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침 들었다놨다 ‘경계경보 오발령’…“아무 정보 없는 대피령, 실제였으면 어쩔 뻔”

서울시의 경계경보 ‘오발령’

행안부 위급재난문자로 부인

대피소 정보 등 없어 시민 혼란

북한이 31일 오전 6시29분쯤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 방향으로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이날 오전 서울역 대합실 TV에 관련 뉴스속보가 나오는 가운데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갑작스럽게 울린 경보음을 듣고 휴대전화 위급재난문자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31일 오전 6시29분쯤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 방향으로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이날 오전 서울역 대합실 TV에 관련 뉴스속보가 나오는 가운데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갑작스럽게 울린 경보음을 듣고 휴대전화 위급재난문자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특별시가 낸 경계경보 ‘오발령’으로 31일 서울의 아침이 들썩였다. 서울시가 낸 경계경보를 행정안전부가 긴급재난문자로 부인하고, 이어 서울시가 경계경보 해제를 재난문자로 알리면서 서울시민의 휴대전화가 3차례 크게 울렸다. 정부 기관 간 엇박자, 구체적 정보 없는 경계경보, ‘아니면 말고’ 식 해제 등 출근길을 뒤흔든 오발령 소동에 시민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6시41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위급 재난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행안부에 따르면 이 경계경보는 북한 발사체와 관련해 백령·대청 지역에만 발령되어야 했으나 행정상 실수로 서울에 잘못 발령된 것이었다.

경계경보가 울리자 서울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서울 강북구에 거주하는 김모씨(28)는 “경계경보에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하는지 아무 내용이 없어 카카오톡으로 서로 물어보기 바빴다”면서 “실제였으면 허둥대다 다 죽었다”고 했다. 김씨는 경보 발령 직후 네이버에서 대피소와 대피 매뉴얼을 찾으려 시도했으나 서버가 일시적으로 다운돼 검색할 수 없었다. 행안부 안전디딤돌 앱도 접속자 폭주로 대피소 위치 확인 등 기능이 마비됐다. 김씨는 “아찔하고 황당한 경험”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의 이같은 대응은 일본 정부 조치와 대조됐다. 일본 정부는 한국 측 공지보다 11분 앞선 오전 6시30분 “북한으로부터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여진다. 건물 안, 혹은 지하로 대피해달라”는 내용의 안내 문자를 보냈다. 경보 발령 이유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 담겼다.


서울시와 행안부가 보낸 위급 재난 문자 갈무리.

서울시와 행안부가 보낸 위급 재난 문자 갈무리.


대피에 나섰다가 허탈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창문을 열고 잠들었다가 사이렌 소리에 잠을 깬 채모씨(26)는 ‘대피하라’는 민방위 경보에 놀라 생수·보조배터리 등을 가방에 쌌다. 경계경보 문자를 받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디로 가라는 거지?’였다. 채씨는 “근처 대피소까지 뛰어야 하나, 대피소는 어디있었나, 온갖 생각을 했는데 오발령이라니. 아침부터 별 생각이 다 들었다가 겨우 진정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우선 대피 대상’으로 꼽은 노약자들과 어린이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A씨(81)는 “진짜 뭔 일이 난 줄 알고 짐을 챙겼다”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 아들 내외가 오발령이라 해서 안심했다”고 말했다. 방송인 최희씨는 인스타그램에 아기를 안은 사진을 올리며 “경보 문자에 머리가 하얘졌다. 아이들을 데리고 지금부터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머릿속에 데이터베이스가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썼다.

출근길 대중교통에서도 소동이 벌어졌다. 서울시 경계경보 발령 시 지하철에 있었던 전모씨(35)는 긴급재난문자가 울린 뒤 휴대전화를 열어본 사람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 바라봤다고 했다. 그는 “어린이·노약자 우선 대피하라고 하니, 걷기도 힘든 어르신들이 허둥지둥 지하철에서 내렸다”며 “어떤 이들은 뛰어가며 대피소를 찾기도 했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고령층 시민 중에선 재난 문자에 놀라 급히 짐을 싸 주거지 인근 지하철을 찾은 예도 있었다.

서울로 출근하는 경기도민들도 뒤숭숭한 아침을 맞았다. ‘서울시 경계경보’ 소식을 들은 최모씨(35)는 직장에 전화해 출근 여부를 물었다가 “출근해서 대피해라”는 핀잔을 들었다. 최씨는 “경기도 산다고 문자 못 받아서 서러웠는데, 출근은 하라고 해서 민망했다가, 오발령이라고 하니 짜증이 났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불안감에 우왕좌왕했다. 유학생 이다 가르델(덴마크·25)은 경보를 듣고 당황해 한국인 친구에게 “대피해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집에 혼자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며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던 게 맞냐”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대학가 고시텔에서 거주 중인 이모씨(28)는 “아침에 사이렌을 듣고 같이 하숙하는 외국인 친구들이 복도로 나와 웅성웅성했다”면서 “한국어 방송을 모르니 진짜로 전쟁이 난 줄 알고 놀라길래 걱정하지 말라고 달랬다”고 말했다.

SNS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전쟁이 나면 다들 이렇게 재난문자에 두리번거리다가 다 죽는 것”이라면서 “안내도 훈련도 없어서 덜덜 떨다가 끝나겠다”고 했다. 트위터에서도 “무의미한 대피 경보로 공포감만 조성한 데다가 서울시랑 행안부 손발도 안 맞았다. 이 정도로 무능할 수가 있나 싶다. 국민 안전에 치명적이지 않나”라는 게시물이 1500회 넘게 리트윗됐다. 이날 내내 트위터 트렌드 키워드는 ‘경계경보’ ‘오발령 문자’ ‘오발령 XXX’ 등이 차지했다.

서울시가 발령하고 행안부가 부인하는 ‘오발령 해프닝’이 시민들의 경계심을 낮춘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학생 김정원씨(26)는 “이렇게 가짜 경보가 자꾸 울리면 실제 상황에도 오발령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면서 “딱 양치기 소년 꼴”이라고 했다. 박모씨(27)는 “실제 전쟁이 나도 ‘저번처럼 오발송이겠지’하고 안 믿게 될 것 같다”고 했다.

SNS엔 경보음과 안내 문자에도 다시 잠을 청했다는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오발령으로 공포감을 부추긴다”는 말까지 나왔다. 서울시는 경계경보를 해제하며 “북한 미사일 발사로 인해 위급 안내문자가 발송됐다”고 안내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역별로 대피소가 많아 일일이 안내하는 맞춤 경계문자를 보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긴급한 상황이니 대피를 준비하라는 의미로 보낸 것”이라고 했다. 경계문자에 정보값이 적다는 비판에 대해선 “평소에 훈련을 통해서 숙지하도록 하고 있고, 애플리케이션에만 들어가도 위치가 나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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