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폭 피해’ 서울대생의 편지 “가해자 처벌 없는 세상”

전지현 기자
학교폭력 피해자가 지난 4일 서울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린 편지. 에브리타임 갈무리 사진 크게보기

학교폭력 피해자가 지난 4일 서울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린 편지. 에브리타임 갈무리

학교 커뮤니티에 자필편지
정순신 아들 가리키는 듯
“지금은 잘 살고 있을 정모씨”

피해자 위로받길 바란다며
“당신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
게시판에 응원글 줄이어

“저 또한 학교폭력 피해자 중 한 명입니다.”

지난 4일 오후 11시쯤 서울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자필 편지 한 장이 올라왔다. ‘익명의 사범대학 학생’이라고 신원을 밝힌 A씨는 ‘학교폭력 피해자에게 드리는 글’이라며 A4 크기의 노트에 눌러쓴 글을 찍어 올렸다. 본인의 학폭 피해 경험을 밝히고 다른 피해자들을 응원하는 내용이었다.

A씨는 서두에 “학교폭력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반성 없이 잘 살고 있는 현실에 많은 피해자가 힘겨워하고 있을 요즘”이라고 썼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57) 아들의 학폭 논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중학생 때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가해자들의 괴롭힘, 방관하는 또래들의 무시, 담임 교사의 조롱”이 있었다며 “학교는 지옥이었다”고 했다. 그는 견딜 수 없어 학교를 뛰쳐나간 날은 자신의 생활기록부에 무단 결과 기록으로 남았지만 가해자들은 몇 마디 훈계만 듣고 말았다고 했다. 오히려 가해자가 “걔 자살했으면 학교 문 닫았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듣기도 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지금도 잘 살고 있는 정모씨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정 변호사의 아들을 언급했다. A씨도 가해자의 사과를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했다. A씨는 피해자들이 위로받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고 했다. 그는 학교폭력 피해자들에게 “당신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 당신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폭력에 무너지지 않고 그 다리를 건너온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당신을 언제나 응원한다”고 했다.

5일 낮 12시 기준 182개의 공감을 받은 이 게시물에는 “저도 학폭 피해자”라며 경험을 나누는 댓글과 응원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한 누리꾼은 “저도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사범대 재학생”이라며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썼다. 중학교 때 학폭을 당했다고 밝힌 다른 누리꾼은 “아직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직시하는 건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마음의 상처가 분명 남아있지만 언젠가 꼭 좋은 사람이 옆에 생기더라”며 “함께 힘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남겼다.

정 변호사의 아들이 서울대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들 부자를 비판하는 글이 이어졌는데, A씨의 게시글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피해자에게 강조점을 두고 연대와 지지의 뜻을 담아 눈길을 끈다. 한 누리꾼은 이날 “저도 용기 내서 경험담 올려본다”며 과거 작성한 학폭 피해 경험담을 다시 한번 공유하기도 했다. 최선희 푸른나무재단 상담본부 본부장은 “피해 사실을 공개할 때 오히려 공격받는 경우도 많아 피해자가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과거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성인들의 치유를 위한 제도도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