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내 아들 위해···코스트코 유족이 싸움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이홍근 기자
코스트코 산재 사망 노동자 유족 김길성씨가 지난달 27일 경기도 광주시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7.27.김창길기자

코스트코 산재 사망 노동자 유족 김길성씨가 지난달 27일 경기도 광주시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7.27.김창길기자

아들이 떠난 집은 고요했다. 김길성씨는 아들 김동호씨 영정사진 옆에 놓인 워커(보행 보조기구)에 기대 걸음을 옮긴 뒤 식탁에 앉아 숨을 골랐다. 가족의 고통을 대변하듯 식탁 위엔 약봉지와 약통이 줄 세워져 있었다. 깊은 침묵 뒤 김씨가 입을 열었다. “동호가 코스트코에 입사했을 때 가족들이 다 같이 기뻐했어요. 그게... 그게 참 후회되네요.” 적막한 집에서 웃고 있는 것은 사진 속 동호씨 뿐이었다.

동호씨는 지난 6월19일 코스트코 하남점 주차장에서 일하다 쓰러져 사망했다. 이틀째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기록해 폭염특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당시 주차장은 차들이 내뿜는 열기와 햇볕에 달궈진 시멘트 때문에 커다란 압력밥솥처럼 끓고 있었다. 동호씨는 이런 폭염 속에서 매시간 200대의 카트를 밀고 다니며 17㎞를 이동하다 쓰러졌다. 더위를 식혀줄 에어컨도, 목을 축일 물도 없었다.

아들이 정신을 잃은 시간, 김씨는 병원에 입원해 고질적인 허리 병변 치료를 받고 있었다. 김씨에게 비보를 알린 건 막내아들의 전화였다. 김씨는 “동호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면서 “당시만 해도 일하다가 기절한 걸로만 알았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난 뒤에야 김씨는 전날 동호씨가 가족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내일 병원에 가야겠다”고 말한 사실을 기억해냈다.

코스트코 산재 사망 노동자 유족 김길성씨가 27일 경기도 광주시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7.27.김창길기자

코스트코 산재 사망 노동자 유족 김길성씨가 27일 경기도 광주시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7.27.김창길기자

김씨가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동호씨의 심장은 이미 멎은 상태였다. 사망진단서에는 ‘폐색전증’이라는 생소한 병명이 적혔다. 빈소가 차려졌고, 조문객들이 방문했다. 코스트코 측 임원과 관계자들도 빈소를 찾았다. 이때까지도 김씨와 유족은 동호씨가 제대로 된 조치 없이 폭염 속에서 일하다 숨진 사실을 몰랐다. 김씨는 “의무기록지에 그냥 일하다 쓰러진 걸로 되어 있어서 그런 줄만 알았다”고 했다.

그날의 진실이 드러난 것은 동호씨의 휴대폰이 열린 뒤였다. 김씨는 장례를 치르고도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평생 큰 병 한 번 앓아본 적 없는 건강한 아들이었다. 갑자기 쓰러지거나 폐색전증으로 의심되는 전조 증상을 보인 적도 없었다. 김씨는 “그냥 갑자기 이유 없이 쓰러졌다는 걸 납득하기 어려웠다”며 “휴대폰에 뭔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했다. 여러 조합으로 시도해본 끝에 알아낸 아들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는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오기 전 집에서 쓰던 유선전화 번호였다.

휴대폰은 “일하다 갑자기 쓰러졌다”는 코스트코측 설명보다 훨씬 많은 정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동호씨가 동료와 나눈 메시지와 휴대폰에 찍힌 사진 등을 종합하면, 동호씨는 사망 당일 낮 이미 동료에게 “호흡이 죄어온다”고 호소했다. 한 직원은 “동호 선배 지금 어깨 아파서 숨 못 쉰다고 하니 (카트 정리) 시키지 마라”라고 했다. 동호씨가 조퇴를 고려했으나 다른 직원에게 업무가 쏠릴까봐 못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제대로 된 휴게공간이 마련되지 않은 탓에 고 김동호씨가 작업장 한쪽에 쭈그려 쉬고 있는 모습. 유족 제공

제대로 된 휴게공간이 마련되지 않은 탓에 고 김동호씨가 작업장 한쪽에 쭈그려 쉬고 있는 모습. 유족 제공

코스트코의 열악한 근무 환경도 휴대폰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3시간에 한 번 주어지는 휴게시간은 15분뿐이었고, 휴게공간도 5층에 단 한 곳만 마련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동호씨 등 노동자들은 주차장 한쪽에 주저앉아 쉬어야만 했다. 제공되던 얼음물도 원가절감을 이유로 사라졌고, 에어컨은커녕 환풍시설조차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동호씨가 사측 설명처럼 그냥 쓰러진 것이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더운 환경에서 일하다 쓰러진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김씨는 휴대폰을 들고 사망진단을 내린 의사를 찾아갔다. 김씨는 “의사가 자료를 보고선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면서 화를 냈다”고 했다. 자료를 둘러본 의사는 동호씨의 사인을 ‘폐색전증’에서 ‘폐색전증 및 온열에 의한 과도한 탈수’로 정정했다.

사망진단서에 사측의 책임을 암시하는 문구가 적히자 코스트코는 유족에게서 등을 돌렸다. 산재 처리 절차를 묻자 “유족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씨는 동호씨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사측에 요청했으나, 코스트코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제공하지 않았다. 결국 사망 후 45일이 흐른 지난 3일에서야 유족은 영상을 받을 수 있었다. 사과는 없었다.

고용노동부의 조사가 시작됐다. 동호씨 동료들이 근로감독관에게 조사받을 때 사측은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고용해 조사에 입회하게끔 했다. 변호사는 조사가 진행되는 내내 직원 옆에 앉아 대화 내용을 확인했다. 일반 형사사건으로 치면 피고인의 대리인이 참고인 조사에 입회한 셈이다. 당시 조사를 받은 한 직원은 “부담감이 느껴져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다”고 했다.

코스트코 하남점 전경. 코스트코 제공

코스트코 하남점 전경. 코스트코 제공

김씨는 아들의 산재 처리를 놓고 회사와 다투는 것을 “죄책감과 마주하는 일”이라고 했다. 김씨는 “아들이 원래 미국 유학을 원했었는데, 형편이 어려워져 보내주지 못한 게 한이 된다”고 했다. 동호씨는 코스트코에 다니며 자력으로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계획대로라면 11월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그때 유학을 보내줬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까 싶다”면서 “아닌 걸 알면서도 (나를) 원망했을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김씨가 사망한 날은 유학 준비의 마지막 절차로 유학비를 입금하기로 한 날이었다.

김씨가 물러설 수 없는 건, 코스트코에 아직도 아들과 같은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씨의 막내아들도 형이 사망한 코스트코 하남점에서 일하고 있다. 김씨는 “누군가는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코스트코는 이제라도 사과하고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라”고 했다.


노동사(死), 그 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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