육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졸 노동자의 구직 기간은 대졸 노동자보다 평균 2년 이상 더 길다. 고졸 10년 보장제는 이를 고려해 고졸 취업준비생들이 1년간 마음 놓고 구직활동을 할 수 있도록 생계비를 지원하는 안을 포함한다. 고졸 노동자의 임금은 대졸 노동자 평균 임금의 60% 수준인데(2021년 고용노동부), 이 격차만큼을 3년간 지원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대졸 노동자와의 격차 해소가 이 제도의 근본 취지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중학교 단계에서도 진로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 성북구의 한 일반고 직업반 학생 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학교 때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진학을 고려했다는 학생은 3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9명은 별생각 없이 일반고에 진학했다고 한다. 이들은 직업반을 선택한 이유로 “진로를 늦게 정해서” “일반계에 진학해보니 공부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일반 중학교를 나오면 일반고에 가야 한다는 틀에 박혀 있어서” “성적이 좋지 않아서” 등을 들었다.

진숙경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9월 강득구 의원실과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실이 주최한 ‘고졸 취업 안전망 10년 보장제’ 토론회에서 중학교 자유학년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진 연구위원은 “중학교 1학년은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때”라며 “고등학교 선택을 앞둔 3학년 때 직업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만남을 제공해야 진지하게 자기 진로를 모색할 수 있다. 덴마크와 아일랜드 등 외국의 사례도 그렇다”고 설명했다.

이은희 경기 덕이중학교 교장은 “진로직업교육이 시·도교육청 단위로 내려와 있는 현재 체계에 따르면 교육감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극심할 수밖에 없다”면서 “중학교 진로교육, 일반고 직업교육과 직업계 고등학교 연계, 평생 직업교육까지 모두 아우르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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