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이고 떨어지고…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지옥 됐다”

유선희 기자

[생존 노동자 트라우마①]

경향신문 트라우마 실태 설문조사 진행

산재 현장서 10명 중 7명은 트라우마 경험

5년 전 사고에도 부정적 감정 등 증상 여전

전남 장성군의 한 골판지 제조업장에서 2019년과 2021년 두차례 산업재해를 목격하고 트라우마를 경험한 노동자 김성철씨(42·가명)가 지난 19일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에서 공장을 바라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사진 크게보기

전남 장성군의 한 골판지 제조업장에서 2019년과 2021년 두차례 산업재해를 목격하고 트라우마를 경험한 노동자 김성철씨(42·가명)가 지난 19일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에서 공장을 바라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전남 장성군의 한 골판지 제조업장에서 일하는 김성철씨(42·가명)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사이 2번이나 산업재해 사고를 목격했다. 2019년 11월23일 동료 노동자가 박스 조립 고속 컨베이어벨트에 오른팔이 끼어 다쳤다. 2년 뒤인 2021년 11월30일에는 같은 라인 구간의 후공정에서 동료가 떨어진 박스를 제거하던 중 작동하는 기계에 몸이 깔리는 사고가 났다.

지난 19일 사업장에서 만난 김씨는 당시를 떠올리자 연신 손으로 가슴을 쓸며 울먹였다.

첫번째 사고 때는 정지 버튼을 눌러 기계를 멈췄는데, 두번째때는 정지 버튼도 안 먹히더라니깐. 사람이 끼었는데 기계는 계속 돌아가니까 ‘타다다닥’ 하는 굉음속에서 피가 엄청 많이 나고….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결국 어찌어찌 기계 자체를 억지로 차단시키니까 그제서야 작동이 멈췄어요. 그 순간 주저앉은 동료가 잠깐 눈을 떴어. 그 눈이 나를 딱 쳐다봤는데, 그 눈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그걸 어떻게 잊어먹을 수가 있겠어.

- 김성철씨(가명·42)

당시 사고로 재해자는 갈비뼈가 모두 골절되고, 오른쪽 폐가 주저앉는 중상을 입었다.

다행히 사고를 당한 두 노동자 모두 목숨은 건졌다. 천만 다행이었지만 김씨의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자신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수시로 덮쳤다. 특히 첫번째 사고 뒤 별다른 치유 과정 없이 투입된 사업장에서 또 맞닥뜨린 산재를 본 충격은 더 컸다. 김씨는 “밤에 잠이 오지 않고 계속 사고장면이 떠오르고, 무슨 소리만 들려도 놀라고 한번 흥분하면 진정이 안됐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서럽게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두번이나 눈 앞에서 사고를 목격하니까 못 견디겠더라고요. 마음은 너무 힘든데 겉으론 다친데가 없으니 얼마나 아픈지 모르는 거예요. 직접 인터넷을 통해 심리상담을 알아봤고 보건소를 찾았어요. 안 그러면 제가 죽을 것 같았거든요.”

2021년 11월30일 전남 장성군의 한 골판지 제조업장에서 발생한 산재 당시 미처 제거하지 못한 박스가 아직도 현장에 그대로 있었다. 문재원 기자 사진 크게보기

2021년 11월30일 전남 장성군의 한 골판지 제조업장에서 발생한 산재 당시 미처 제거하지 못한 박스가 아직도 현장에 그대로 있었다. 문재원 기자

김씨는 산재 이후 회사에 하루라도 쉬겠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씨가 회사로부터 들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한 마디.

“넌 어린애가 아니야”

김씨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스스로 증상이 심각하다고 느낀 김씨는 직접 방법을 찾았다. 보건소를 통해 정신과 전문병원을 소개받았다. 두번째 산재를 목격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김씨가 말했다. “살고 싶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외상적 사건에서 1차로 구분되는 피해자는 사망자와 신체적 부상 또는 정신적 외상이 있는 재해자다. 2차 피해자는 사망이나 부상을 목격한 사람, 1차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구 등으로 분류된다. 3차 피해자는 응급서비스직(경찰, 소방관 등), 1차 병원 스태프와 상담가, 사건취재 관련 언론인이다.

중대재해 발생 4~5년이 흘렀어도 현장에서 이를 목격한 노동자들은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산재 예방책을 마련하지 않은 회사에 대한 분노보다 스스로 아무것도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기력함이 컸다. 이들은 산재 목격자이면서 동시에 산재로부터 살아남은 생존 노동자다.

‘생존 노동자’들은 인터뷰 중간중간 괴로운 듯 크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때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생존 노동자들은 “그저 살고 싶었다”고 했는데, 동시에 “사는게 지옥같다”고 말했다. 치유과정 없이 ‘겁쟁이’로 비난 받으며 노동에 내몰린 탓이었다.

