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면지역 환경오염 취약지 파악해 선제 대응해야”읽음

주영재 기자

지방도시·농촌 환경권 보호 조명하는 고정근 공익연구센터 블루닷 대표

[주간경향] 환경오염피해가 공론화돼 정부가 건강영향조사를 진행한 사례는 지난 14년 동안 약 50건이다. 대부분은 비도시 지역이 대상지였다. 농촌 지역은 주민의 수가 적어 정치적 힘을 동원하기 어렵다. 고령자가 많아 환경오염 피해에 취약한데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 쉽지 않다. 이웃이라는 이유로 참고 사는 경우도 많다. 유해시설들은 이런 농촌의 약점을 파고든다.

공익연구센터 블루닷은 지난해 ‘환경오염 취약지역 주민환경권 보호 방안 연구’를 하면서 국가 내에서 제3세계 취급을 받으며 공해시설을 ‘이전받은’ 지방도시, 농촌의 환경권 보호 문제를 조명했다. 고령자, 이주노동자 등 사회취약계층이 환경오염 취약지역에 사는 경우가 많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대응에 나서기 어렵다는 점에서 환경피해의 사전예방과 선제적 대응을 위한 취약지역 식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수은 블루닷 연구원과 함께 이번 연구를 진행한 고정근 블루닷 대표(사회 및 예방의학박사)는 지난 5월 16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인구밀도가 낮고, 고령자가 많으면 대체로 환경오염 문제에 저항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면서 “이런 취약성으로 환경오염에 노출되는 문제를 최소화하거나 회피할 수 있도록 사전에 정부, 지자체의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정근 공익연구센터 블루닷 대표가 지난 5월 16일 서울 용산구 서울시공익활동공간 ‘삼각지’에서 환경오염 취약지역을 파악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고정근 공익연구센터 블루닷 대표가 지난 5월 16일 서울 용산구 서울시공익활동공간 ‘삼각지’에서 환경오염 취약지역을 파악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미국 정부는 환경정의 실현을 위해 인종, 국적, 소득에 따른 환경 및 건강위험을 평가한 환경정의지수(EJ index)를 작성한다고 들었다.

“클린턴 정부 때 행정명령으로 도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비슷한 지표를 만들어 활용한다. 소규모 지역단위로 환경정의의 취약성을 식별하는 일종의 스크리닝 도구다. 우리의 읍면동보다 훨씬 좁은 600명에서 3000명 정도의 통계단위로 소득과 인종, 국적, 연령 등 인구학적, 사회경제적 지표를 조사하고, 여기에 대기오염물질, 폐기물 등 환경 부담 요인을 같이 묶어서 점수를 매긴다. 높을수록 안 좋은데, 95 이상 100인 지역을 우선순위 지역으로 선별해 그 지역에 지원을 집중한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11월 기후 및 경제정의 스크리닝 도구를 선보이기도 했다.”

-국내에 비슷한 지표가 없나.

“국내에선 소득 데이터가 읍면동 단위로 구축되지 않아 저소득 지역에 위험시설이 몰려 있다고 하기엔(사회경제적 지표와 환경 지표를 결합시키기엔)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 블루닷(당시 EJ현장연구모임)은 지난해 공장 반경 500m 안에 있는 주거지를 살피는 작업을 했다. 이를 위해 전국등록공장 현황과 대기오염사업장, 화학물질 배출량 이동량 정보, 인구통계 등을 활용해 100m 격자로 환경오염 취약지역을 도출했다. 개별입지 지역에서 환경피해 문제가 대두되면서 환경부에서 환경오염 우려지역을 조사해 작성한 목록도 있다. 하지만 (부동산가격 하락 등 주민 반발과 낙인 우려 탓에) 공개는 안 하고 있다. 최근 읍면동보다 훨씬 작은 단위로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사전에 환경 및 건강 위험성을 파악해야 하는 까닭은.

