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송의 아니 근데

폭식과 다이어트 굴레에 대항하라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요요 없는 건강한 삶을 위하여…‘탈 다이어트’ 담론 등장

참고 참다가 터지는 먹성…뒤늦게 밀려드는 후회와 고통…

[이진송의 아니 근데]폭식과 다이어트 굴레에 대항하라

지난해, 유튜브 콘텐츠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에 출연한 걸그룹 있지(ITZY)의 채령이 래퍼 영지와 ‘폭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이 화제였다. 서로 ‘얼마나 폭식해봤는지’ 이야기하면서, 채령은 “프링글스 한 통 다 먹어본 적 있어?”라고 묻는다. 프링글스는 짭짤한 맛이 식욕을 자극해 많은 양을 먹도록 유도하는 감자 과자로, 식품공학 전문가들의 역작이다.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어”라는 카피로도 유명하다. 그 정도를 폭식이라고 여기는 ‘소식좌’에게 놀란 영지의 눈이 작은 선글라스 너머로 커지는 장면 덕분에 이 영상은 순식간에 천만 뷰를 넘겼다. 걸그룹은 폭식의 기준도 앙증맞다는 점이나, 그런데도 본인은 그 정도를 폭식이라고 생각하며 으스대는(?) 모습이 귀엽다는 점 등이 매력 포인트다. 동시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폭식’이라는 단어와 경험을 너무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폭식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음식을 폭발적으로 먹는 행위로, 일반적인 의미의 과식과는 다르다. 폭식 자체도 위험하지만 먹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구토 행위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에 더욱 문제다. 날이 따뜻해지고 옷이 얇아지면 다이어트의 악력이 우리를 꽉 죄어오기 시작한다. 다이어트가 일상인 현실에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폭식을 경험하고 그로 인한 좌절과 자책에 빠진다.

최근 폭식과 다이어트의 굴레에 대항하는 ‘탈(脫)다이어트’ 담론이 등장했다. 아직 규모나 인지도는 소수지만 주목할 만하다. 탈다이어트는 말 그대로 다이어트와 다이어트 상식, 다이어트를 중심으로 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이다. <다이어트 말고 직관적 식사>(에블린 트리볼리·엘리스 레시 저, 정지현 옮김, 골든어페어, 2019)의 저자는 탈다이어트를 주장하며 1995년 고안한 ‘직관적 식사’를 권한다. 직관적 식사는 다이어트 상식이나 습관을 버리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제한이나 죄책감 없이 먹는 것이 핵심이다. 2019년 아마존에서 일명 ‘입소문 역주행’을 일으킨 후 국내에서는 일부 유튜버를 통해 소개되는 중이다. 탈다이어트는 다이어트가 결코 몸을 날씬하게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반복할수록 살이 찌기만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전면화한다. 사실, 한 번이라도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은 안다. “다이어트를 태어나서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다이어트가 끝난 뒤에는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요요’가 오니까. 요요는 다이어트로 감량한 체중이 다시 돌아오거나 그 전보다 더 늘어나는 현상이 ‘요요가 위아래로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과 비슷’해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요요로 체중이 불어나면 다시 다이어트에 돌입하고, 이때부터는 끝없는 악순환에 빠진다.

자기 관리·성취감 등 환상 주입된 다이어트 문화 속 ‘몸의 감각에 집중한 직관적 식사’ 등 새 관점 제시
지나친 억제·죄책감을 동력 삼아 몸을 극한까지 몰아세우는 위태로운 행동들, 반복할수록 살 찐다는 ‘불편한 진실’ 지적
올해 국내서 처음 열린 ‘섭식장애 인식 주간’ 거식증 등 욕구 통제의 부작용 공론화 눈길

직관적 식사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먹을 것을 주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의 다이어트 담론이 지나친 억제와 죄책감을 동력으로 삼기 때문이다. 올바른 의미의 통제란, 욕망을 억누르는 것만이 아니라 본질과 방향을 잘 파악하고 적절하게 쓰거나 허용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다이어터에게는 무조건 ‘참으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고, 삶에는 무수한 변수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통제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유독 식욕을 통제하지 못하는 행위는 개인을 비난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고작 자기 식욕 하나 참지 못하는 실패자”라는 낙인. 그런데, 체중과 식욕은 의지나 ‘노오오력’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샌드라 아모트는 뇌과학적 관점에서 다이어트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분석한 <다이어트는 왜 우리를 살찌게 하는가>(장혜인 옮김, 포레스트 북스, 2021)를 썼다. 그리고 TED 강연에서 ‘뇌가 12개 이상의 화학신호를 통해 체중을 조절하고, 이 시스템은 온도 조절 장치와 비슷하므로 항상 체중을 동일하게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갑자기 체중이 감소하면 뇌는 이를 ‘원래 정해진 무게’로 돌리고자 굶주린 사람처럼 반응한다는 것이다.