잇단 산재로 노동안전 보장 필요성에 대한 요구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2022년 1월27일 시행)으로 이어졌지만 정신적 충격에 의한 아픔을 지원하는 보호망은 헐겁다. 2차, 3차 피해자로 갈수록 관심은 더 떨어진다. 경향신문은 2차 피해자에 해당하는 ‘생존 노동자’ 이야기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노동자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 하고, 자체 설문조사를 통해 트라우마 실태를 파악했다.

전남 장성군의 한 골판지 제조업장 내 박스제품 생산 공정 기계로, 2021년 산재 직후 이상이 있을 때 기계를 멈추는 센서 역할을 하는 아크릴 유리문이 설치됐다. 문재원 기자 사진 크게보기

전남 장성군의 한 골판지 제조업장 내 박스제품 생산 공정 기계로, 2021년 산재 직후 이상이 있을 때 기계를 멈추는 센서 역할을 하는 아크릴 유리문이 설치됐다. 문재원 기자

김씨는 정신과 전문병원에서 6~7개월 정도 치료를 받았고, ‘급성 스트레스 장애’ 진단이 나왔다. 두번째 사고 경험 뒤 1년이 지났어도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혹시 모를 증상에 대비해 지금도 상비약을 가지고 다닌다.

김씨의 마음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개선이 없는 사측의 대응, 그리고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기력함이었다. 특히 두번째 산재가 발생하기 두 달 전에 노동자들은 안전점검을 통해 160개에 달하는 산업안전법 위반 사례를 발견하고 광주고용노동청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안전센서 설치도 그중 하나였다.

김씨는 “노동청이 제대로 조사를 했더라면 산재로 이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회사는 산재가 발생한 직후 기계를 멈추는 센서 역할을 하는 아크릴 유리문을 설치했다”며 “사고가 나야 움직이는 회사에 화가 난다. 사람을 부속품쯤으로 여기는 태도가 반복되는 산재로 나타나고, 재해 당사자는 물론 저와 같은 주변 노동자들에게 트라우마로 씻지 못할 아픔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고가 나기 전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는 무기력함도 김씨를 더욱더 힘들게 한다.

2021년 1월11일 경남 창원의 자동차 부품회사 현대위아 창원 4공장에서 동료가 사망한 장면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린 남창훈씨(43·가명). 유선희 기자 사진 크게보기

2021년 1월11일 경남 창원의 자동차 부품회사 현대위아 창원 4공장에서 동료가 사망한 장면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린 남창훈씨(43·가명). 유선희 기자

눈앞에서 동료의 사망을 지켜본 노동자도 있다. 2021년 1월11일 경남 창원의 자동차 부품회사 현대위아 창원 4공장에서 협력업체 노동자가 프레스 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났다. 같이 작업하던 남창훈씨(43·가명)는 중대재해 발생 2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남씨를 지난해 11월3일 경남 창원 성산구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에서 만났고 지난 10일 전화 인터뷰를 한 번 더 가졌다. 남씨는 “한 명이 프레스 기계에 제품을 두면 옆사람이 버튼을 눌러주는 방식이다. 한 시간에 약 500개를 찍는 등 업무 속도가 너무 빨라 제가 산재 위험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었다”며 “사고 당일도 빠르게 작업하던 중 사람이 다 빠져나오지도 않았는데 버튼을 누르면서 머리가 압착됐다. 정지버튼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고 했다.

공정 순서에 따라 남씨는 5분 뒤 숨진 노동자의 업무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눈앞에서 동료의 산재 사망을 목격한 남씨는 “이렇게 허무하게 사람이 죽을 수 있는건가 하는 생각에 눈물만 났고, 부정적인 생각이란 생각은 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사업장에선 중대재해 이후 쉴 수 있도록 해줬지만 그 기간은 일주일이 채 안됐다. 남씨는 “저는 여전히 너무 힘든데, ‘남자가 술 한잔 먹고 치워버려야지’ 하는 말과 시선이 힘들었다. 회사는 물론 주변 친구까지 그랬다”고 말했다.

남씨는 시민단체 산추련 도움으로 심리상담을 받았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고, 신청 6개월여 뒤 산재가 인정됐다. 남씨는 “산재 승인 시간이 길었고, 그 시간 동안 소득 없이 치료를 받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됐다”고 했다. 산재로 인정돼도 평균임금의 70%만 받을 수 있어 경제적으로 완전히 보전된 것도 아니다. 남씨는 다시 일하려고 준비 중인데,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 걱정이 크다.

