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지진 국제구조대로 선발되셨습니다. 오전 10시까지 소속 구조대로 집결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2월8일 오전 7시. 문자 메시지를 받은 김대영 대원(48)은 긴장했다. 갑작스러운 출동 명령을 한두 번 겪은 건 아니지만, 해외 파견은 처음이었다. 아내 얼굴에도 걱정하는 기색이 묻어났다. 부랴부랴 짐부터 챙겼다. 김 대원은 “정신없이 가게 돼서 어떻게 출발했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며 웃었다.
튀르키예 강진 피해 현장에 파견된 한국긴급구호대 1진 대원들이 열흘간의 구조 활동을 마치고 지난 18일 돌아왔다. 1진으로 파견된 대원은 총 118명. 소방청 소속 중앙119구조본부 대원이 절반 이상(62명)이다. 21일 오전 대구 달성군 구지면에 있는 본부 사무실에서 김 대원과 유지훈(39), 이기평(37), 이진욱(30) 대원을 만났다. 이들은 튀르키예에서 돌아와 바로 업무에 복귀했다. 피해 현장에서 신었던 신발도 그대로 신은 채였다.
김 대원은 구조 경력 13년 차인 베테랑이다. 2012년 구미 불산가스 누출,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2022년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등 수없이 많은 인명피해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해왔다. 그런 김 대원도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 대해 “처음 보는 광경이라 당황했다”고 말했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폭삭 꺼진 건물이 가득했고 거리 곳곳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쉴 틈 없이 구조활동을 이어갔으나 수색 요청은 끝없이 쏟아졌다. 구조와 함께 업무 조율 및 상황 보고를 맡았던 이기평 대원은 “10초에 3번꼴로 수색요청이 들어왔다”고 했다.
수색 작업을 하는 동안 여진이 수시로 찾아왔다. 갑자기 땅이 흔들리면 두려움이 엄습했다. ‘시신이라도 수습해달라’며 애원하는 주민들을 뿌리치기도 쉽지 않았다. 김 대원은 “시간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더 생명을 살리려면 생존 가능성을 보고 우선순위를 정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지 도착 후 쉴 틈 없이 구조
10초에 3번꼴로 수색요청
허탕 반복하다 기적도 찾아
소중한 생명 8명 구해 다행
정부 파견 결정 더 빨랐으면
허탕을 반복하며 지쳐갈 무렵 기적 같은 순간도 찾아왔다. ‘골든타임’이 지났는데도 무너진 건물 안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데만 2시간여. 지름 15㎝가량의 작은 구멍을 뚫어 불빛을 비추자 사람 손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남편과 함께 매몰된 60대 여성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구조팀 중 생존자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유지훈 대원은 “사람 소리가 난다는 얘기는 수없이 들어도 실제로 생존자가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면서 “이번엔 생존자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자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했다.
튀르키예에서 한국긴급구호대가 구한 생존자는 8명이다. 한국 구조팀이 해외 재난 현장에서 생존자를 구출한 것은 1999년 대만 대지진 당시 1명 구조 이후 20여년 만이다. 해외까지 파견을 가야 하는 경우 주로 중대 재난일 때가 많아 구조 작업이 매우 까다롭다. 정부에서 파견을 결정하기까지 시간도 걸려 생존자를 구출하기에 도착이 늦은 경우도 많았다. 이날 방문한 중앙119구조본부 사무실 인근에는 당시 구조한 생존자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8명 구출’은 기록적인 성과이지만 대원들은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구조팀 막내인 이진욱 대원은 “이제 다 적응했는데 복귀해야 한다고 하니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면서 “조금이라도 더 일찍 왔으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인명을 살릴 수 있는 한계 시간이 지난 점, 현지 치안 상황이 악화한 점, 대원들 건강상태가 나빠진 점 등을 감안해 튀르키예 당국과 협의한 끝에 구조대를 철수시켰다.
김 대원은 “인터넷에는 ‘사망자가 수만명인데 고작 8명을 구했냐’는 댓글도 있지만, 어려운 현장에서 조금이나마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이기평 대원은 “(향후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정부의 파견 결정이 더 빨라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다. 이 대원은 “시간이 흐르고 생존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면서 하루하루 눈에 띄게 거리에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며 “깊은 밤에도 생존자 수색을 위해 가동하던 중장비 불빛이 줄어드는 것을 보자니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