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의 1년, 돌아보니 결국 ‘원점’으로?

김세훈 기자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0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진행했다. 전장연은 경찰과 대치하면서 “시민으로써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싸워왔다”고 했다. 지난 1년여 동안 관심을 모았던 전장연의 타임라인을 정리해봤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지난해 12월20일 오전 서울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하철에 탑승해 시민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지난해 12월20일 오전 서울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하철에 탑승해 시민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장연은 2021년 12월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출근길 지하철 탑승시위를 시작했다. 휠체어를 출입문에 끼워 열차 운행을 지연시키는 방식이었다. 전장연은 저상버스 도입,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등 장애인 권리 예산을 편성해달라고 촉구했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상임대표는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게 해달라”고 했다.

지난해 3월에는 서울교통공사에서 전장연에 부정적 여론 조성을 목적으로 한 내부 문건을 작성해 논란이 됐다. 문건에는 “(전장연의) 디테일한 약점은 계속 찾아야” “(탈시설, 주거권 요구에 대해) ‘그걸 왜 지하철에서 주장해’ 여론 형성” 등의 내용이 담겼다. 문건이 공개되자 서울교통공사는 “개인이 내부망에 올린 글”이라며 “작성 직원을 직무에서 배제했다”고 해명했다.

전장연과 지하철 시위는 정치적인 화두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설전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이 전 대표는 전장연에 “시민을 볼모 삼는다” “언더도그마(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고 인식하는 현상) 담론으로 묻으려 한다”고 했다. 전장연은 이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소수자 혐오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이 전 대표와 박 상임대표는 장애인이동권을 주제로 두 차례 방송에 나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이어온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지난해 7월19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면서 입장문을 경찰 관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날 전장연은 용산서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조사를 거부했다. 성동훈 기자 사진 크게보기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이어온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지난해 7월19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면서 입장문을 경찰 관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날 전장연은 용산서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조사를 거부했다. 성동훈 기자

경찰과의 갈등도 고조됐다. 지난해 4월 경찰은 전장연 소속 활동가 2명을 업무방해 및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이후 고의로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킨 혐의로 장애인 활동가 28명이 무더기로 입건되기도 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전장연을 두고 “불법행위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 사법처리하겠다”고 공언해 논란이 됐다. 전장연은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장애인 권리 예산을 쟁취하겠다”고 맞받았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이들 중 11명을 업무방해˙교통방해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연말 2023년도 예산안 심사를 거치며 전장연의 숙원이 해소되는 듯했다. 장애인권리예산이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서 정부안에 비해 약 6500억원 증액된 것이다. 전장연은 최종적으로 기획재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기재부가 증액된 예산 중 약 100억원만 승인하면서 전장연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전장연 소속 장애인과 활동가들이 20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자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이를 막고 있다. 성동훈 기자

전장연 소속 장애인과 활동가들이 20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이자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이를 막고 있다. 성동훈 기자

서울시도 전장연을 압박했다. 지난해 12월14일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 시위로 인한 열차 지연이 우려된다며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공사는 “열차 지연으로 지하철 환승 통로 등에 승객 밀집도가 높은 상황이어서 무정차 통과했다”고 말했다. 전장연은 “지금까지 장애인의 권리는 늘 무정차였다”고 했다.

법원은 서울시와 전장연을 중재하는 강제조정안을 내놓았지만 양측의 입장이 정면충돌하면서 결국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2월19일 ‘서울교통공사는 2024년까지 19개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전장연은 열차운행 시위를 중단하라’는 강제조정안을 제시했다. 또 출근길 시위로 열차 운행이 5분 지연될 때마다 전장연이 공사에 500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전장연은 수용 입장을 밝혔으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1분만 늦어도 큰일나는 지하철을 5분이나 늦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조정안을 거부했고, 결국 재판으로 가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전장연은 지난 4일 오 시장에게 면담을 요청하며 시위를 잠정 중단했다. 오 시장도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호응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6일 전장연을 상대로 지하철 운행 차질 등에 대한 6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게다가 서울시는 전장연뿐 아니라 다른 장애인 단체와 함께하는 면담이 돼야 한다면서 사실상 전장연과의 단독 면담을 거부했다. 결국 전장연은 지난 20일 휠체어를 끌고 다시 지하철로 나왔다. 1년1개월 전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시작한 지하철 탑승 시위를 다시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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