사고를 목격하고 7개월이 다 됐는데도 여전히 트라우마 증상으로 약을 먹고 있다는 박설주씨(가명·50대)가 꺼내 보인 약. 유선희 기자

사고를 목격하고 7개월이 다 됐는데도 여전히 트라우마 증상으로 약을 먹고 있다는 박설주씨(가명·50대)가 꺼내 보인 약. 유선희 기자

산재 트라우마는 꼭 사람이 다쳐야만 겪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5월9일 경남 창원 마창대교에서 하이패스 차로로 들어선 20t짜리 화물차가 요금소 부스를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는데 부스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충격이 컸다.

사고 바로 옆 부스에서 근무한 이정숙씨(40대·가명)는 “2년 전 야간근무 때 술에 취한 화물차량이 제 옆 부스를 들이받은 사고가 떠올랐다. 진통제를 먹으면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하루가 지났는데도 진정이 안됐다”며 “3일만 쉬게 해달라고했는데 회사에서 허락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씨는 ‘왜 이겨내지 못하느냐’며 오히려 스스로를 질책했다고 한다.

이씨와 함께 일한 박설주씨(50대·가명)는 “트라우마로 정신과 상담을 받지만 그렇다고 일상생활이 다 중단된 게 아니다.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는데 주변에선 ‘그럼 안 아픈 거 아니냐’고 묻는다”며 “사고가 난 사업장에 나가면 가슴이 뛰고, 큰 화물차만 봐도 식은땀이 나는 등 증상이 문득문득 나타나는데 주변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에 ‘변명’처럼 설명하는 상황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산재 간접 노출, 다른 라인서 일해도 ‘트라우마’

경향신문은 산재를 목격한 노동자들이 겪는 트라우마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에 앞서 산추련이 2020년 10월 발표한 ‘노동재해 트라우마’ 보고서를 참고했고, 설문조사 항목 구성은 오랫동안 산재 트라우마를 연구하고 직업트라우마센터 설립에 기여한 양선희 동국대학교 경주병원 직업환경의학과 부교수 도움을 받았다.

조사는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노안실)을 통해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에 요청했다. 설문조사는 지난해 11월21일부터 12월9일, 12월19일부터 올해 1월4일까지 두 차례 진행했다.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이를 목격하거나 전해들은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에 응한 사업장은 현대제철 자회사 현대IMC, 대한항공 자회사 한국공항,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등으로 총 124명이 답했다.

현대제철은 매년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대표적인 사업장으로, 금속노조 포항지부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포항공장에서 지난해 산재로 인정된 과로사만 2건이다. 2020년엔 쇳물을 담는 턴디쉬(저장용기)의 상부에서 30대 노동자가 작업 중 턴디쉬 내부로 빠져 사망했다. 인천, 당진, 순천 등 사업장에서도 중대재해가 잇따르고 있다. 인천공항에서는 지난해 두 차례 중대재해가 발생했는데 모두 대한항공 자회사 한국공항에서 일어났다. 지난해 4월과 12월 항공기 견인차량 끼임, 깔림 사고로 노동자 1명이 각각 숨졌다. 코레일 사업장에서도 지난해에만 4건의 중대재해가 있었다. 태안화력발전소는 2018년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씨가 사망한 사업장이다.

생존 노동자 트라우마 설문조사 결과. 그래픽 | 현재호 기자 사진 크게보기

생존 노동자 트라우마 설문조사 결과. 그래픽 | 현재호 기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트라우마를 경험한 노동자는 92명(74.2%), 경험하지 않은 노동자 20명(16.1%), 무응답자 12명(9.7%) 등으로 나타났다. 설문 분석은 무응답자를 제외한 112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에서 산재를 직접 목격하고, 산재자와의 관계가 밀접(같은 라인 동료) 할수록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비율이 높았다. 다만 산재에 간접적으로 노출되거나 산재자와 다른 라인에서 일하는 관계에서도 충분히 트라우마를 경험한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재해현장에서 산재를 직접 목격한 경우 10명 중 9명(91.8%, 56명)이 트라우마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동료로부터 전해 들은 경우는 73.0%(27명), 뉴스나 전자매체를 통해서도 64.3%(9명)가 트라우마 증상이 있다고 했다. 산재자와의 관계에서 같은 라인의 동료인 경우 트라우마를 경험했다는 응답률이 88.1%(52명)였는데, 다른 라인의 동료에 대해서도 80.0%(24명), 모르는 사이 65.0%(13명)로 나타났다. 또 사망사고(86.8%)를 목격하거나 알게 된 경우 일반사고(64.6%)보다 트라우마 경험 비율이 높았다.

