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흔들릴 줄 몰라 겪는 고초”···해병대 전우들이 말하는 ‘인간 박정훈’

전지현 기자
경북 포항에 있는 해병대 1사단 23대대 10중대 2소대에서 1996~1997년 함께 근무한 박정훈 당시 소대장과 박남희 당시 소대장 전령의 사진. 박남희씨 제공

경북 포항에 있는 해병대 1사단 23대대 10중대 2소대에서 1996~1997년 함께 근무한 박정훈 당시 소대장과 박남희 당시 소대장 전령의 사진. 박남희씨 제공

박남희씨(47)는 지난 8월 뉴스를 보다가 눈을 의심했다. 27년 전 상관의 얼굴과 이름 옆에 ‘집단항명수괴 혐의’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그날 박씨는 7월 경북 예천에서 집중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고 채모 상병 사건을 수사하던 이가 자신의 군 시절 박정훈 소대장이었음을 알게 됐다.

박씨는 자신의 전 상관이 윗선의 이첩 보류 지시 명령에도 불구하고 임성근 해병1사단장 등 지휘관 8명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기재한 조사결과 보고서를 민간경찰에 이첩했고, 끝내 보직 해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곧장 “우리 소대장이 틀린 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하는 생각과 “예전에도 올곧이 서 있을 줄만 알더니 여전히 바람이 불 때도 흔들릴 줄 모르는구나. 그래서 고초를 겪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 했다.

항명·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대령에 대한 군사재판은 현재 진행형이다. 상명하복이 철칙인 군에서 ‘항명’이라는 무거운 혐의를 받고 있는 박 대령에게 해병대 전우들은 응원을 보내고 있다. 경향신문이 12일 만난 해병대 전우들은 “박정훈을 겪어 봤다면 그의 명예 회복을 바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해병대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다정한 원칙주의자’로 박 대령을 기억했다.

“우리 소대장, 사람 진짜 괜찮았지”

박씨와 박 대령의 인연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경북 포항에 있는 해병대 1사단 23대대 10중대 2소대에서 만났다. 박 대령은 갓 임관해 부임한 소대장이었고, 박씨는 그의 전령이었다. 그해 9월 강원도 강릉에서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다. 박씨는 자신의 소대 또한 5분대기를 하거나 해안 방어 작전에 참여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했다.

박씨는 박 대령을 두고 “그렇게 바쁠 때도 우리 소대장은 뒤에 빠져 있거나 하는 적이 없었다”고 했다. 훈련에서 실수한 병사에겐 정신이 번쩍 들게 혼을 내고, 뒤에서는 ‘왜 혼을 낼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던 이가 박 대령이었다고 한다. 그는 “소대장님은 잘못한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며 “공명정대하고 솔선수범하는 지휘관이라 늘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는 제대 후에도 이어온 중대·소대 모임에서 ‘박정훈 소대장’이 자주 회자된다고 했다. 박씨는 “우리 소대장 사람 진짜 괜찮았다는 얘기를 아직도 한다”고 했다.

박정훈 대령의 1996~1997년 소대장 시절 사진. 박남희씨 제공

박정훈 대령의 1996~1997년 소대장 시절 사진. 박남희씨 제공

박 대령의 그림자 때문에 고충을 토로한 이도 있었다. 박 대령의 뒤를 이어 1997년 10월 후임 소대장으로 갔다는 해병대사관 83기 김도일씨(48)는 “여기저기서 ‘박정훈이 그립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고 했다. 초임 시절 비교를 많이 당했다는 그는 “솔직히 질투도 많이 났다”며 웃었다.

김씨는 박 대령이 남겨두고 간 서류들을 되짚으며 그를 인정하게 됐다. 그는 “전임 소대장이 작성한 훈련계획을 참조해야 했는데, 박정훈이란 이름이 적힌 자료마다 계획 정리가 꼼꼼하고 빈틈이 없었다”고 했다.

갓 소위를 달고 힘들었던 시절 김씨는 박 대령을 한 번 직접 만났다. 김씨는 박 대령이 “김도일 고생 많지. 원래 이때가 힘들 때다”라며 등을 두드려줬던 것을 기억했다. 후임들에게 엄한 이들이 많은 해병대에서 겪어본 적 없는 다정한 격려였다. 김씨는 “부하들에게 절대 언성을 안 높였다 하던데, 만나보니 왜 다들 좋아하는지 알겠더라”고 했다.

20여년이 흘렀지만, 김씨는 TV에서 박 대령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를 알아봤다. 김씨는 “일각에서는 정치적 야심 얘길 하지만, 그건 박 대령을 모르는 소리”라며 “전투병과가 아닌 헌병(현 군사경찰)은 별을 달 일도 많지 않다. 그 와중에 병과장까지 한 사람인데, 그 선배가 뭐가 아쉬워서 그러겠나”라고 했다.

“거짓말이나 빈말을 하지 못하는 성정”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보직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과 변호인이 지난 9월5일 서울 국방부 검찰단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보직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과 변호인이 지난 9월5일 서울 국방부 검찰단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박 대령은 헌병 병과로 군사경찰 임무를 수행할 때도 ‘원칙과 인품’을 두루 갖췄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경기 화성 해병대 헌병단에서 함께 근무했다는 예비역 부사관 A씨는 ‘항명’이라는 혐의를 듣자마자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다”고 했다. 2003년부터 박 대령과 연을 이어온 A씨는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저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는데?”였다.