뇌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체중을 줄이고자 ‘클린식’을 먹는지, 조난을 당해 나무껍질만 벗겨 먹는지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란! 다이어트 산업이, “할 수 있다”고 외치던 온갖 격언이, 자극을 준다는 명목으로 온갖 인격 모독적 발언을 일삼던 ‘트쌤’(트레이너 선생님)과 세상이 말해주지 않았던 진실이다. 다이어트를 할 때마다, 다이어터는 자신의 뇌를 조난 상황으로 데려가는 셈이다. 돌이켜보니 그랬다.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결심하지 않으면 최후의 만찬을 즐길 일도, 금지된 음식 목록을 빼곡히 썼다가 끝난 뒤 몰아 먹을 일도 없다. 무인도에서 구조된 뒤, 이성과 의지를 발휘해 살찌지 않는 음식만을 소량, 정해진 시간에 먹을 수 있을까? 극소수의 예외 사례가 다이어트 신화를 떠받친다. 어디에나 예외는 있지만, 모두가 예외가 될 순 없으며, 누구나 예외가 될 수 있다고 부추기는 것은 사기이다. 미국의 유명한 다이어트 쇼에서 우승한 주인공은 6개월간 108㎏을 감량한 의지의 소유자다.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거쳐 ‘건강한’ 다이어트를 했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수많은 참가자가 요요를 피하지 못했다. 이제 다이어트 앞에서 이렇게 말해야 할 때다. “…제가요? 미국 1등도 못한 것을요…?”

이런 원리를 알고도 다이어트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이유. 다이어트 산업이 전략적으로 ‘다이어트’를 다양한 긍정적 가치와 결합했기 때문이다. 자기 관리, 성취감, 건강, ‘확 달라진’ 인생,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 다이어트 리얼리티 쇼를 분석한 논문은 다이어트 효과가 개인을 ‘영웅’으로 연출하는 문화적 효과를 규명했다. ‘다이어트 영웅 만들기’는 “심각하게 위험한 건강 상태에서 모든 부분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건강 담론’, 사회적으로 회피하고 싶은 몸에서 가족이나 직장에서 사랑받는 몸으로 변화되었다는 ‘외모 담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의존적인 몸에서 혼자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몸으로 변했다는 ‘자립 담론’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다이어트 담론은 최종적으로 변화될 모습을 위해 자신을 스스로 극복하고, 합리적으로 절제하며 노력할 수 있다면, 이것을 적절하게 보상받을 수 있다는 환상을 주입한다. 다이어트에는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 이상으로 다양한 사회적 보상 체계, 자아 구성 요소, 감정적 결핍 문제 등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이어트가 약속하는, ‘좀 더 나은 삶’을 원하는 간절함과 성실함 때문에 위험해진다. 더 잘 살고 싶은 욕구에는 죄가 없음에도.

올해 2월24일부터 3월2일까지 국내 최초로 ‘섭식장애 인식 주간’이 열렸다. 섭식장애는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이나 폭식증처럼 섭식에 문제가 생기는 질병이다. 이 행사는 섭식장애를 경험한 당사자들이 직접 기획했으며, 인제대학교 섭식장애정신건강연구소가 주최했다. 주제는 ‘납작하지 않은 섭식장애’이다. 기획자 중 한 명인 박지니씨는 인터뷰에서 이 병이 몇몇 유난스럽고 젊은 여성들이 의지력만 발휘하면 빠져나올 수 있는 중독 정도로 치부되는 것을 지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왜 몸을 통제하려 하는가’이다. 당사자들은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보다, 몸을 통제함으로써 불안을 진정시키려 했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하면’ 눈에 보이는 결과를 증명해야 하는 성과주의가, 빠른 변화를 보장하는 식이 장애를 부추긴다. ‘섭식장애 인식 주간’은 섭식장애의 가시화와 치료를 위해 개인의 서사가 충분히 발화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개인의 서사는 다이어트를 찬양하는 사회가 납작하게 짓누르는 ‘다이어트 피해자’들이 다른 섭식장애 당사자에게 마련해주는 지지대라는 것이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섭식장애 말하기를 통해, 욕구 통제의 신화가 망가뜨리고 은폐한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체중 감량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지만) 탈다이어트 담론은 수시로 나의 식욕을 무인도로 가는 배에 태우는 다이어트 문화에 대항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거대한 사회적 압박 속에 있는 개인에게 혼자 대응하는 내면의 힘을 기르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다이어트의 무용함, 그로 인한 강박과 부작용이 공론장의 영역에서 좀 더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 인터뷰 : 시사IN, 김영화 기자, ‘섭식장애로 미끄러진 당사자가 만든 지지대’ 2023·2·15 ·참고 논문: 남상우·고은하, ‘다이어트 영웅의 탄생 : 리얼리티 쇼의 비만담론과 문화효과’, ‘한국스포츠사회학’ 24, 한국스포츠사회학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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