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냐?” 디지털성범죄 상처 헤집는 2차피해···가장 힘 된 말은

조해람 기자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상담기록 전수분석

일상 무너지고 건강 해쳐…2차피해 심각

피해자 대다수, 직접 일상회복 노력 나서

2019년 3월21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국여성연합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버닝썬 관련 공권력 유착 진상규명과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2019년 3월21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국여성연합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버닝썬 관련 공권력 유착 진상규명과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10명 중 7~8명은 일상생활에서 단절을 경험하고, 심각한 2차 피해에도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절대다수는 신체·정신적 어려움과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피해자들은 그런데도 스스로 일상 회복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네 탓이 아니다”라는 말에 가장 큰 힘을 얻었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개소 후 5년 동안 센터를 찾은 피해자 1만3590명의 상담일지를 전수 분석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상담지원 현황 및 피해지원 욕구조사 보고서’를 7일 발표했다,

연도별 신규 피해자는 2018년 983명, 2019년 1061명에서 2020명 3256명으로 급증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등으로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의 수도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2021년 4016명, 2022년 4274명으로 계속 늘었다. 피해자는 여성이 72.4%(9835명)으로 남성(27.6%·3755명)보다 2.6배 많았다. 피해 유형은 불법촬영(26.8%), 비동의 유포(18.7%), 몸캠피싱(18.0%), 아동·청소년 성착취(12.2%) 등 순이었다.

진흥원이 피해 실태를 더 파악하기 위해 피해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피해자 74.0%는 일상생활의 복합적인 변화·단절을 경험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임시도피(67.6%), 이사(62.2%), 직장퇴사(60.8%), 이직·전학(43.2%), 학업중단(27.0%) 등을 겪었다.

피해자 88.0%는 2차 피해를 경험했다. 주변 지인이 피해 영상물을 보고 “이거 너 아니냐” “신고해야 할 것 같다” “모르고 있을까 봐 알려준다” 등 내용으로 연락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진흥원은 “지인의 연락으로 2차 피해를 경험한 피해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사회적 활동을 중단하는 경우가 가장 빈번했다”고 했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왜 찍었냐” “꼭 신고해야겠냐” 등 말을 듣는 등 수사·사법기관의 2차 피해도 심각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에게 힘이 된 말’ 텍스트분석도구 분석 결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상담지원 현황 및 피해지원 욕구조사 보고서> 발췌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에게 힘이 된 말’ 텍스트분석도구 분석 결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상담지원 현황 및 피해지원 욕구조사 보고서> 발췌

피해자 92.0%는 사적 영역에서, 93.0%는 공적 영역에서 회복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피해자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생활 점수(10점 만점)는 피해 인지 시점(2.36점)보다 현재(5.10점)가 더 나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의 응답을 텍스트분석도구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피해자에게 가장 힘이 된 말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였다. 이어서 “혼자 힘들어하지 말아요, 언제든지 연락해요” “괜찮아, 내가 옆에 있어 줄게” “계속 모니터링하고 삭제 지원할 거예요” “피해 상황에 혼자 두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할게요” “가해자는 언제든지 잡힌다” “건강 회복에 더 힘써주면 좋겠다” 등이 있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해 강화해야 할 것에 관해 묻자 ‘처벌’ ‘삭제’ ‘지원’ ‘강력한’ ‘가해자’ 등 단어가 가장 많이 쓰였다.

진흥원은 “피해자들의 욕구에 기반한 실질적 피해 회복과 피해 촬영물 삭제, 가해자 처벌, 2차 피해 방지, 피해자 지원제도 확대와 피해지원 강화가 필요하다”며 “피해자 보호 및 피해지원 강화를 위해서는 피해지원 관계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진흥원은 이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 문화, 성착취물 시청을 허용하는 문화도 디지털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데 크게 작용해 왔다”며 “찍지 않고 보지 않는 것이 보편적 상식이라는 데 대한 국민적 합의와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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