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퀴어문화축제

을지로에 떠오른 무지개···폭염에도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1일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자들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기은 기자

1일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자들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기은 기자

“지금까지 정체성을 숨기고 살았는데 용기를 얻고 싶어서 나왔어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만난 손성호씨(43)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손씨는 “지금까지 축체에 비취지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선뜻 참가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나와보니 공기도 편안하고 나와 같은 고민을 겪고 있던 사람이 많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주말인 1일, 서울 을지로2가 일대에서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가 열렸다. 퀴어축제는 지난 2015년부터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는 서울광장에서 열렸으나 올해는 기독교 단체가 행사를 열면서 을지로에서 개최됐다.

체감온도가 35도에 육박하는 날씨에도 을지로 일대 2차선 도로는 무지개 머리띠와 팔찌를 두른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무지개 깃발을 어깨에 두르고 다니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1일 서울 을지로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의 한 부스의 모습. ‘나는 나다, 나를 사랑하라’ ‘행복하자, 고민없이’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윤기은 기자

1일 서울 을지로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의 한 부스의 모습. ‘나는 나다, 나를 사랑하라’ ‘행복하자, 고민없이’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윤기은 기자

행사장에는 성소수자 연대단체의 부스 58개가 설치됐다. 행사장 가운데에는 성중립 화장실도 마련됐다. 한 부스에서는 응원 포스트잇 붙이기 행사를 진행 중이었다. 참가자들은 ‘사랑이 이긴다’ ‘우리가 퀴어다’ Never be silenced’ 등의 응원의 말을 포스트잇에 적었다.

외대부고·민족사관고 등 재학생들의 연합부스도 보였다. 부스를 운영하던 외대부고 학생 인하진씨(18)는 “코로나 시기 성소수자 동아리 활동이 위축되면서 (퀴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가 쉬워졌다.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다시 살리고 싶었다”며 “외국인, 학생, 어르신 등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분들이 부스를 찾아줘서 좋다”고 했다.

고등학생 류한선씨(18)는 “동성애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인데 사회에서 억압당하고 있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했다”며 “사람들이 관심이 많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사람이 많아서 좋다”고 했다.

1일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과 깃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윤기은 기자

1일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과 깃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윤기은 기자

기독교단체도 부스를 운영했다. 여름교회 목사 김정원씨(40)는 “세상에 이런(퀴어 친화적인) 교회도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나왔다”며 “교단에는 성소수자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시의 광장 사용 불허 결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2015년부터 퀴어축제에 참가하고 있다는 봉준영씨는 “퀴어축제는 성소수자에게는 나 자신을 숨기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숨통과도 같은 행사”라며 “시청광장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곳인데 ‘안 볼 권리’를 주장하면서 밀려나 안타까웠다. 장소를 옮겨 다양한 모습의 성소수자가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김나경씨(27)는 어머니 박미란씨(57)와 아버지 김경한씨(57)과 함께 퀴어축제에 참가했다. 김씨가 ‘춤추고 노래하며 신나게 저항하자’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가족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기은 기자

김나경씨(27)는 어머니 박미란씨(57)와 아버지 김경한씨(57)과 함께 퀴어축제에 참가했다. 김씨가 ‘춤추고 노래하며 신나게 저항하자’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가족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기은 기자

가족 단위로 행사에 참여한 참가자도 있었다. 경기 고양에서 부모님과 함께 행사를 찾은 김나경씨(27)는 “서울시가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행사에 광장 사용을 불허했다는 것이 화가 난다”며 “남녀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의 아버지 김경한씨(57)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은 상황에서 퀴어 축제가 이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 세대가 청년일 때보다 지금 세대가 자유로운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좋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미국·영국·캐나다·독일 등 각국 대사관도 부스를 설치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등 각국 대사들은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참가자들은 오후 4시30분부터 을지로에서 삼일대로를 거쳐 종각역으로 향하는 행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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