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재무장” 지시에···일선 경찰 “X같이 부려먹더니” 폭발읽음

이유진 기자

지휘부, 대규모 집회 엄중 대응 지시

“경찰의 안일한 대응에 비난있다”며

‘전열 재정비’ 언급, 고강도 훈련 지침

일선 “말단에 책임돌려···무책임한 대책”

서울 미근동 경찰청 정문 철제 바리케이드 사이로 경찰 상징문양이 보인다.  강윤중 기자

서울 미근동 경찰청 정문 철제 바리케이드 사이로 경찰 상징문양이 보인다. 강윤중 기자

경찰 지휘부가 대규모 집회에 대한 엄중 대응을 일선에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신 재무장’ 수준의 고강도 훈련이 지침으로 내려오자 현장 경찰관들은 “말단에 책임을 돌리는 무책임한 대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23일 커뮤니티 블라인드 경찰청 게시판에는 ‘경비국장 주재, 최근 대규모 집회 사후평가 회의 결과’라는 제목의 문건 사진이 올라왔다. 작성 주체는 ‘경비과’, 작성 시점은 지난 22일이며, ‘특별취급’이란 주의사항이 표시됐다.

회의 주요사항은 ‘전열 재정비’였다. 이 문건에 따르면 경찰청 경비국은 지난 16~17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건설노조의 상경집회를 두고 “경찰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비난이 있다”며 “구성원 모두가 엄중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향후 이번 고용노동청 앞 도로 점거 사례와 같은 상황이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단계적인 해산 및 검거 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도로 점거 사례는 건설노조의 노숙 집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문건은 5월24일부터 6월6일까지 전국 경찰 집중훈련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특히 “이번 기회에 모든 기동대원의 정신 재무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으나, 기동부대 역량 강화 측면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추진할 것이며, 이에 대한 현장활력소(내부망)·블라인드 등을 통한 직원들의 불만 및 비난은 감수할 것”이라고 했다.

문건 내용이 알려지자 일선 경찰들은 반발했다. 한 경찰관은 “안일한 대응을 대원들이 했냐”며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할 뿐인데 이 더위에 강도 높은 훈련? 그러다 누구 하나 쓰려지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이냐. 그것도 지휘관 잘못인가. 지시를 누가 했는지는 아래 공문에 나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민첩한 대응을 바란다면서 장수라는 자가 병사들의 사기를 이런 식으로 꺾냐”고 했다.

다른 경찰관도 “정신무장 같은 소리 하고 있다”며 “최근 X같이 부려먹고 말 같지도 않은 근무 시키고, 지방 직원들까지 어이없는 걸로 동원해 고생 다 시키더니 한다는 말이 수고했다가 아니라 정신무장이냐”고 했다. 일부 경찰들은 문건에 쓰인 오탈자 등을 지적하며 “진짜 경찰 내부 문건이 맞느냐”고 반응하기도 했다.

엄성규 경찰청 경비국장은 지난 22일 서울경찰청 기동본부를 방문해 문건에 쓰인 내용과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경찰 간부는 “문건만 보면 현장의 고충은 무시하고 강도 높은 훈련을 몰아붙이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근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내부 동요 없게 해달라는 당부에 가까웠다”고 전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시민 안전과 적법절차 준수, 법질서 확립 등 두 가치를 한꺼번에 달성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지휘관들에게 젊은 경찰들에게 (상황을) 자세히 설명 좀 해달라 당부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했다.

다만 경찰청은 블라인드에 올라온 문건은 경찰청이 작성해 하달한 정식 공문은 아니라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양식이나 오탈자 등을 보면 본청에서 작성한 문건은 아니”라며 “작성 주체가 12개 시·도청 경비과인지, 일선서인지 혹은 누군가 임의로 작성한 문건인지 등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경찰은 건설노조의 1박2일 집회 이후 집회·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선언한 상태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8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불법 집회에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특단의 조처를 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3일 건설노조 집회를 두고 “과거 정부가 불법 집회, 시위에 경찰권 발동을 사실상 포기한 결과 확성기 소음, 도로 점거 등 국민들께서 불편을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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