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감별법인가’···정부 특별법에 분노하는 피해자들

김세훈 기자
전세사기 피해자가 28일 국회 앞에서 열린 정부 전세사기 특별법안 비판 기자회견에서 무릎을 꿇고 피해 구제를 호소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전세사기 피해자가 28일 국회 앞에서 열린 정부 전세사기 특별법안 비판 기자회견에서 무릎을 꿇고 피해 구제를 호소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차윤미씨는 2021년 8월 서울 종로구의 한 오피스텔을 전세로 계약했다. 등기부등본이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이삿짐을 옮기면서 임대인에게 잔금을 이체했다. 그러나 차씨의 전셋집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기존 세입자가 현관 비밀번호를 바꿔놓은 상태였다.

이후 차씨는 지인과 가족의 집을 전전했다. 임대인을 대상으로 전세금 반환소송을 해 승소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임대인이 100여채에 달하는 오피스텔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전세사기 피해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렸지만 ‘피해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만 들었다. 차씨는 “집을 점유하지 못해 대항력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며 “정부가 제시한 6가지 조건 중 단 하나를 채우지 못해 모든 지원에서 제외되는 방식은 너무나 불합리하다”고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전날 발표한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의 폐기를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가 특별법에 명시한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등 6가지 피해자 인정 요건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알 수 없는 모호한 내용들뿐”이라며 “피해자들을 갈라치는 특별법은 차라리 폐기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인천 서구에 사는 진솔(가명)씨는 임대차 계약이 만료됐음에도 1억35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이사를 미뤘다. 진씨는 임대인이 약 20억원의 세금을 체납했다는 걸 알게 됐다.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경찰서를 찾았지만 ‘혼자 고발해서는 수사가 진행되기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 정부의 특별법에 희망을 걸었으나 피해자 인정 조건을 보고 진씨의 좌절했다.

진씨는 이날 회견에서 “정부는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지원한다고 하는데 나와 같은 소수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고발을 해도 수사가 곧바로 진행되지 않는다”며 “다른 피해자들을 모아보려 해도 임대인이 얼마나 많은 집을 어디에 소유하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피해자들이 사기꾼의 의도를 입증하기 위해 생계를 중단하고 직접 재산을 추적해야 하느냐”라고 했다.

안상미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장도 “정부의 6가지 조건에 내가 포함되는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정부가 얼렁뚱땅 내놓는 해법이 아니라 같이 대화하면서 찾아나가는 해법을 원한다”고 했다.

이강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장은 “인천 미추홀구만 해도 전세사기 피해자 2700여 가구 중 사기범이 기소된 가구는 161가구밖에 되지 않는다. 경찰서마다 사건이 쌓여있지만 전체 피해 규모를 파악하지 못 해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고소·고발을 전제로 전세사기 의도가 있는 경우에만 구제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은 정부가 무분별하게 전세 대출을 확대하고, 임대사업자 제도를 부실하게 관리해왔던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정부는 합동 기자회견에서 국세 안분을 하겠다고 해놓고 정작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종합부동산세는 안분 대상에서 빼놓는 등 피해자들을 기망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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