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대전 교사 민원 학부모
가게에 쓰레기·기물 파손도
“관계없는 사람도 피해 우려
마녀사냥, 또 다른 범죄 불러”
지난 11일 오후 대전 유성구 한 음식점 앞. 쓰레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이 음식점 앞 바닥에는 유리병과 음식물 쓰레기, 플라스틱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곳은 최근 악성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대전 한 초등학교 교사에게 민원을 제기했던 학부모가 운영하고 있는 가게다.
가게 인근을 지나던 학생들과 시민들은 마시던 음료 유리병을 가게를 향해 던지는가 하면 가게 앞에 놓인 의자를 부수기까지 했다. 어느 누구 하나 이를 제지하는 시민은 없었다. 가게 앞은 달걀이 던져지고 케첩이 뿌려져 엉망이었다. 가게 문에는 ‘죽음으로 되갚아라’라는 내용과 학부모를 향한 욕설 등이 적힌 쪽지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교사에게 민원을 제기했던 학부모와 자녀들의 얼굴, 휴대전화번호, 운영 사업장 위치 등이 공유되면서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 유통 등으로 제2, 제3의 피해자들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다.
지난 11일 한 누리꾼은 자신의 SNS 계정에 이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학부모 얼굴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 등을 공개했다. 게시글에는 “응원한다”라는 댓글들이 달렸고 팔로어는 개설 하루 만에 2만명을 기록했다. 현재는 계정이 삭제된 상태다. 악성민원을 제기했다고 지목된 학부모들 중 일부는 12일 SNS를 통해 “민원을 제기한 적이 없다.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경찰은 해당 게시물들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사례로 판단하고 있다. 또 하루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가게를 직접 찾아오면서 경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인근에 경력을 배치했다.
대전경찰청 관계자는 “사건 발생 초기에는 경력을 가게 주변에 배치했고, 현재는 24시간 순찰차가 가게 인근을 돌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관련 정책에 문제가 있더라도 시민들이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신상을 폭로하거나 폭력적인 형태로 비난하는 행동은 또 다른 가해행위가 될 수 있어 삼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재규 변호사는 “낙인효과는 피의자의 재사회화에 악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지우기 어렵다”며 “피의사실과 전혀 관련 없는 가족과 지인들에게까지 피해가 확산되는 것은 알권리를 빙자한 마녀사냥일 수 있다”고 밝혔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종의 ‘사적 복수’로 권력기관을 대신해 범죄자를 응징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이들의 호소에 대중들이 동참하고 있다”며 “사적인 복수가 폭력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면 또 다른 범죄로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