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왔다”고 말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시민사회단체와 학계 등에서는 윤 대통령의 경축사를 부족한 역사의식, 시민사회 공격, 분열 조장으로 요약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윤 대통령이 일본 침략 피해자들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광복절 축사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광복절은 일제의 한반도 불법 강점과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면서 “식민통치에서 고통받았던 민중, 강제동원과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등 여전히 해방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데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이어 “축사에 언급된 보편적 가치와 자유민주주의 인권을 성취하기 위해 많은 시민이 피를 흘렸는데, 이들을 이어받고자 하는 시민단체나 인권운동가를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했다”면서 “심각한 역사의식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이 강제동원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제3자 변제’를 추진하면서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게 모순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한민국 최고 법원의 판결을 일본이 정면으로 부인하고, 정부는 판결을 집행하는 대신에 제3자 변제라는 방안을 꺼내 일본의 책임을 면제했다”면서 “윤석열 정부가 과연 법치를 지향하고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생긴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어 “대법원 판결의 핵심이 일제의 한반도 지배가 불법 강점이었다는 것”이라면서 “그것이야말로 광복절에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챙겨야 하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일종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였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자신이 갈라놓은 기준 밖에 있는 사람들은 다 체제전복 세력이라고 표현한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시민을 대화할 수 없는 적이라고 선언한 이상, 대립하고 투쟁하는 방법밖에 안 남았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전시 독재체제에서나 나올 법한 메시지”라면서 “탄압을 선언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경축사가 분열을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해놓고선 시민사회를 악마화했다”면서 “이념의 시대가 끝난 지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정치 양극화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리 시민사회의 수준과 국민의 수준은 과거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면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올리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자유민주주의라는 게 옛날처럼 ‘때려잡자 공산당’이 아니다”라면서 “국민을 통합하고 어우를 수 있는 메시지가 나왔어야 하는데 이번 경축사는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어 “거칠고 논리 구조가 부족한 경축사”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