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회 다시 오나···정부 ‘주 69시간 노동’ 공식화

조해람 기자

정부,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 확정

연장노동 주당 ‘64~69시간’까지 열려

노동계 “죽기 직전까지 과로하라는 것”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현행 ‘주 52시간’인 연장노동시간 관리단위를 ‘월·분기·반기·연’단위까지 확대하는 개편을 추진한다. 정부 안대로라면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해지는 터라 노동계에서는 ‘과로사회 회귀’ 우려가 나온다.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해 발표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2018년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주 52시간제를 도입했으나 획일적·경직적인 주 단위 상한 규제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며 “노동자의 삶의 질 제고와 기업의 혁신·성장을 지원하는법·제도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이번 정부안은 지난해 12월 전문가기구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정부에 권고한 방안을 토대로 마련됐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을 이날 입법예고했다. 다음 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오는 6~7월 중 근로기준법 중 관련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이 정부 개편안에 반대하고 있어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로사회 다시 오나···정부 ‘주 69시간 노동’ 공식화

우선 정부는 현재 1주일 단위인 연장노동시간 관리단위를 노사 합의로 ‘월·분기·반기·연’으로도 관리할 수 있게 했다. 현재는 주당 52시간(기본 40시간+최대 12시간) 까지로 노동시간이 제한되어 있는데 이를 ‘월 단위’로 관리하면 4주를 모두 한 단위로 통합해 ‘1개월에 208시간’의 한도가 설정되는 방식이다.

다만 이렇게 되면 짧은 기간 동안 주 64~69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근무일간 11시간 휴식’과 ‘휴식 없이 주 64시간 상한’ 선택권을 제시했다. 근무일간 11시간 휴식을 부여하면 주에 69시간, 휴식이 없다면 주 64시간을 상한으로 두겠다는 것이다.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면 하루 24시간 중 13시간이 남는다. 근로기준법상 4시간마다 30분씩 휴게시간이 보장되므로 13시간에서 1.5시간(0.5시간×3)을 빼면 남는 근무시간은 11.5시간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쉰다고 가정하면 1주 최대 노동시간은 69시간(11.5시간×6일)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연장노동시간 관리단위가 길어질수록 전체 연장노동시간 허용치를 줄이는 방안도 마련했다. 단위 기준별 연장근로시간을 살펴보면 ‘월’은 52시간(12시간×4.345주), ‘분기’는 156시간, ‘반기’는 312시간, ‘연’은 624시간이다. 정부는 장시간 연속 근로를 막고 실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분기 이상의 경우 연장근로 한도를 줄이도록 설계했다. ‘분기’는 140시간(156시간의 90%), ‘반기’는 250시간(312시간의 80%), ‘연’은 440시간(624시간의 70%)까지만 연장근로가 가능하게 했다.

정부는 대신 연장노동시간을 적립해 휴가로 보상받을 수 있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기존 연차휴가에 더해 장기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사업장에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사업주와 근로자대표 사이 서면 합의가 필요하다. 근로자는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따른 보상으로 임금 또는 휴가를 적립할 수 있다. 저축계좌에 적립된 휴가와 연차휴가를 붙여 사용하면 ‘제주 한 달 살기’ 같은 장기휴가나 자격증 취득 등을 통한 자기 계발이 가능해진다고 노동부는 설명했다.

정부는 일정 기간 동안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정산 기간을 모든 업종에서 3개월로 늘린다. 연구개발 업무의 경우 6개월까지 정산 기간을 확대한다. 이 경우 정해진 노동시간을 주 4일~4.5일간 몰아서 일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전체 노동시간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재도 1개월의 정산 기간 내 1주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은 범위에서 노동자가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노동자 필요에 따라 주4일제, 시차출퇴근 등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지만, 2021년 기준 도입률은 6.2%에 불과하다. 정부는 2021년 4월 ‘신상품 또는 신기술의 연구개발 업무’에 한해 정산 기간을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했다.

이 장관은 “이번 개편안이 현장에서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점도 잘 알고 있다”며 “개편안이 당초 의도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권리 의식, 사용자의 준법 의식, 정부의 감독행정 등 세 가지가 함께 맞물려 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 “죽기 직전까지 일 시키겠다는 것”

노동계는 정부의 안이 만성적 과로를 조장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정부가 과로사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노동시간 기준이 ‘발병 전 12주간 주 평균 60시간’ 또는 ‘발병 전 4주 연속 주 64시간’인데, 이번 방안으로 과로사 인정 기준까지 장시간 노동을 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퇴근하는 노동을 5일 연속으로 시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며 “이미 탄력근로제 등 다양한 특례로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있는 현실에서 이젠 법을 통해 이를 더 확대하고 공고화하려 한다”고 했다.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등 휴식권 조치에는 “만성적인 저임금 구조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장과 잔업을 거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죽기 직전까지 일 시키는 것을 허용하고, 과로 산재는 인정받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정부가 제시한 것과 같다”며 “연단위 연장노동 총량관리를 하게 되면 4개월 연속 주 64시간을 시키는 것도 가능해지며, 주 64시간 상한제가 현장에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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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을 늘리는 방안은 구체적이고 확고한 데 비해 ‘포괄임금제’ 규제나 야간노동 대책, 휴가 보장 등 노동자 보호방안은 두루뭉술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법률단체 직장갑질119는 “야간노동자 보호 대책은 가이드라인 보급, 건강진단 비용 지원 정도가 대책이며, 포괄임금제는 금지가 아니라 오·남용 근절이라며 3월에 대책을 발표한다고만 하고 있다”며 “(입법사항인) 근로시간저축계좌제 외에 휴가 활성화 대책이랍시고 제시한 내용은 대국민 캠페인 추진”이라고 했다.

노사 협상력이 사측으로 쏠려 있는 현실에서 ‘노사 합의’에 연장노동·휴식권을 맡긴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근로자대표제를 손봐 대등한 교섭을 보장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노조보다 협상력에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는 근로자대표가 힘을 쓸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사 당사자의 선택권이라지만, 실제 현장에서 일방적인 결정권을 가진 사용자의 이익과 노동자 통제를 강화해 주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노총은 “근로자대표의 민주적 선출 및 활동에 사용자의 개입·방해행위에 엄중한 처벌이 없다면, 사용자 입맛대로 노동시간이 개편되는 길을 열어줄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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