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관련 내년 예산 전액 삭감해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사업 중단 위기
“청소년 노동권 보호, 포기했나” 지적
“저처럼 일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친구들이 상담받을 기회가 사라진다는 게 걱정이에요.”
가정폭력으로 올해 초 집을 나온 A씨(20)에게 사회는 바로 ‘뒤통수’를 쳤다. ‘최소 3개월 이상 근무 보장’ 공고를 보고 대구의 한 식당에 아르바이트로 취업했는데, 이틀 만에 문자메시지로 해고됐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이틀치 임금도 떼였다.
청소년쉼터에서 홀로 자립을 준비하는 A씨에게 알바는 단순한 ‘용돈 벌이’가 아닌 ‘생계 버팀목’이었다. 사장은 이틀치 임금이라도 달라는 A씨의 연락을 무시했다. A씨는 답답한 마음에 쉼터 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고, 쉼터 선생님은 대구청소년자립지원관이 운영하는 대구청소년근로보호센터를 연결해줬다.
센터의 도움으로 A씨는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적은 돈이었지만 A씨에게 의미는 컸다. 그는 일자리를 구할 때도 조건과 계약내용을 꼼꼼히 따져 보게 됐다. 지난달 27일 대구 남구 대구청소년자립지원관에서 만난 A씨는 “청소년들은 최저시급을 못 받아도 해고당할까 무서워 항의하지 못하고, 사장들은 어리다는 이유로 막 대한다”며 “상담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A씨는 현재 다른 일을 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A씨에게 큰 도움을 준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사업이 내년부터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여성가족부가 올해 12억7300만원이던 관련 예산을 내년 ‘전액 삭감’한 탓이다. 당사자들과 현장 관계자들은 예산 삭감으로 청소년 노동자들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말로는 ‘약자 복지’를 위한다는 정부가 진짜 ‘약자 복지’는 축소·폐지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해도 말 못하는’ 청소년들, 그들을 도운 건…
청소년은 대표적인 ‘노동 약자’다. 여가부의 ‘2022년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를 보면, 노동을 해 본 청소년 29.5%는 ‘부당 처우’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12.6%는 최저시급도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일터에서의 위계, 노동 관련 지식·경험 부족 등으로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사업은 ‘당해도 말 못하는’ 청소년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 성희롱·성폭력, 부당노동행위 등 각종 부당 처우를 당한 이들에게 상담을 제공한다. 2022년 전국 17곳까지 확대된 상담센터들은 2018년부터 2023년 7월까지 총 26만9015건의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사들은 직접 개입이 필요한 경우 일터를 찾아 사건을 중재하거나 노동관서·수사기관을 연계해주기도 한다. A씨를 도운 대구청소년근로보호센터 정종진 상담사도 상담과 현장 중재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정 상담사는 A씨를 만나 “임금체불을 신고하려면 급여 입금과 관련된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안내했다. A씨는 조언에 따라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일한 기간이 3개월 미만이라 부당해고는 해당되지 않았지만, 근로계약서 미작성과 보건증 미발급은 문제 소지가 분명했다. 정 상담사는 각 사례에 해당하는 법률과 의미를 A씨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정 상담사의 역할은 법·제도적 조언에만 그치지 않았다. 정 상담사는 A씨가 “사장에게 사과를 받고 강하게 경고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A씨도 “상담 선생님들이 바쁘신데도 쉼터로 와 주셔서 믿음이 갔다”고 했다. 정 상담사는 A씨가 일한 식당을 찾아 사장과 중재에 나섰고, 사장은 잘못을 인정하고 임금을 지급했다. A씨가 신고를 원치 않아 실제 신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A씨 사례처럼 청소년들이 마음을 열고 상담할 수 있는 게 청소년근로보호센터의 장점이다. 청소년들에게 노무사나 노동청·수사기관은 멀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오랜 기간 청소년들을 상대해 온 상담사들은 다가가기 편한 경우가 많다.
이준기 대구청소년자립지원관 관장은 “당사자가 법을 잘 모르는데 노동청은 너무 멀고, 지역에 센터가 있으니 편하게 물어볼 수 있다”며 “근거리에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안도감을 줄 것”이라고 했다.
제도가 외면한 아이들 품어왔는데…‘전액 삭감’이라니
청소년 노동자는 일터에서도, 법·제도의 보호에서도 소외돼 있다. 정 상담사는 “청소년 노동자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이 관장은 “청소년 노동자가 소모적인 존재로 쓰이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사회는 이들의 문제를 복지의 영역도 교육의 영역도 아닌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하고, 사적인 시스템 안에서 피해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된다”고 했다.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상담은 이 같은 ‘사각지대’를 메꿔 왔다. 이 관장은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상담 사업에 대해 “인생에서 처음 겪게 되는 사회적 좌절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어른들의 거짓말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지지자”라고 설명했다. 청소년 노동권 인식이 비교적 낮은 비수도권에서는 센터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 A씨는 “최저임금보다 적게 주거나 돈을 안 주고 추가근무를 시키는 건 이 지역에서 일상”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예산 ‘전액 삭감’은 청소년 노동자 보호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관장은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는 이들은 최소한의 노동권은 보장받고 있으니, 노동권 침해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민감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며 “어린 이들의 노동권도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했다.
사업이 막 현장에 안착하는 단계에서 예산이 삭감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과거 이 사업을 담당하던 법인이 비위 문제로 물러난 뒤 2022년 10월부터 현재 센터들이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센터들과 과거 비위 법인은 별개인데도, 여가부는 ‘보조금 부정수급’을 이유로 들며 예산을 삭감했다. 여가부는 ‘고용노동부에 유사 사업이 있다’고 했지만 정작 노동부의 해당 사업 예산은 여가부가 삭감한 만큼 증액되기는커녕 일부 줄었다.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평가도 없이 얼마 안 되는 예산조차 삭감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관장은 “청소년 노동권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있는 대화가 필요하다”며 “이제 국회의원들의 역할이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일하는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갖고 보호에 나서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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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노동권이 곳곳에서 위기입니다. 정부는 ‘청소년근로보호센터’ 예산을 전액 삭감했고, 학교에서 노동을 배울 권리도 박탈하려 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대표적인 ‘노동 약자’인 청소년 노동자들의 노동권 침해 문제를 꾸준히 보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과 맥락을 아래 기사들에서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