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가족 잃어 가장 추운 겨울…‘따뜻한 위로’가 이어졌다

윤기은·이홍근 기자

한파 속 구룡마을·이태원 분향소의 설 연휴 마지막 날

<b>끊이지 않는 한숨</b> 지난 20일 발생한 화재로 집을 잃은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 이재민들이 24일 불타버린 가재도구를 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끊이지 않는 한숨 지난 20일 발생한 화재로 집을 잃은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 이재민들이 24일 불타버린 가재도구를 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이재민들, 전소된 자택에서 귀중품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아
그나마 살림 남아있는 주민들은 떡국을 제공하는 등 힘 보태
이태원 분향소에선 합동 차례…이상민 장관 ‘도둑 조문’ 빈축

전국에 한파특보가 발효된 24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이재민들은 잿더미만 남은 마을에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유가족은 시민분향소에서 설연휴 마지막 날을 보냈다.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을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이날 오전 11시쯤 개포동 구룡마을로 들어서자 잿더미와 섞인 검은색 얼음이 골목 곳곳에 덮여 있었다. 아직 수습되지 않은 냄비, 의자 등 가재도구와 철제 집기류에는 흰색 얼음이 서려 있었다. 지난 20일 발생한 화재로 이곳 주민 500여명이 대피했고 63명은 집을 잃었다.

강남구청이 인근 호텔 네 곳에 임시 거주공간을 마련했지만 이재민들은 가만히 있지 못했다. 전소된 집 근처를 돌아다니던 A씨(73)는 “패물을 못 찾겠다”고 했다. 주민 B씨도 “애들 (세뱃돈) 주려고 설날 앞두고 현금을 뽑아놨는데 다 타서 없어졌다”고 말했다.

구룡마을 의용소방대장 백희심씨(60)는 “그나마 어제까지만 해도 (화재 현장에서) 반지를 찾아간 사람도 있었다”며 “오늘은 (땅이) 꽝꽝 얼어 있어 물건을 꺼낼 수가 없다”고 전했다.

마을 한편에 설치된 비상대책본부 천막에선 주민 8명이 연탄불을 피워놓고 회의를 했다. 강남구청은 구룡마을 인근 호텔 네 곳에 마련한 임시 거주공간을 26일까지 운영할 방침이다.

그 이후에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보유한 위례지구 임대주택에 거처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이재민은 이에 반대한다. 임대주택 월세가 걱정될 뿐 아니라 한평생 살아온 곳이 재개발로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회의에 참석한 A씨는 “컨테이너에서 지내면서라도 마을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그나마 살림이 남아 있는 주민들은 다른 이재민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등 힘을 보탰다. 구룡 토지주·주민 협의회는 연휴 기간 협의회 사무실에서 이재민들에게 떡국을 제공했다.

<b>마르지 않는 눈물</b> 설날인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마르지 않는 눈물 설날인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용산구 이태원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시민분향소에도 설연휴 내내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10시쯤 박대원씨(42)가 딸 유라양(10)과 함께 분향대 촛불 옆에 국화꽃을 내려놓았다. 박씨는 “ ‘정부의 안전불감증으로 일어난 참사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잇는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어 나왔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와 유가족들도 자리를 지켰다. 희생자 고 이재현군의 모친 C씨는 추모객들에게 국화꽃을 나눠줬다. 자원봉사자 박모씨(46)는 지난달 15일부터 이날까지 사흘을 제외하고 매일 이곳에서 따뜻한 차를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했다. 손모씨(60)도 조문객에게 통행방향을 안내했다.

설 당일인 지난 22일 참사 유가족과 친지 등 80여명이 모인 가운데 희생자 영정 앞에서 합동 차례를 지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가족들을 찾아뵙고 인사하는 명절이지만 이태원 희생자들은 그러지 못하는 힘든 시간으로, 이렇게 분향소에 모였다”며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희망한다”고 했다.

설 전날인 지난 21일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예고 없이 시민분향소를 찾아 비난받기도 했다. 유가족협의회는 성명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많이 없을 수밖에 없는 설연휴 전날에 분향소를 온 것은 ‘분향소에 왔으나 유가족이 없어서 못 만났다’는 그림을 그리려던 게 아닌가 싶다”면서 “이 장관의 보여주기식 ‘도둑 조문’에 분노와 실망감을 표하며, 공식 사과 및 사퇴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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