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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훈령 바꿔 총리에 ‘감사청구권’··· ‘독립 지위’ 감사원법 취지 역행

정환보 기자

작년 하반기 업무계획·훈령 입수

공익감사청구 처리규정(감사원 훈령)

공익감사청구 처리규정(감사원 훈령)

감사원이 지난해 7월 훈령인 ‘공익감사청구 처리규정’을 개정해 국무총리에게 공익감사청구권을 부여하고 감사 청구시 감사원과 사전 협의를 하도록 명문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감사원 고유 기능인 공무원 등에 대한 직무감찰에도 총리의 감사청구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감사원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업무계획을 세운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행정부에 감사를 청구할 권리를 무제한 열어주는 것으로,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 지위’를 규정한 현행 감사원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행정조직 내부에 발하는 명령인 훈령을 통해 총리의 감사청구권을 규정한 것은 감사원의 직무범위 등을 법률로 정하도록 한 헌법 100조에 저촉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8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감사원의 ‘2022년도 하반기 업무계획’과 ‘공익감사청구 처리규정(훈령 제805호)’을 살펴보면, 지난해 7월5일 개정돼 시행 중인 해당 훈령에는 이전까지 없던 조항인 ‘제3조의2(국무총리의 감사청구)’가 추가돼 있다. 해당 조항은 총리에게 감사원 감사청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감사 청구 시) 국무총리는 감사원과 미리 협의한다’는 문구도 포함돼 있다. 이전까지 ‘제3조(청구인)’ 조항을 통해 300명 이상의 국민, 상시 구성원 300명 이상의 비영리민간단체, 자체감사기구가 없는 공공기관장, 지방의회 등에만 부여한 공익감사청구권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총리에게도 부여한 것이다.

현행 법률상 감사원 직무와 관련해 총리에게는 국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의 회계검사 중에서도 보조금·출연금 등 선택적 검사사항(감사원법 23조)에 관해 검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만 주어져 있다. 그런데 감사원은 행정규칙인 훈령을 통해 법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감사청구권을 총리에게 부여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사전 협의한다’는 내용까지 명시적으로 담아 행정부와 감사원 간 긴밀한 소통 통로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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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감사청구 처리규정(감사원 훈령)

훈령 개정 한 달 뒤인 지난해 8월 감사원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하반기 업무계획(안)’을 보면 기조실은 당시 ‘감사원법 개정’을 주요 일반업무계획으로 보고하며 세부내용으로 ‘(국무총리 감사청구권) 직무감찰 사항에 대하여도 총리의 감사청구권 인정’‘(감사자료 활용범위 확대)개인 신상이나 사생활 관련 정보·자료 활용 범위를 해당 감사 외로 확대’ 등을 제시했다. 총리를 매개로 행정부가 요구하는 감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감사자료 활용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감사원법 개정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해당 자료에는 국무총리의 감사청구권이 ‘새 정부 국정과제’라고 되어 있다.

공익감사청구 처리규정은 지난해 6월15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임명된 지 20일 만에 개정됐다. 규정 개정 직후인 지난해 7월29일 최재해 감사원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당시 여당 소속인 김도읍 법사위원장조차 “귀를 의심케 한다”며 발언을 정정할 기회를 줬지만, 최 원장은 같은 취지의 답변을 반복했다. 공익감사청구 처리규정 개정 역시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 관계자는 “감사원에서 민원·제보, 공익감사·국민감사 청구, 국회의 감사 요구도 받는데 총리는 감사 요청을 못한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냐”며 “감사원법에 없다고 해서 불법은 아니다. 수많은 시행령, 규칙, 훈령, 예규는 법의 취지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규정대로 만들어서 집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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