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저임금 업종에 몰려 있는 여성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매우 커 OECD에 가입한 원년인 1996년부터 27년째 ‘꼴찌’다. 2021년 기준 성별임금격차는 31.1%로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8만9000원을 받는다. 두번째로 격차가 나는 일본에 비해서도 10%포인트 내외의 큰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경향신문 특별기획팀은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을 데이터로 뜯어보고자 했다. 4회는 ‘저임금에 머무른 여성노동자’ 실상과 ‘경력단절 이후 저임금이 되는 구조’를 들여다봤다.
국내 여성 노동자의 47%는 한시·기간제 등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남성(31%)보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 원-하청 간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여성에게 더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의 최근 10년간(2011년~2021년) 남녀 근로형태별 근로자 현황을 보면,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모두 높아졌지만 여성의 상승폭이 더 컸다. 비정규직 비율은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1.2배 정도 많았다.
여성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의 비율은 2011년 42.9%(323만4000명)에서 2014년 39.9%(327만1000명)로 줄었다가 이후 다시 늘어나 2021년 47.4%(449만1000명)로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2011년 27.7%(281만9000명)에서 꾸준히 줄거나 유지되다가 2019년부터 늘어 2021년 31%(357만5000명)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여성의 비정규직 근로형태는 한시·기간제가 각각 293만8000명, 257만3000명으로 전년(252만9000명, 213만3000명) 대비 크게 늘었다.
원-하청 구조, 저임금 고착화
국민건강보험 대전고객센터 콜센터 노동자들은 원-하청 구조가 저임금 고착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콜센터 노동자 이정연씨(40대·가명)는 “건강보험 업무를 최일선에서 하고 있지만 하청업체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10년을 일해도 월급(기본급)이 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청업체 소속 직원들은 정부 정책에 대한 안내도 늦게 받는다. 이씨는 “정책이 발표됐는데 (공단으로부터) 전달받지 못하고 뉴스를 보고 알게 될 때가 많아 어려운 점이 있다”며 “이 역시 원-하청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했다.
노동자들은 2021년부터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였다. 소속기관을 만들어 직접고용하는 방향으로 일단락됐지만 진행 속도는 더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각 기관 대표, 노조, 전문가가 협의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면서 준비 중“이라고 했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여성이 맡아 저평가된 노동에 하청구조까지 더해지면서 이 구조에 한 번 놓인 여성은 계속 저임금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며 “저임금 여성 노동력으로 낙인 찍힌 산업에서 여성은 대안으로 옮겨갈 직종이 없고 결국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노동자 게토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임금 인상 억제
한시·기간제로 일하며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대부분의 임금은 기본급을 최저임금에 맞춰주는 방식으로 인상해 왔다. 그러나 2018년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되면서 노동자들에겐 더 불리하게 됐다. 기본급을 최저임금에 맞추지 않고, 매월 지급하는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도 일정 비율씩 최저임금에 산입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폭이 높아지자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하라는 경영계의 주장이 반영된 결과다.
이러한 변화는 방과후 초등돌봄전담사들의 급여에도 영향을 줬다. 초등돌봄전담사 박선미씨(50대·가명)가 2018년과 2019년에 받은 교통비 4만5000원, 6만원은 2020년부터 기본급에 산입돼 없어졌다. 지난해 기본급으로 지급된 금액(186만8000원)이 최저임금(191만4440원)에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산입범위 확대 때문이다. 산입범위 확대로 복리후생비인 식대(14만원) 일부(10만1710원)가 최저임금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박씨가 받은 임금(기본급+식대 일부)은 196만9710원이 된다.
만약 최저임금을 기본급에 맞춰 지급했다면, 205만4440원(최저임금+식대)을 받았어야 했다. 산입범위 확대로 약 4만원을 받지 못한 셈이다. 최저임금이 인상됐지만 실제 인상률이 적용되지 못한 사례다.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복리후생비 일부까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돼 기본급 자체를 올리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됐다”며 “이는 가뜩이나 최저임금 수준이던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더욱 억제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차별시정제도 있어도 ‘각하’, ‘기각’
비정규직에서 벗어나 정규직이 돼도 차별은 계속 이어진다. 한국도로공사(도로공사) 하청업체 수납원들은 소송 끝에 2019년 1500여명이 직접고용됐다. 2012년 수납원들이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대법원이 노동자 손을 들어주면서다. 그러나 이들은 도로공사에서 청소 일을 한다. 휴게소와 고속도로 녹지대, 졸음쉼터 화장실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이다.
도로공사는 소송이 진행되자 수납원 업무를 자회사로 전환했다. 박순향 민주노총 톨게이트본부 지부장은 “직접고용 이후 회사는 신규 직군을 만들어 수납원들에게 청소일을 시키고 있다. 직접고용된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저수준으로 만들기 위한 꼼수”라고 했다. 도로공사 측은 “수납원 업무는 자회사로 갔기 때문에 관련 업무를 부여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는 2007년 도입됐지만 신청이 저조하다. 차별시정제도는 기간제·단시간 근로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가 유사하거나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불합리한 차별을 받은 경우 노동위원회에 시정해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신청을 하더라도 비교대상이 되는 정규직의 유사·동종업무에 대한 판단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점 등이 한계다.
실제 2007년 도로공사 기간제 노동자들이 차별시정제도를 신청했을 때 “비교대상인 정규직 노동자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2018년~2022년) 처리사건 중 ‘비교대상 근로자 없음’ ‘당사자 적격 없음’ 등을 이유로 기각, 각하된 비율이 2018년 18%에서 지난해 43.6%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논의에서 더 주변부에 있는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 ‘젠더 관점’으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고용 형태에 따라 사실상 신분을 나누고 여기에 젠더 차별이 더해져 저임금 여성은 더 빈곤해지고 있다”며 “여성 노동자가 남성보다 저임금에 더 집중돼 있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아영(소통·젠더데스크) 황경상·배문규·이수민·박채움(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
조형국(사회부) 이아름·유선희(플랫)
▼유선희 기자 yu@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