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100만원 못 받는데요”···국회서 쏟아진 이주 가사노동자 노동 실태

김송이 기자


홍콩에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모여있는 모습. Gettyimages/이매진스

홍콩에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모여있는 모습. Gettyimages/이매진스


“제 친구 중 하나는 입주 가사노동자로 일했습니다. 계약서대로라면 월 100만원을 받아야 했지만 55만원만 받았습니다.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 주 6일을 쉴 틈없이 일해야 했고 제때 먹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8살 아이에게 맞았습니다. 아이는 화날 때마다 친구의 가슴을 때려 멍 들게 했지만 친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 부모는 ‘우리조차 아이를 통제할 수 없다’며 모른 척했습니다. 입주 가사노동자로 일하며 냉장고에 있는 음식 대신 먹다 남은 음식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과부인 친구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참을 수밖에 없었고,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 돼서야 필리핀으로 돌아갔습니다. 적어도 병원비는 그 가족이 좀 내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주 가사노동자로 5년째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 출신 솔리타 도밍고 무니지트는 16일 한국여성노동자회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이주가사노동자 현실과 노동권 보장방안 토론회’에서 많은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이 같은 노동 착취를 겪고 있다고 증언했다.

무니지트는 “한국의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대화에서 배제돼있다”면서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언어장벽 때문에 도움을 요청할 때 주저하게 되고 인종차별을 두려워하게 된다.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보호하는 포괄적인 법을 마련하지 않으면 학대의 악순환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정부 차원에서 최저임금 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확대 도입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가사·이주노동자의 노동환경 실태를 점검하는 일부터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참고로 제시한 홍콩과 싱가포르의 사례는 한국 사정에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인권침해의 소지가 많다는 우려도 나왔다.

중국 동포와 내국인 가사노동자로 이분화된 현 국내 가사노동 시장의 문제를 발제한 김양숙 미국 플로리다 아틀란틱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비이주민과 중국 동포로 양분화되어 있는 현 가사서비스 시장 안에서 중국 동포보다 더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 조건에 고용받기로 낙인찍힌 집단을 만들어낼 것이 자명하다”며 “시장논리에 의존해 돌봄을 다른 여성에게 전가하는 방식은 돌봄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가사노동자 관련 법 적용이 국제적 기준에 못 미치는 일부 아시아 지역의 사례만을 참고하는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최혜영 ‘일하는 여성 아카데미’ 연구위원은 “한국은 일·가정 양립제도와 공적 돌봄 서비스가 마련돼있어 개선해 갈 여지가 있다”면서 “왜 가사노동자 수가 더 많은 프랑스나 스페인 사례가 아닌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국제사회에서 차별 개선이 요구되는 국가의 사례만 참조하느냐”고 말했다. 홍콩은 노동법에 근로시간 규정이 없어 가사노동자들의 실질적인 노동권 보장이 어렵고, 싱가포르는 법정 최저임금 규정이 없다.

가사노동과 이주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김혜정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이주여성은 공개된 사업장에서도 일 하면서도 사업장 내 불법촬영, 사업주의 위계로 인한 성폭력 등에 노출돼있다. 외부시선에 노출되지 않는 가정이라는 사적공간에선 젠더기반 폭력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면서 “고용노동부와 서울시 시범사업에는 이주 가사노동자의 젠더기반폭력에 관한 조치는 없는데 조사방안과 대응책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명숙 전국가정관리사협회 교육정책위원장은 “오늘이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처음 인정한 가사노동자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라면서 “이제서야 노동자로 인정받았는데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최저임금 미만으로 쓰겠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 노동의 가치가 100만원도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들려 서글프다”고 말했다.

“지금도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100만원 못 받는데요”···국회서 쏟아진 이주 가사노동자 노동 실태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인 이날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주가사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제외 법안에 우려를 표명했다. 인권위는 성명에서 “가사노동이 법적 최소기준인 최저임금조차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가치없는 노동이며, 저발전 국가에서 이주한 여성노동자는 노동자로서의 동등한 대우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차별적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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