“전북 익산시 잠정마을의 경우 비료공장으로 인한 집단 암 발병이 역학조사에서 상호관련성이 있다고 파악됐다. 경기 김포 거물대리 지역도 주물공장의 오염물질에 주민들이 장기간 노출돼서 질병으로 사망했다.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를 일으킨 원인 제공자에게 배상이나 책임을 묻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보통은 법원의 판결 태도가 피해자 측에게 엄격한 입증 책임을 지우고 있어서 법원에서 뒤집히기도 한다. 결국 건강 피해 단계에 이르기 전에 원인을 파악하고 제거하는 일이 중요하다.”

-읍면 지역이 특히 취약한 이유는.

“가장 취약한 관리의 사각지대는 개별입지로 공장들이 주거지와 혼재된 곳이다. 대표적인 곳이 김포 거물대리 지역이고, 이곳의 피해 사례가 연구의 중요한 동기가 됐다. 공론화되지 않은 숨은 지역이 꽤 많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심 아파트 지역에서 소음이나 악취 피해가 있다면 이로 인한 질환이 발생하기 전에 시청이나 구청에 민원을 넣어 공장을 쫓아내거나 가동 시간을 조정했을 것이다. 농촌에선 이런 식으로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집단 민원이 가능하냐, 안 하냐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농촌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다. 우리나라에서 이는 사회적 힘, 정치적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뜻이다. 오염물질 노출을 최소화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 지역의 사회적 힘인데, 수가 적고 고령자가 많으면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고, 민원을 제기하기도 어려워진다.”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 현장 조사에서 주민들이 금속공장의 분진 피해를 호소했다.

“이곳은 마을 반경 300m 이내에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3종 규모(연간 오염물질 발생량이 10t 이상~20t 미만)의 금속제조공장과 4종 규모의 플라스틱제조공장이 있다. 반경 500m 이내에 의약, 화장품 업종 위주의 농공단지도 있다. 공장들이 개별입지 형태로 마을 주거지와 붙어 있는 경우다. 데이터 분석 결과 주민 피해 우려가 있는 환경관리 사각지대라고 보여 직접 찾아갔다. 마을 사람들은 금속 분진이 마당에 쌓이고, 남자들이 생각보다 빨리 돌아가신다고 했다. 오염 노출을 체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자체에서 오염 방지 시설을 설치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행정력이 제한돼 있으니 이런 식으로 주민들이 아플 때까지 방치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환경관리 행정을 지자체에 맡기면 잘될까.

“지역 주민들이 아프다고 하소연하기 전에 능동적으로 지자체와 중앙에서 먼저 우려 지역을 스크리닝할 필요가 있다. 그게 피해가 발생한 후의 사후조치보다 훨씬 중요하다. 현재로선 인력과 기술의 한계 때문에 지자체가 전담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함께 결합해야 한다. 경고나 주의 조치 등 행정처분을 받은 이력이나 주민 민원 발생 데이터 등 오염물질 배출 사업장의 오염 관련 이력을 일종의 이력서처럼 관리하고 공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 같은 민간에서 감시하기가 수월하고, 행정 쪽도 지속적 민원이 발생하는 곳을 파악해 상시 측정할 수 있다. 상시 측정할 곳이 많다면 중앙에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데이터를 공개한다는 건 외부 시선이 감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염 배출자는 이런 감시만으로도 상당히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이런 이력 데이터는 주민의 알권리 차원에서도 공개해야 한다. 주민 스스로의 감독 역량이 부족할 때 시민사회 혹은 민간 자본이 투입돼 감시할 수 있다. 기업과 행정 모두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다. 사업장에 대한 오염방지 기술지원도 필요하다.”

-데이터 공개에서 개선할 점은.

“정보공개가 형식적인 경우가 있다. ‘화학물질 배출량 공개제도’라는 게 있는데 검색 조건을 넣어볼 수 있다. 문제는 우리 같은 연구자들이 특정 지역의 특정 사업장에서 연도별로 어떤 화학물질이 어느 정도 양으로 배출되는지 엑셀 데이터로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주지 않는다. 결국 개별 검색한 결과를 엑셀 파일에 붙이는 수작업을 거쳐 완성했다. 전체 데이터가 있으니 검색하면 바로 나오도록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손쉬운’ 형태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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