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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자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지난 4월13일 대법원 판결선고 전 신대구부산고속도로 하청업체 소속 수납원들이 대법원 앞에서 팻말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일반노동조합 신대구부산고속도로톨게이트지회 제공

지난 4월13일 대법원 판결선고 전 신대구부산고속도로 하청업체 소속 수납원들이 대법원 앞에서 팻말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일반노동조합 신대구부산고속도로톨게이트지회 제공

주식회사 신대구부산 민자고속도로 하청업체 소속 요금수납원들의 ‘불법 파견’ 인정 판결이 소송 제기 4년6개월 만에 나왔다.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이다.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은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청업체 신대구부산이 요금수납원들을 지휘·감독했다고 판단했다. 민자고속도로 소속 요금수납원에 대한 불법 파견이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기업 한국도로공사 하청업체 요금수납원들에 대한 불법 파견 인정은 2019년에 나왔다.

민자고속도로 요금수납원들의 ‘완승’처럼 보이지만 싸움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속내는 복잡하다. 근로자 지위는 명확한 판결을 받았지만, ‘저임금’ 처우를 바로잡는 일은 갈 길이 멀어서다.

업무 지시하면서 처우는 ‘나 몰라라’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난 4월13일 이후 한 달이 흐른 지난달 15일 경남 밀양 산외면 노조 사무실에서 신대구부산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을 만났다.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수납원들은 “아직 아무런 변화가 없고, 임금 차액 보전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싸움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신대구부산 요금수납원들은 당초 이번에 승소한 고용 의사표시 등 청구 소송을 내면서 ‘임금 차액’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실질적인 사용자 원청의 지휘·명령을 받고 일했는데, 그에 따르는 임금 처우가 낮은 것이 “부당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원청이 임금 상당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대구부산 요금수납원들의 임금은 하청이 원청에서 받는 도급비인 ‘기성금’을 나눠 갖는 구조다.

지난달 15일 경남 밀양 산외면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요금수납원 박선민씨(가명)가 자신의 임금명세서를 보고 있다. 유선희 기자

지난달 15일 경남 밀양 산외면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요금수납원 박선민씨(가명)가 자신의 임금명세서를 보고 있다. 유선희 기자

신대구부산 하청업체 소속으로 올해 17년 차 수납원 박선민씨(50대·가명)는 “원청이 참여하는 행사에 지원 나간 적도 있다. 휴무일이었지만 수당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수납원 관련 업무뿐만 아니라 식당 조리사분이 휴무에 들어가면 밥 짓는 일도 한다”며 “사고에 노출돼 있다는 우려로 도로 청소 범위나 횟수가 과거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차로와 가드레일 옆 경사면 청소는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야간엔 거리가 어두워 내달리는 차를 못 볼 때가 있어 “위험할 뻔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하청업체 소속 직원은 160여 명인데 이 중 90%가 여성이다. 대부분 가정주부다. 임금 자체가 낮아도 생계에 보탬이 되려고 일터에 나왔다. 저임금 일터에 여성들이 많이 분포하게 되는 일반적 구조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노동이 ‘손쉬운 일’로 치부돼 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박씨는 “공장만 하더라도 10년이 지나면 공장장 직위를 다는데, 수납원은 신입이나 10년 차나 직급과 처우가 동일하다”며 “단순 업무처럼 보여도 숙련도에 따라 차량 통행 대응 등이 다르다”고 했다. 노동이 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여성들이 많이 분포한 직종에서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되는 일반적 패턴이 반복된다.

📌[플랫]당신의 임금명세서 담긴 ‘구조적 성차별’이 보이나요?

임금명세서에 담긴 ‘저임금 여성’의 현주소

매년 11월 기준 박씨의 기본급과 최저임금 간 비교 그래프. 유선희 기자

매년 11월 기준 박씨의 기본급과 최저임금 간 비교 그래프. 유선희 기자

경향신문은 박씨의 임금명세서 5년 치 분석을 통해 신대구부산 수납원들의 임금 처우 현실을 살펴봤다. 박씨가 받는 기본급은 200만원에 못 미치는 최저임금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기본급 자체가 최저임금 수준인 ‘전형적인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명세서다.

