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밖 청소년과 함께였던 활동가들이 ‘주거권’을 외치게 된 이유

민서영 기자
청소년의 비상구 ‘엑시트’ 전 센터장(왼쪽)인 이윤경 활동가와 김시연(가운데)·정찬송(오른쪽)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들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사진 크게보기

청소년의 비상구 ‘엑시트’ 전 센터장(왼쪽)인 이윤경 활동가와 김시연(가운데)·정찬송(오른쪽)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들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2021년 11월, 금요일마다 서울 신림역 부근에 나타나던 ‘녹색 비상구’가 사라졌다. 가정 밖 청소년에게 식사와 상담, 생필품을 제공하던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가 재정 문제로 10년간의 운행을 종료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엑시트와 함께 한 활동가들이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누구보다 가정 밖 청소년들을 잘 아는 이들이 ‘청소년 주거권’이라는 결론에 가닿기까진 수많은 질문과 싸움과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2011년부터 10년 동안 경기 부천과, 안산, 수원, 서울 신림 등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등장했던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버스. 이윤경 활동가 제공 사진 크게보기

2011년부터 10년 동안 경기 부천과, 안산, 수원, 서울 신림 등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등장했던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버스. 이윤경 활동가 제공

2011년 처음 등장한 엑시트 버스는 10년 동안 경기 부천과, 안산, 수원, 서울 신림 등에 매주 금요일 밤 8시마다 나타났다. ‘마을버스보다 조금 큰’ 공간을 많게는 하루 80여명의 청소년이 찾아왔다. 엑시트의 이윤경 전 센터장을 비롯한 활동가들은 버스로 찾아온 청소년들과 밥을 해먹고 얘기를 나눴다. 청소년과 ‘근황토크’를 좀 길게 하다 조건만남과 사기 등 위기상황을 포착하기도 했다. 엑시트 버스가 없는 평일엔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해 법률상담을 하고 함께 병원, 재판에 가기도 했다. 이윤경 활동가는 엑시트 버스가 그 모든 관계와 시간이 시작되는 “게이트” 같은 역할이었다고 했다.

이 활동가는 “제일 걱정은 ‘우리가 누구의 편의를 고려하냐’였다”고 했다. 이들은 엑시트가 청소년 중심의 공간이 되길 바랐다. 청소년이 엑시트 버스에 있는 생필품을 “주세요”라고 말하면 활동가들은 “주는 거 아니고, 자기 건 자기가 가져가는 거니까 필요한 걸 고르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이 활동가는 “다른 청소년 기관이 엑시트한테 진짜 많이 했던 얘기가 ‘끌려다니지 말아라, 청소년한테 너무 오냐오냐하지 말아라’였다. 근데 저희는 정말 치열하게 청소년과 싸웠다”고 말했다. 엑시트는 명령 대신 설득이라는 ‘비효율적인’ 방식을 10년 동안 고수했다.

청소년의 비상구 ‘엑시트’ 전 센터장인 이윤경 활동가가 26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사진 크게보기

청소년의 비상구 ‘엑시트’ 전 센터장인 이윤경 활동가가 26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청소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안전한 집’이었다. 가정 밖 청소년이 살 수 있는 집은 청소년 쉼터뿐이었다. 그마저도 2010년대 초엔 턱없이 부족했다. 엑시트는 청소년의 주거에 대해서도 ‘비효율적인’ 실험을 시작했다. 2013년부터 대안 청소년 주거공간 ‘청소년자립팸 이상한 나라’를 운영했다. 자립팸을 운영했던 정찬송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는 자립팸과 기존 청소년쉼터의 가장 큰 차이로 “사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란 “동의되지 않거나 원치 않는 일을 강제로 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통제가 없는 것”을 뜻한다. 자립팸엔 쉼터처럼 꼭 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꼭 지켜야 하는 규칙도 없었다. 어겼을 때 벌점과 퇴소로 이어지는 규칙 대신, 같이 사는 친구들끼리 지키기로 한 약속이 있었다.

자립팸은 엑시트 사업 종료와 함께 마무리됐다. 그곳에 살던 청소년들은 자립해 현재 임대주택 등에 살고 있다. ‘시설 같지 않은 집’을 만들고 싶었던 시도는 “청소년들과의 긴밀한 대화와 갈등, 부딪힘”이 8년 내내 함께한 시간이었다. 정 활동가는 그런데도 분명 성과가 있었다고 했다. “청소년들이 자기의 집을 직접 꾸려간다는 게 되게 말도 안 되고 위험하다고 많은 사람이 얘기했지만 ‘이건 사회적 지원만 있다면 해볼 수 있는 시도다, 그러니까 청소년한테 일단 집과 안정적인 삶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는 논의를 시작해보자’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2011년부터 경기 부천과, 안산, 수원, 서울 신림 등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등장했던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부스. 이윤경 활동가 제공 사진 크게보기

2011년부터 경기 부천과, 안산, 수원, 서울 신림 등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등장했던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부스. 이윤경 활동가 제공

활동가들은 엑시트의 자립 팸이 실험으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청소년 주거권’에 대한 의제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엑시트가 문을 닫기 전인 2019년부터 다른 청소년 기관·단체들과 청소년 주거권에 대해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이 엑시트 사업 종료 이후 1년여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이달 2일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청주넷)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다.

김시연 청주넷 활동가는 청주넷이 “청소년을 직접 만나고 있는 현장에서 하는 버거운 고민을 함께 얘기하자고 초대하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초대장의 키워드는 ‘주거권’이다.

본인의 취약한 주거 경험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청소년 당사자들에게도 ‘청소년 주거권’이라는 단어는 한 줄기 빛이다. 청주넷은 청소년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전달될 수 있도록 ‘수다회’ 등의 사업을 계획 중이다. 미성년자는 지원받을 수 없는 공공임대주택에 관한 법 제도 개선 활동과 ‘청소년 탈시설’에 대한 연구 모임도 앞두고 있다.

청주넷은 ‘엑시트 시즌 2’다. 창립식에선 엑시트 활동가들의 ‘쌈짓돈’이 청주넷에 전달될 예정이다. 창립을 맞이해 이달 28일까지 활동비 후원도 받는다. 이 활동가는 “청소년을 어떻게 지원하고 사회가 청소년 중심적으로 어떻게 설계돼야 하는지에 대한 엑시트의 모든 지향을 담은 곳이 청주넷”이라며 “시즌 1은 청소년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했다면 시즌 2는 본격적으로 그 의제를 널리 알리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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