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 여가부장관 내정자, ‘임신중단’ 입장은?
“생명존중…자기결정권 포장 뒤 현실 봐야”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내정자가 임신중단을 두고 “생명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미사여구’ 뒤에는 경제적·사회적 여건으로 낙태를 택하는 여성들이 있고, 이는 국가의 책임”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임신중단에 대한 반대 의견을 에둘러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김 내정자는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꾸려진 인사청문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김 내정자는 ‘임신중단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종교계에서는 낙태를 반대하고, 여성계에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때문에 낙태를 제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라며 “이 두 의견은 상충돼 보이지만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김 내정자는 “여성 자기결정권이라는 미사여구 포장 뒤로 감춰진 낙태의 현주소를 여쭙고 싶다”며 “경제적 능력이 안 되거나 미혼 부모가 될지 모르는 두려움, 청소년 임신 등 어쩔 수 없이 낙태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낙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넣을 수 없다고 본다”고 했다.
김 내정자는 이어 “(출산 여건이 안 돼 선택한 낙태는) 국가의 책임”이라며 “심도있게 파헤쳐서 불가피하게 낙태를 택하는 남녀 모두를 공히 책임질 법안을 만들고 예산을 따 보호하겠다”고 했다.
김 내정자는 사실상 임신중단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보인다. 김 내정자는 인사청문준비단 출근 첫날인 지난 14일 ‘생명존중’이라는 단어에 동그라미가 쳐진 수첩 페이지를 언론 카메라 앞에 보였다. 기독교 신자인 김 내정자는 과거 한 교회에서 간증하며 “아이의 낙태권은 엄마인 저에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회개했다”고 한 적도 있다.
김 내정자의 인식은 2019년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헌재 판단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당시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종결을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며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김 내정자의 인식이 헌재 결정 등 국·내외적 여성인권 신장 흐름에 역행한다고 우려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성과 재생산은 빈곤, 기후, 노동, 산업, 주거, 복지, 불평등과 혐오 등 현실에 영향을 받는 영역”이라며 “임신·출산·양육을 하기 어려운 문제는 첨예한 생존의 문제로, 현재 저출생 현상을 단순히 ‘생명존중 대 자기결정권의 대립’으로 보는 전문가는 없다”고 했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임신중단 사유에 따라 적법 여부를 구분하는 방식은 결국 국가의 목적에 따라 생명이 선별되는 것으로, 여성의 건강권과 결정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며 “헌재의 결정도 이 같은 문제의식을 담은 것이고, 세계보건기구(WHO)도 임신중단의 ‘완전한 비범죄화’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시 과거로 회귀하려는 듯한 김 내정자의 발언은 문제적”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여가부는 어떤 임신중지가 합법이냐 아니냐를 이야기할게 아니라, 어떻게 포괄적으로 임신 유지·중지와 출산 지원체계를 만들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여가부 폐지’ 입장 재확인…코인·김건희 친분 의혹은 부정
김 내정자는 이날도 여가부 폐지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 내정자는 “여성가족부 직원들은 상당히 유능하지만, 부처 칸막이 문제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며 “업무가 법무부와 교육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으로 가면 직원들의 전문성을 국가정책에 맞춰 더 잘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정부 조직은 유연성을 갖고 시대 변화의 흐름에 맞춰 가는 것”이라며 “이를 젠더갈등 문제로 끌고 가는 것은 소모적”이라고 했다.
‘장관으로서 한국의 성별임금격차에 대한 인식과 해결 방안이 궁금하다’는 질문에도 “아직도 성별임금격차가 큰 것은 여성의 경력단절 때문”이라면서도 “일자리 창출 문제나 직장 내 차별 문제, 경력단절 등 문제는 사실 고용노동부로 가는게 더 효율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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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내정자는 최근 ‘코인 투자로 수익을 실현했다’는 의혹을 두고는 “보유한 코인도 없고 거래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논란이 된 코인 보유고는 김 내정자의 회사 ‘메타캔버스’가 블록체인 기반 미디어기업 ‘퍼블리시’와 콘텐츠 사업을 진행하며 7억원 상당의 코인을 투자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내정자는 “(회사 수익 실현을 위한) 투자 목적이 아니라, (콘텐츠를 소비할) 독자들에게 보상처럼 지급될 코인”이라며 “저 개인은 코인이나 주식 거래를 해 본 적도 없고, 평생 통장도 하나만 써 왔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와 친분이 있다는 주장을 두고는 “(코바나컨텐츠와 위키트리가 주관한) 전시회에서 10분 정도 만나고, 국민의힘 비대위원 때 다른 지도부 인사들과 함께 관저에 두 차례 초대받은 게 전부”라며 “위키트리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코바나컨텐츠와 전시를 했는데, 저는 2013년 청와대 대변인을 맡으며 위키트리 지분을 백지신탁해 팔아서 관련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 조해람 기자 lennon@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