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동향 분석 프로그램, 남초 커뮤니티에 치중
특정 게시물 캐시 지급…여론 형성 관여 가능성도
넥슨이 ‘남혐 집게손가락 음모론’을 믿게 된 배경에 편향적인 여론 동향 분석 방식이 있다는 내부자 증언이 나왔다. 넥슨이 운영하는 분석 프로그램이 남초 커뮤니티 여론에 상당 부분 의존하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다. 넥슨은 커뮤니티 여론을 수집할 뿐만 아니라 특정 게시물에 캐시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여론 형성에 관여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14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넥슨은 수년 전부터 여론 분석 프로그램 ‘유저보이스’를 이용해 커뮤니티 여론을 실시간 분석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유저보이스는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을 평균 7분 간격으로 크롤잉(데이터 추출)한 뒤, 해당 게시물이 넥슨 게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지 판단하는 프로그램이다. 부정 동향이 늘어날 경우 관계자에게 “부정 동향 급증 알림” 메일이 발송되는 식이다.
유저보이스는 게임뿐만 아니라 특정 키워드에 대한 여론도 평가할 수 있다. 예컨대 ‘페미니즘’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각 커뮤니티가 해당 단어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데이터를 추출한 뒤 긍정과 부정 평가를 내린다. 넥슨은 유저들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별도의 단어 사전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유저보이스의 모니터링이 디시인사이드 등 남초 성향 커뮤니티에 치중돼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여초 커뮤니티는 회원가입을 해야 게시물을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아 크롤링이 쉽지 않다는 게 유저보이스 업무에 관여한 한 인사의 설명이다. 넥슨 전 직원 A씨도 “주로 남초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다 보니 남성들의 의견이 과대 대표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한쪽 목소리를 크게 듣다 보니 여러 오판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넥슨은 2016년 성우 해고 사태 때도 같은 방식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여론이 반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취지의 분석보고서를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넥슨 경영진은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페미니즘 지지 티셔츠 인증 사진을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김자연 성우를 교체했다. 이번 집게손가락 음모론 사태 역시 같은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고 이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넥슨이 여론 동향을 관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론 형성에 관여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넥슨은 지난 2월부터 ‘넥슨 콘텐츠 리워드 프로그램(CRP)’을 운영 중이다. 커뮤니티 게시물 중 우수하다고 자체 평가를 내린 게시물에 넥슨 캐시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우수의 경우는 10만 캐시, 매우 우수의 경우엔 30만 캐시가 지급된다. 선정된 대상자는 별도로 공개되지 않고, 넥슨 쪽지나 커뮤니티 쪽지를 통해 개인적으로 넥슨의 연락을 받게 된다.
CRP 대상자 선정 기준은 고정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추천 수, 텍스트 수, 영상 포함, 이미지 개수 등 정량적인 수치를 참고하지만, 넥슨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내용이 담겼는지 등 정성적인 평가도 포함된다고 한다. 넥슨은 우호적인 CRP 대상자 정보를 관리하는 시스템도 개발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CRP 운영에 관여했던 관계자는 “결국 넥슨에 우호적인 게시물에 돈을 주는 것”이라며 “외부에서 보기엔 넥슨이 (여론몰이를 한다는 점에서)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넥슨 측은 “집게손가락 사태와 관련해 유저보이스를 참고한 것은 맞다”면서도 “유저보이스 프로그램은 게임 연관 키워드를 중심으로 웹사이트를 크롤링하는 것으로 특정 커뮤니티만을 표집하지 않고, 당시에 해당 동향은 다양한 사이트를 중심으로 2만 건 이상의 동향을 확인해 편향된 데이터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모니터링 중인 커뮤니티 목록을 공개할 수 있냐는 질문엔 “내부 시스템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해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또 CRP에 대해선 “자사의 IP 관련 이용자들의 활발한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자 마련된 프로그램으로 해당 이슈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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