매년 11월 기준(209시간 근무) 기본급이 2018년 169만2900원, 2019년 180만2000원, 2020년 184만3800원, 2021년 189만8140원, 2022년 195만2478원이다. 같은 시기 최저임금보다 겨우 3만~11만원 정도 많을 뿐이다. 기본급 인상 폭 역시 2021년을 제외하고 최저임금 인상 폭보다 모두 낮았다. 수납원들의 기본급은 신입이든 10년이 넘었든 모두 같다.

기본급 이외에 고정급여로 식대 5만원, 교통비 5만원을 받는다. 2018년 노조가 생긴 이후 2019년부터 지급된 비용이다. 변동급여는 심야수당, 휴일근무수당 등이 있다. 수납원들은 업무 특성상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야간에 일한다. 박씨의 심야 근로시간은 대략 40~60여 시간으로, 수당으로 평균 20여만 원을 받고 있다. 심야 근무 일수에 따른 수당은 총액에 영향을 미친다. 휴일근무수당도 쉬는 날짜 수에 따라 변동이 크다.

매년 11월 기준 박씨의 임금 총액(세전)과 4인 근로자 가구 실태생계비 비교 그래프. 유선희 기자

매년 11월 기준 박씨의 임금 총액(세전)과 4인 근로자 가구 실태생계비 비교 그래프. 유선희 기자

박씨의 세전 임금 총액은(매년 11월 기준) 2018년 208만1700원, 2019년 208만4010원, 2020년 216만7011원, 2021년 229만9295원, 2022년 229만3079원 등이다. 지난해 임금이 1년 전보다 소폭 낮아진 이유는 심야 근무 일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4인 가구 박씨가 이 소득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에 충분할까.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가 매년 발표하는 ‘근로자 가구의 실태생계비’를 기준으로 살펴봤다. 4인 가구가 일반적인 삶을 유지하려면 월평균 기준 2018년 534만2081원, 2019년 585만5677원, 2020년 574만9279원, 2021년 585만1159원, 2022년 596만1900원 등이 필요하다. 박씨의 남편 소득을 합해도 최임위에서 발표한 실태생계비 기준보다 120만원 넘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계를 꾸려나가기에 빠듯한 까닭에 박씨는 ‘연차수당’에 기대야 한다고 했다. 쓰지 않은 연차는 돈으로 환급된다. 박씨의 선택지는 ‘덜 쉬는 것’ 뿐이다. 박씨가 최근 5년 사이 가장 많이 쉰 날은 이틀에 불과하다. 지난해 박씨는 주어진 연차 15일 중 2일만 사용했다. 이렇게 번 연차수당은 117만8456원이었다. 연차수당을 받은 12월 총액은 같은 해 기준 11월과 비교해 약 2배 가까이 많았다.

박씨는 “자녀가 초등학교, 중학생 때 수납원 일을 시작했는데 학부모 상담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전화로 상담할 수밖에 없었다”며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고 했다.

원청의 업무지시를 받았음에도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임금명세서는 데이터 그 자체로 수납원들의 싸움의 ‘무기’가 됐다.

비교 대상 없는 비정규직, ‘차별’ 입증 어려워

원청업체 신대구부산 외관. 유선희 기자

원청업체 신대구부산 외관. 유선희 기자

하지만 법원은 원청이 임금 상당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수납원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1심에서 재판부는 “피고(원청)가 직접 고용 의무를 이행했더라면 원고(수납원)들이 받았을 임금과 이 사건 외주업체로부터 받은 임금과의 차액이 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피고가 직접 고용 의무를 이행할 때 원고들에게 적용할 근로조건이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보다 낮아지지 않는다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고등법원도 1심 판단을 수긍했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싸움의 ‘무기’였는데도 ‘증거가 없다’는 판결이 나온 이유는, 비교 가능한 직군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수납원들은 원청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직급이 가장 낮은 비서, 서무 등 행정보조 노동자들과의 임금을 비교해 차액을 입증하려고 했다. 수납원들은 행정보조 노동자들 간 월평균 임금 차액이 50만~60만원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원청 정규직의 임금체계는 연공서열에 따라 호봉이 오르는 호봉제라는 점에서 연차에 따른 액수는 더 커진다. 그러나 재판부는 “채용 절차가 다르고, 업무와 주된 내용이 본질에서 같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신대구부산 요금수납원들은 “가장 낮은 위치를 찾아 비교해야 하는 현실이 비참하다”고 했다. 수납원 박씨는 “그간의 임금 차액을 다 받겠다는 게 아니고 일부를 보전해달라는 건데도 비교대상 직군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박씨와 함께 입사한 수납원 정선자씨(50대·가명)는 “마치 ‘너희들은 정규직과 같을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수납원들은 해당 사건을 대법원으로 가져가면 판단이 지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상고하지 않았다. 대법원에선 불법 파견 사안만 다뤄졌다.

