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할 시간조차 없었다”···산재로 형과 부친 잃은 박씨의 일상

윤기은 기자

③아버지와 형을 산재로 떠나보낸 막내아들

박성남씨(41·가명)가 지난 7월18일 전남 목포시 고용노동부 목포지청 정문 앞에서 노동부를 향해 형의 추락사 사건에 대한 꼼꼼한 조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기은 기자

박성남씨(41·가명)가 지난 7월18일 전남 목포시 고용노동부 목포지청 정문 앞에서 노동부를 향해 형의 추락사 사건에 대한 꼼꼼한 조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기은 기자

지난달 18일 오전 11시40분, 검은색 양복을 입은 박성남씨(41·가명)가 전남 목포시 고용노동부 목포지청 정문에 섰다. 한 손에 검은 우산을, 한 손에는 ‘고용노동부 방관 속에 사망사고 계속된다. 고용노동부는 각성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호우특보가 내려진 이 날, 5일째 1인시위를 이어온 박씨는 “사업장 측에서 반응이 없어서요. 처벌이 가볍게 나올까 걱정도 되고…”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건설 미장공이었던 박씨의 부친은 2003년 작업 중 고층에서 추락해 숨졌다. 그로부터 20년 후, 형 박성도씨(43·가명)도 선박 해체 작업 중에 떨어져 지난 7월5일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형을 봤을 때가 지난 설 연휴 때. 얼굴이 퉁퉁 부어있는 거예요. 지난해 12월에 다쳐서 성형외과에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집에 올 때마다 몸이 안 좋았어요. 안쓰럽고, 고생 많이 하는구나 싶었죠. 그 와중에 어머니와 제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매번 사 오고.”

부친이 사망한 이듬해 형 성도씨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지인 소개로 서울에서 목포로 내려와 선박업체 ‘취부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용접기를 들고 다니며 선박에 철판을 붙이거나 떼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고인은 사고 당시 대불산업단지에 있는 선박 부품 조립 하청업체에 다녔다. 지난달 3일 선박에 붙은 선반 해체 작업 중 바닥으로 떨어졌고,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그는 약 10분 동안 현장 바닥에 방치됐다고 한다.

박씨는 떠난 형의 유품을 정리하다 이해할 수 없는 서류들을 발견했다. 형의 아파트 우편함에는 ‘임금 체불’ ‘국민건강보험 4대 사회보험료 체납’ 우편물이 쌓여 있었다. 알고 보니 해당 업체 경영진은 형 명의로 두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다 임금을 체불하고 4대 사회보험료를 미납한 채 폐업했다. 임금체불액과 보험료 미납분을 합해 1억2000만원이 넘었다. 박씨는 형의 급여명세서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업체 측은 “직원이 퇴근했다”며 차일피일 미뤘다.

업체 측은 유가족에게 “내일 하려던 작업을 박성도씨가 미리 하다 사고가 났다”고만 했다. 그러나 성도씨 직장 동료들은 “‘안전장비 착용하라’고 얘기하는 안전요원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평소에도 안전관리가 부실했다는 것이다. 3년간 성도씨와 함께 일한 A씨는 “저도 작업장에서 떨어져 머리에서 피가 났는데 다음날 바로 일을 나갔다. 그 회사는 일하다 다쳐 병원가는 시간도 시급에서 뺐다”며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일해도 사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제일 많이 다친 건 성도씨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쳤다. 비극의 신호가 계속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동생 박씨는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책임지는 이도, 사과하는 이도 없는 죽음이 되지 않게 하려고 박씨는 생업을 잠시 접고 평일마다 고용노동부 목포지청을 찾았다. 사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경찰서, 작업 현장, 원청업체 등을 돌아다녔다. 형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도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유족에게 죽음의 경위를 설명하는 이는 없었다. 정부는 ‘수사 중’이라고만 했고, 업체는 구체적인 사고 원인이나 사고 당시 안전관리 상황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형과 2인1조로 함께 일했던 동료는 사고 직후 퇴사해 연락이 끊겼다. 박씨는 “처음에는 그냥 ‘사측 얘기만 듣고 합의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 했다.

특별근로감독관이 현장에 나가기 직전, 원·하청 업체는 유족 측에 합의를 제안했다. 박씨는 형이 사망 판정을 받은 지 22일이 지난 지난달 27일 합의를 마쳤다. 원·하청 업체는 고인과 유족에 대한 사과문을 지역신문에 올리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박씨의 시위는 12일 만에 끝났다.

지난달 18일 박성남씨(41·가명)가 산업재해로 숨진 형 박성도씨(43·가명)의 짐을 전남 영암군 자택 한 쪽에 모아뒀다. 윤기은 기자

지난달 18일 박성남씨(41·가명)가 산업재해로 숨진 형 박성도씨(43·가명)의 짐을 전남 영암군 자택 한 쪽에 모아뒀다. 윤기은 기자

박씨는 한 달 만에 경기 안양시 자택으로 돌아와 현업에 복귀했다. 그러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형이 혼자 지내던 집에 쌓여있던 인스턴트 음식과 냉장고에 잔뜩 붙은 배달 음식점 전단지가 아른거렸다. 20년 전 일터에서 떠난 아버지 생각도 났다. 아직 경찰이 형의 부검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도 불안을 더했다.

박씨는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부친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충격이 컸던 탓인지, 군데군데 기억이 없다. “주말 아침에 보라매공원에서 사고 났다고 전화가 왔어요. 도착하니 몇 분 있다 의사가 사망 선고를 하고,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안치실로 가고. 그때도 엄청 울었어요. 가족 중 제일 친한 사람이 아버지였는데. 원체 저희가 못 사니 제가 크면 차 한 대 사서 다 같이 가족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일하던 업체도 처음엔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그는 “작은아버지가 회사에 가서 드러눕고, ‘합의 안 해주면 언론사에 말해서 뉴스에 나게 하겠다’고 소리치니 회사에서 그제야 합의를 했다”고 했다.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는 조선업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가 이번 사고의 원인이라고 했다. 금속노조는 지난달 28일 성명에서 “사고가 난 원청 업체의 산재보험 신고인원은 50명도 되지 않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박씨가 형의 죽음을 밝혀달라며 노동부 목포지청 앞에 머물 때, ‘사망 사고를 줄입시다’ 문구가 붙은 차량이 지나갔다. 그는 “회사들이 이런 식으로 안전 관리를 해오기까지 노동부는 무슨 조처를 한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노동사(死), 그 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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