A씨에게 박 대령은 나이는 더 어리지만 직급상 상급자이며 ‘존경할 구석이 많은 동생’이었다. 회의에서 박 대령의 회의 태도가 특히 인상 깊었다고 했다. A씨는 “법을 전공한 만큼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짚으며 말하는 타입”이라며 “회의할 때 소리를 지르거나 성질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박 대령이 “진실하게 일하며, 법대로 집행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이번 사태가 더 안타깝다고 했다. A씨는 멀리서 박 대령의 명예회복을 바란다. 그는 “군인은 명예로 먹고사는 사람 아닌가. 명예롭게 퇴직했으면 좋겠고, 그 뒤에 예전처럼 소주나 한 잔 하고 싶다”고 했다.

고 채수근 상병 죽음의 진상 규명과 박정훈 대령의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지난 11월5일 경기도 안양 인덕원에서 행진을 시작해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부근에 도착한 해병대사관 81기 동기회 등 해병대 예비역들이 시민들로부터 받은 서명을 붙인 후 해병대 노래를 부르고 있다. 김창길 기자

고 채수근 상병 죽음의 진상 규명과 박정훈 대령의 명예회복을 촉구하며 지난 11월5일 경기도 안양 인덕원에서 행진을 시작해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부근에 도착한 해병대사관 81기 동기회 등 해병대 예비역들이 시민들로부터 받은 서명을 붙인 후 해병대 노래를 부르고 있다. 김창길 기자

30대인 예비역 장교 B씨도 박 대령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를 보탰다. 그는 박 대령을 “한없이 다정한 인생 선배”라고 표현한다. 그는 박 대령이 해병대 군사경찰단(현 해병대사령부 수사단)의 수사과장으로 재직할 때 그를 상관으로 모셨다.

수년간 그가 본 박 대령은 항상 새벽 일찍, 같은 시간에 출근해 자신이 정한 시간표에 따라 업무를 하는 상관이었다. B씨는 “시계처럼 정확한 사람”이라고 했다. 형사소송법·형사법에 해박했고, 업무지시가 구체적이어서 장교로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고 했다.

20년 이상 경력 차이가 나는 후배인 B씨를 박 대령은 늘 따듯하게 대했다고 한다. B씨는 “개인적으로 방황하던 시기에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너무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많이 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셨다”며 “대령님을 만나 군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거짓말이나 빈말을 하지 못하는, 말을 꾸미거나 세를 불리는 것에 관심이 전혀 없는 박 대령의 성정을 확신했다. B씨는 “(박 대령은) 누구보다 군과 해병대를 사랑하고, 수사에 있어 정직하고 올바른 임무수행을 강조하시던 분”이라며 “본인의 수사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 것도 아니고, 이첩하지 말라는 장관의 명령을 어겼다는 것으로 고초를 겪으시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동기들이 그의 곁을 지키는 이유

올여름 집중호우 피해자 수색 중 순직한 고(故) 채모 상병 사고 초동조사를 담당했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군사법원의 재판이 시작된 지난 7일 박정훈 대령이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올여름 집중호우 피해자 수색 중 순직한 고(故) 채모 상병 사고 초동조사를 담당했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군사법원의 재판이 시작된 지난 7일 박정훈 대령이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현재 박 대령의 곁은 해병대사관 81기(OCS 90차) 동기들이 지키고 있다. 수사기관이나 법정에 출석할 때마다 빨간색 해병대 티셔츠를 입은 동기들은 군가 ‘팔각모 사나이’를 부르며 응원을 보낸다.

박 대령의 동기 C씨(50)는 요즘 1996년 함께 6개월을 동고동락하던 때를 자주 떠올린다고 했다. 그는 “저희 81기생들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분명히 배웠다”며 “허위보고를 하면 절대 안된다고 엄청나게 교육을 받았는데, 박 대령이 처한 상황을 보면 그 순간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해병대사관 81기 동기들은 박 대령을 두고 “굳이 단점을 찾자면 융통성 없는 게 유일한 단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 대령은 처음 군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동기들로부터 ‘융통성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요령 없이 원칙을 지키던 군인이었다고 한다. 얼차려를 많이 주는 교관을 두고 험담을 하고 있으면 박 대령이 ‘훈련의 연속 아니냐. 우리가 그런 걸 가지고 뭐라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식이었다. C씨는 “그런 사람이 항명이라니,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것”이라고 했다.

올여름 집중호우 피해자 수색 중 순직한 고(故) 채모 상병 사고 초동조사를 담당했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군사법원의 재판이 시작된 지난 7일 박정훈 대령이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올여름 집중호우 피해자 수색 중 순직한 고(故) 채모 상병 사고 초동조사를 담당했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군사법원의 재판이 시작된 지난 7일 박정훈 대령이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박 대령은 지난 7일 항명·상관 명예훼손 사건 첫 공판에서 “20년간 해병대 생활을 하면서 상관 명령에 절대 충성했고 올바른 길을 가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군사경찰 최고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동안 상관 명령을 거부하고 불복했다면 어떻게 군사경찰 병과장이 되었겠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재판은 한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 군인의 명예뿐 아니라 사법 체계의 신뢰가 달린 중차대한 재판임을 고려하셔서 부디 사안의 본질을 살펴주시길 간곡히 청한다”고 했다.

이 공판에도 김태성 해병대사관 81기 동기회장 등 동기들이 자리했다. 김 회장은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나서는 것인지’라는 질문을 주변에서 자주 듣는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동기니까 나서는 것이냐’라고 묻는데 그뿐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박 대령과 이전까지 서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소수 인원인 헌병(현 군사경찰) 병과를 택한 박 대령과 교육 기간 이후 함께 근무한 동기도 거의 없었다.

김 회장은 채 상병 죽음의 원인이 밝혀지는 것, 그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려 했던 박 대령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라는 믿기에 동기들이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박정훈의 말이 옳다는 증거는 넉 달 동안 계속 나왔지만, 아니라는 증거는 나오지 않더라”며 “긴 싸움이 될 테지만, 우리 동기회는 끝까지 정훈이의 곁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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