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결혼 안 하셨죠” “애는 키워봤어요?” “젊어서 뭘 모르는 것 같은데…”
2030 초등학교 여성교사들은 ‘교사’로서 일하기 이전에 성별·나이를 앞세운 부당함을 견뎌내야 한다고 토로한다. 학부모 민원 제기만이 아니다. 학교내 관리자들까지 곳곳이 ‘지뢰밭’이다. 부당한 민원제기나 불합리한 지시들은 교사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진다.
올해 6년 차 초등교사 박미진씨(29·가명)는 24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최근 서울 서초구의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이 “2030 여성 노동자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교사로서 자질을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성별과 나이 권력으로 제 가치가 무시되는 것”이라며 “2030 여성을 얕잡아 보고 막 대해도 된다는 시선이 깔려 있고, 나이가 어리니 (거부하기 쉽지 않아) 가장 꺼리는 학년에 배치되는 식”이라고 했다.
박씨는 “남성교사들은 적어도 민원을 받을지언정 ‘결혼했냐’ ‘아이는 키워봤냐’ 등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아이 안 키워봐서 그런다’는 식의 민원은 여성에게만 제기되는 말로, 폭력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도움이 필요해 학교 관리자를 찾아가도 “나이가 어려서 뭘 모른다. 이해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이런 불합리한 현실은 학생 지도 업무에도 영향을 끼친다. 박씨는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안 낳아서 이런 요구나 지시를 부당하게 느끼는 건지, 참아야 하는 건지 검열하게 되고 위축된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간 두 번이나 심리상담을 받았다. 추가로 맡게 된 ‘1학년 방과 후 수업’ 업무가 많아 학교에 지원을 요청했는데도 도움을 받지 못해서, 폭력성을 보이는 학생을 지도했는데 학생 부친으로부터 협박성 민원을 받으면서다. 그는 “이건 개인적 방법일 뿐 구조적 해결 방법은 찾지 못했다. 젊은 여성교사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교육청, 국가 단위에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초등교사 2만8335명 가운데 2만4668명(87.1%)이 여성이다. 여초 현상이 뚜렷한 교육 현장에서 2030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부당한 일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 나이, 연차가 낮은 여성들은 업무 배정에서도 ‘2차 차별’을 받는다.
초등교사들은 1학년과 6학년 담당을 대부분 꺼린다. 1학년은 손이 많이 가고, 6학년은 선생님과 기싸움을 하려는 아이들이 많아서다. 기피 학년을 저연차 교사들이 맡는다는 건 “나이 권력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교사들은 말한다. 초등 교사들은 정보(나이스 업무 등), 체육, 방과 후 업무 등도 추가로 담당하는데, 여기서도 “관리자의 성차별 인식”이 반영된다. 체육 수업의 경우 “99%가 남성교사에게 맡겨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올해 7년 차 초등교사 이지은씨(30·가명)는 “남성교사가 욕을 하면 ‘기강 잡아주네’라고 하면서, 여성교사들이 큰 소리를 내면 민원을 제기하는 식”이라며 “남성교사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것만으로 만족하면서, 여성교사에겐 섬세한 지도를 원하는 것은 전형적인 성차별적 시선”이라고 했다.
여성교사들은 성희롱·성폭력에도 더 많이 노출돼 있다. 전교조의 ‘학교 내 페미니즘 백래시와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교사 설문조사 보고서’(2021년)에 따르면 초·중·고 여성교사 887명 중 41.3%가 성희롱과 성폭력 피해를 경험(복수응답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은 연령대가 낮을수록 많았다. 특히 2030 여성교사의 66.0%가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장 많은 피해는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와 평가(26.6%)였다. 전교조는 “학교는 젠더와 나이 권력이 함께 작동하는 공간임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임혜정 전교조 서울지부 여성부위원장은 “각종 악성 민원과 폭언 노출 등 교사들이 노동권을 침해받고 있는데 이를 보호할 장치가 없다. 결국 ‘노동권’을 어떻게 보호해줄 것인가의 문제”라고 했다. 이어 “학생, 학부모, 교사 간 대립 상황으로 몰아가는 건 이번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며 “교사 개인이 대응하기 어려운 사건의 기준을 마련해 학교 관리자가 적극 개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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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희 기자 yu@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