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도 못 열고, 불도 못 켜겠어요.”
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모씨(28)는 지난해에 이어 다시 기승을 부리는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김씨는 27일 “방충망이 있는데도 어떻게 들어오는지 밤마다 형광등 주위로 벌레 수십 마리가 붙어있다”며 “에어컨이 없기도 하고, 창문을 다 닫고 불까지 끄고 지내는데 너무 덥고 답답하다. 집에 들어가기 싫을 정도”라고 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최모씨(32)도 괴로운 건 마찬가지다. 그는 “화장실 벽과 거실 천장에 까만 점들을 발견했는데, 알고 보니 뉴스에서 봤던 러브버그였다”면서 “밤마다 살충제로 잡는 벌레가 10여마리 정도”라고 말했다. 최씨는 “차라리 해충이었으면 좋겠다”며 “징그러운데 이롭다고 하니 마냥 미워할 수도 없어 더 힘들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 경기 고양시, 서울 서북부, 인천 일부 지역에서 출몰한 러브버그가 서울 전역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언론 보도로 사람에게 직접 해를 끼치지 않고 독성이나 질병 없이 인간을 물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적응이 되지 않는 생김새”란 반응은 여전하다. 일부 시민과 상인들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 사장 A씨는 “카페 내부가 밝은 톤으로 실내장식이 되어 있다 보니 러브버그가 눈에 잘 띈다”며 “낮이고 밤이고 손님 따라 들어온 벌레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모기향을 피우거나 살충제를 뿌리면 손님들이 커피 맛 떨어진다고 할 것 같고 대책이 없다”고 했다. 인근 식당 사장 이모씨(54)는 “초여름에는 보통 문을 열어두고 장사를 했는데, 하도 벌레가 들어와서 일찍 에어컨을 틀었다”며 “(러브버그는) 파리랑 다르게 두 마리가 붙어 다니고, 날아다니는 속도도 느리니까 손님들이 더 질색한다”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선 러브버그를 피하기 위한 ‘생활팁’이 공유되기도 한다. 러브버그가 밝은색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흰색 옷은 가급적 입지 말라”는 내용의 글이 공유되는 식이다. 실제로 흰색 차량을 소유한 이모씨(39)는 “아침에 주차장에 나가보면 차 전체에 새카맣게 벌레가 달라붙어 있다”고 했다. 벌레가 들어오는 통로인 창틀 등에 레몬즙을 섞은 물을 뿌리고, 인체에 해로운 살충제 대신 물을 뿌려서 벌레를 잡는 방법도 공유됐다.
전문가들은 다음 주까지 이어지는 장마철 동안은 러브버그 개체수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본다.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6월15일 무렵부터 민원이 처음 접수되기 시작해 지난주 비가 내린 뒤 개체수가 많이 증가했다”며 “비가 내리면 고온다습한 상태에서 땅속 애벌레들이 성충으로 우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관은 “다만 장마철 이후 증가할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고, 이번 주말과 다음 주 초까지 상황을 봐야 한다”며 “(러브버그의) 대발생 원인에 관한 심층적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