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밥상이 없죠? 오늘 밥상을 선물로 가져왔어요.”
“감사해요. 나이스.”
지난 5일 오후 6시 경기 포천의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숙소. 김달성 목사가 포장을 뜯지 않은 새 양은 밥상을 건네자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우옹(가명)이 활짝 웃었다. 밥상 앞으로 우옹과 김 목사, 한국인 여성 청년 5명이 둘러앉았다. 이날 우옹의 방에선 김 목사가 운영하는 포천이주노동자센터가 기획한 ‘밥상 코이노니아(협동의 그리스어)’가 열렸다. 센터는 매달 이주노동자와 한국 사람이 함께 식사하는 모임을 갖는데, 이날은 식당 대신 우옹의 숙소에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5명이 초대받았다.
밥상 위로 저마다 준비한 김밥과 시루떡, 햄버거가 차려졌다. “밥상이 없을 땐 어떻게 식사했어요?” 난설헌씨가 묻자 우옹은 바닥에 수그려 밥 먹는 시늉을 하며 “익숙하다”고 했다. “아이고 숙여서 먹으면 배 아플텐데. 저도 사실 그렇게 먹어요.” 이날 처음 만난 우옹과 청년들은 한국살이의 공통점을 찾아갔다.
우옹은 고국에 초등학생 아들과 딸을 두고 지난해 8월 한국행을 택했다. 캄보디아에서 친척이 운영하는 식당의 요리사로 일하던 우옹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한국행을 택했다. 지금은 포천의 채소 농장에서 매일 10시간씩 쪼그려 앉아 열무를 수확한다. “우리나라 캄보디아도 더워요. 그런데 비닐하우스는 더 더워요. 겨울에는 비닐하우스 위에 눈이 있어요.” 우옹은 지난 여름에는 비닐하우스 안이 45도까지 올라 너무 더웠고, 지난해 겨울에는 비닐하우스 숙소 위로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리고 추웠다고 했다.
한 달 중 우옹에게 주어지는 휴일은 3일이다. 쉬는 날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우옹은 곧장 “잠”이라고 답했다. 우옹이 잠을 자는 숙소는 열무 비닐하우스에서 10걸음 남짓 떨어져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 컨테이너 숙소가 있다. 우옹과 다른 이주노동자 3명은 숙소 내 각자 방에서 생활한다고 했다. 방에 창문이 있지만 비닐에 둘러쌓인 탓에 햇빛이나 바람이 들지 않아 검은 곰팡이가 슬어있었다. 하나 있는 간이식 화장실은 숙소 밖에 있다. 우옹은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밤에 배가 아프면 밖에 간다”고 했다.
우옹의 숙소는 ‘속헹 사건’ 이후에도 불법 비닐하우스 건축물이 여전히 이주노동자 숙소로 쓰이는 실태를 보여준다. 2020년 12월 한파 경보가 내린 날,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은 꼭 우옹의 방처럼 생긴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용노동부는 2021년부터 불법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신규 고용허가를 불허하기로 했지만 지난해 8월 한국에 온 우옹의 숙소는 여전히 3년 전 불법 숙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날 둘러본 인근의 4개 농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검은 천이 둘러진 불법 비닐하우스 숙소들에서 불빛이나 안테나 등 인기척이 확인됐다.
우옹은 속헹 사건을 알고 있지만, 현재 숙소에 지내는 것에 대해 “돈을 벌 수 있으면 괜찮다”고 했다. 그는 쉬는시간 없이 폭염 속에서 일하는 것도, 아이들이 보고 싶은 것도 모두 “괜찮다”며 “아들과 딸을 책임져야 한다.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옹은 농장주가 임금에서 기숙사비로 공제되는 15만원이 적합한지, 옆방에 사는 노동자는 왜 기숙사비를 공제받지 않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날 우옹을 만난 이들은 “숙소의 열악함을 인식하는 동시에 우옹이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일구는 모습을 보며 동료시민으로서 동질감을 느꼈다”고 했다.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대표는 “이주노동자가 문제제기하지 않는 것을 핑계로 열악한 주거환경을 방치하는 사회는 무책임하다”며 “이주노동자들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 원인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다 이에 저항할 수 있도록 연대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