2020년 1월14일 신대구부산 수납원들이 국민연금 창원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직접고용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2020년 1월14일 신대구부산 수납원들이 국민연금 창원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직접고용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요금수납원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주식회사 천안논산 민자고속도로 요금수납원들도 지난해 11월 근로자지위 확인 등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월8일 1심에서 법원은 천안논산이 요금수납원들을 “직접고용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도 “비교 대상 직군이 없다”는 이유로 임금 차액 청구 소송은 기각했다.

“비교 대상인 정규직 노동자가 없다”는 이유로 차별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정부 제도에서도 똑같은 문제로 드러난다. 고용노동부가 2007년 도입한 차별시정제도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유사하거나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불합리한 차별을 받은 경우 이를 시정하는 것이 취지다. 그러나 ‘정규직의 유사·동종업무에 대한 판단범위’에서 막히고 있다. 2007년 도로공사 기간제 노동자들이 차별시정제도를 신청했을 때 ‘비교대상 근로자 없음’을 이유로 기각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플랫]노동시장 이중구조화는 저임금 여성에게 더 가혹하다

정씨는 “저희가 ‘그림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 권리’는 찾는 게 당연한데 그 과정에서 온갖 설움을 받는 현실이 잔인하다”면서 “동종업계 산업으로 판단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래 내 아이를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박씨의 동료 정선자씨(가명, 사진 왼쪽)는 “아이가 비슷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싸움에 나섰다”고 했다. 유선희 기자

박씨의 동료 정선자씨(가명, 사진 왼쪽)는 “아이가 비슷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싸움에 나섰다”고 했다. 유선희 기자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선 노조와 사측 간 협의가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5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수납원들은 사측이 사양산업을 명분으로 시간 끌기 하는 것은 아닌지,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배치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 신대구부산 사측은 “최대한 당사자들의 의사를 물어보고 있고, 물밑 접촉을 통한 협의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금 차액에 관한 문제 제기에 대해선 “법에서 이미 판단이 나온 사항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수납원들은 2차전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싸움의 방식은 고심 중이다.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수납원들이 싸움에 익숙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이번 싸움이 처음이다. 그런데도 끈질긴 싸움을 이어나가는 건 ‘미래의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정씨는 “딸이 있는데, 제 아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저와 같은 부당한 차별을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섰다.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며 “저는 이렇게 살았어도 제 후세는 달라야 하잖나. 엄마니까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부장과 동료들이 있어 힘을 내고 있다”고 했다.

기술의 변화는 노동의 지위를 흔든다. 안정적으로 보이던 노동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라지는 일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들의 싸움은 아무런 노력 없이 ‘더 이상 필요없다’는 통보만으로 생계를 위협하는 일들이 미래의 아이들에게 쉽게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다.

초반에 밝지 않았던 표정이 인터뷰가 끝날 때쯤 반짝 빛났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싸우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싸움의 대상은 노동환경이나 성차별적 편견만이 아닙니다.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려 싸우고, 모든 것을 태우는 불꽃과 싸우고, 잊혀져가는 기억과 싸웁니다. 실제 ‘싸움’이 직업인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항상 싸움의 연속입니다. 플랫은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대상과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싸움의 ‘대상’은 누구인지, 지지 않기 위한 자신만의 ‘무기’가 있는지, 온갖 역경과 방해물에도 싸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 ‘갑옷’은 무엇인지 들어봅니다. 싸움의 온도와 단계도 함께 담아볼 예정입니다. 싸우는 과정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유선희 기자 yu@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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