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지하·공사판 인근·담배존···서울시 제안 분향소 후보지 찾아 삼만리

윤기은 기자    김송이 기자
서울시가 제안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추모 공간 중 한 곳인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지하 4층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의 7일 모습. /한수빈 기자

서울시가 제안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추모 공간 중 한 곳인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지하 4층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의 7일 모습. /한수빈 기자

지난해 12월21일 이태원역 1번출구에 놓였던 꽃과 편지들은 인근 상인과 주민, 유가족 협의 끝에 치워졌다. 같은 날 서울시는 추모·기억공간을 마련해달라는 유가족들에게 용산구의 민간상가 두 곳을 후보지로 제안했다. 유족들이 “모두가 지나다니며 추모할 수 있고, 세금이 덜 드는 공공장소를 원한다”며 거부하자 서울시는 지난 1월 녹사평역 지하 4층을 새 후보지로 제안했다.

7일 경향신문은 서울시가 유가족 측에 제안한 추모공간 후보지 세 곳에 직접 가봤다. 후보지는 반지하, 민간상가 2·4층, 지하에 있었다. 유동인구가 적고, 접근성이 떨어지며, 야외에서 한눈에 볼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꼭꼭 숨어라, 추모공간 보일라

녹사평역의 지난해 일평균 승차승객은 4807명(1~9호선 전체 평균 1만5023명)으로, 서울지하철 1~9호선 역 279개 중 237번째였다. 민간인 출입이 제한되는 미 군용시설 인근에 위치한 탓이다. 서울시가 추모공간 부지로 제안한 녹사평역 지하 4층은 지상에서 35m 깊이에 있다.

이날 오전 9시20분부터 30분간 서울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지하 4층을 오간 이는 총 210명이었다. 대부분 지하 4층 개찰구에서 교통카드를 찍고 지하 3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거나 승강장이 있는 지하 5층으로 내려갔다. 에스컬레이터가 개찰구 바로 앞에 있어 다른 공간에 눈을 돌릴 이유가 없어 보였다.

서울시가 제안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추모 공간 중 한 곳인 서울 용산구 반지층 건물 뒷편의 7일 모습. /한수빈 기자

서울시가 제안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추모 공간 중 한 곳인 서울 용산구 반지층 건물 뒷편의 7일 모습. /한수빈 기자

다른 후보지인 용산구청 건물 뒤편 민간건물은 이태원역에서 6분 거리에 있다. 왕복 2차선 도로가 건물과 구청 사이를 가로지르고, 건물 앞은 차도에 인접해있다. 언덕에 위치한 건물의 구조상, 추모공간의 위치는 건물 앞에서 보면 1층, 뒤에서 보면 반지하였다. 유일한 창문은 반지하층 위로 50cm 정도 트였고, 그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자연광의 전부였다.

오전 9시59분, 용산구청에서 나온 남성 3명이 해당 건물 약 10m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피웠다. 건물 앞 하수구에는 담배꽁초가 가득했다. 건물 앞에는 ‘쓰레기 집중단속지역’이라고 적힌 안내판과 20리터 쓰레기봉투 하나, 음식물쓰레기 수거함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서울시가 제안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추모 공간 중 한 곳인 서울 용산구 상가 건물의 7일 모습. /한수빈 기자

서울시가 제안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추모 공간 중 한 곳인 서울 용산구 상가 건물의 7일 모습. /한수빈 기자

또다른 후보지인 6층 민간건물은 더 외진 곳에 있었다. 녹사평역 3번 출구로 나와 지도 어플리케이션이 이끄는대로 이동하면서 육교를 건너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네 곳을 지나고, 삼거리 두 개를 건너서야 도착했다 건물 앞 도로 맞은편 공사장을 화물차가 들락거렸다.

오전 10시48분부터 30분간 이 앞을 지나간 시민은 총 19명이었다. 인근에서 근무하는 김모씨(54)는 “매일 이 앞을 지나가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건물은 아니다”고 했다. 건물 관리인 B씨는 “2~6층모두 사무실이 입주해 있다”며 “오래 전부터 이 건물은 사무실로 쓰였다. 건물주도 서울시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광장의 분향소 찾은 시민들 “서울시가 앞장서 마련해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7일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7일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세워진 분향소는 시청역 5번 출구에서 50m가량 떨어져 있다. 이날 오후 12시40분 시민 10명이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었다. 분향소에서 만난 고정애씨(63)는 용산구에 살지만 이태원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는 간 적이 없다고 했다. 직장과 자택을 오가는 동선과 동떨어진 탓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출장차 한국에 온 교포 최케이시씨(58)도 업무를 보러 서울시청을 방문했다 분향소에 들렀다. 최씨는 “미국은 참사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자리에 추모공간을 만든다. 희생자들의 희생을 기리고 이를 온 국민이 알게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정부나 지자체의 존재 이유가 국민들의 생면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면 서울시가 앞장 서 이곳에 추모공간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했다. 9·11 테러를 기억하기 위해 미국 뉴욕 도심에 마련한 ‘9·11 메모리얼 공원’이나 전쟁에서 학살된 유대인을 기리기 위해 독일 베를린 도심에 설치한 2711개 구조물 등이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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