트라우마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생존 노동자 트라우마 설문조사 결과. 그래픽 | 현재호 기자 사진 크게보기

생존 노동자 트라우마 설문조사 결과. 그래픽 | 현재호 기자

산재에 노출된 지 5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를 목격하거나 알게 된 시점이 1년~5년 전인 경우 10명 중 7명(72.3%, 34명)이 트라우마 증상이 있다고 응답했다. 태안화력발전소 사업장에선 김용균씨가 사망한 지 4년이 흘렀는데도 24명(70.6%)이 트라우마가 있다고 했다. 포항지역 현대제철 사업장은 트라우마를 경험한 노동자의 29.4%(10명)가 산재에 노출된 시점이 1년~5년 전인데도 증상이 있다고 했다.

이은주 산추련 활동가는 “과거에 비슷한 산재에 노출되면서 민감도를 높였을 수 있다. ‘일상적인 트라우마 노출이자 일상의 위험’”이라고 말했다. 양선희 부교수는 “트라우마 관리는 조기에 개입하는 것이 중요해 이에 맞춘 지원책에 주로 관심이 집중됐는데, 이번 설문조사는 생각보다 트라우마의 지속기간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으로, 트라우마 재노출과 재경험에 대한 장기적인 치료와 상담,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생존 노동자 트라우마 설문조사 결과. 그래픽 | 현재호 기자 사진 크게보기

생존 노동자 트라우마 설문조사 결과. 그래픽 | 현재호 기자

트라우마를 경험한 응답자 92명 중(복수응답 가능) 부정적인 감정 증상이 50명(54.3%)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침습(악몽, 환청 등) 35명(38%), 회피 29명(31.5%), 각성과 반응(공격적 행동, 수면장애 등) 16명(17.4%), 기타 8명(8.7%) 등으로 나타났다.

부정적인 감정은, 노동자들이 트라우마 극복 과정에서 어려운 점(복수응답)으로 ‘산업재해 개선대책 부족’(34명, 37.0%)을 우선 꼽은 것과 연관된다. 산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주가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은 데 대해 남겨진 노동자들이 죄책감과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이다. 양 부교수는 “불완전한 상태 방치에 대한 분노나 죄책감, 자책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사고가 나면 사업주가 철저하게 문제 해결에 나서고 이를 천명하는 게 중요한데, 잘 이뤄지지 않으니까 노동자들이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들은 부정적인 감정 이외에도 사회적 지지 부족(23명, 25.0%), 주변시선(22명, 23.9%), 치료비 등 경제적 어려움(14명, 15.2%) 등으로 트라우마 극복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문턱 넘지 못하는 치료·낮은 산재 신청률

생존 노동자 트라우마 설문조사 결과. 그래픽 | 현재호 기자 사진 크게보기

생존 노동자 트라우마 설문조사 결과. 그래픽 | 현재호 기자

트라우마를 경험한 노동자 92명 중 실제 병원에서 상담을 받거나 약물치료를 받은 사례는 25명에 그쳤다. 스스로 느끼는 트라우마 증상이 아닌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12명(48%)으로 많았다. PTSD는 부정적인 감정, 침습, 회피, 각성과 반응 등 4가지 증상이 모두 있는 경우 내려진다. 이어 불안장애 4명(16%), 우울증 2명(8%), 적응장애와 급성스트레스 장애 각각 1명(4%) 등으로 나타났다.

트라우마 증상으로 병원 치료와 진단을 받은 25명 중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는 1명에 불과했다. 산재 신청은 인정됐으며, 6개월~1년 미만 시간이 소요됐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안실장은 “(산재 신청률이 낮은 이유는) 트라우마에 대한 정신건강 부분 자체가 직업병 인정기준에 들어온 것이 얼마 되지 않았고, 승인 정착이 늦어진 영향이 있다고 보여진다”며 “또 산재를 신청하기까지 절차가 까다로운데 산재 인정이 불승인 될 수 있다는 걱정, 회사와 불편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당장 회사 복귀를 해야 한다는 우선순위 고려 등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트라우마 경험 여부와 관계없이 응답자 112명 중 지원책을 묻는 질의(복수응답)에는 상담 및 치료 연계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56명(50.0%)으로 많았다. 이어 치료비 지원 43명(38.4%), 산재 신청시 빠른 처리 43명(38.4%), 직업트라우마센터의 적극적 역할 40명(35.7%), 주변 시선에 대한 올바른 교육과 홍보 31명(27.7%) 등이었다.

양 부교수는 “심리상담은 결국 ‘마음치료’인데 의료보험 적용에서는 배제돼 있다. 심리상담을 의료보험 제도에 편입시킬 필요가 있다”며 “이와 함께 정신과 진료에 대한 인식과 문턱을 낮추기 위한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똑같은 사고여도 혼자 방치된 사람과 가족과 주변인들의 지원이 뒷받침된 경우 트라우마 후유증에 차이가 있다”며 “중요한 것은 치료 이외에 사회관계에서 주변인들의 지지 등 사회적 자원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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