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온몸으로 묻는다, 아이들은 왜 죽었는지

전지현 기자

이태원 유가족 언 땅서 오체투지

“우리 외침이 이렇게 묵살될지 몰랐다”

영하 11도 강추위 속 유가족·종교계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촉구하며 행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소속 활동가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촉구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23.12.18 한수빈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소속 활동가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촉구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23.12.18 한수빈 기자

무릎을 꿇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이마에는 돌가루가, 무릎에는 시든 솔잎이 얼기설기 묻었다.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1도를 기록한 강추위 속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시민대책회의와 4대 종교계가 18일 오체투지 행진에 나섰다. 오체투지는 두 무릎과 두 팔꿈치, 이마 등 신체 5곳을 땅에 대며 온몸으로 절을 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들은 오는 20일 열리는 12월 임시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켜 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 이날 10여명의 유가족을 포함한 30여명의 종교계 관계자 및 시민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담장을 따라 2.5㎞를 오체투지하며 나아갔다. 10·29를 의미하는 오전 10시29분 기자회견을 시작한 후 국회 앞 농성장에서 출발한 이들이 다시 농성장에 되돌아오기까지는 꼬박 2시간30분이 걸렸다.

희생자 이승연씨의 어머니 염미숙씨는 기자회견에서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별이 된 지 416일째”라며 “찬 바람을 맞고 서 있으니 작년 녹사평대로 한가운데서의 49재가 생각난다”고 했다. 이어 “그땐 이렇게 싸움이 길어질 줄, 외침이 오래 묵살될 줄 몰랐다”고 했다.

찬 바람 맞고 서 있으니
녹사평대로 49재 생각나
특별법에 ‘진상규명’을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골자는 참사 발생 원인·수습 과정·후속 조치 등에 대해 독립적으로 진상규명 조사를 벌이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이다. 특별법은 지난 6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 4당의 주도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다. 지난 8월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지만 여당인 국민의힘 측 반발로 법사위에서는 90일간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했다.

최근 국민의힘은 진상조사를 빼는 대신 피해자 보상에 초점을 맞춘 독자적인 특별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이를 반대한다. 염씨는 “보상을 받고자 하는 게 아니라 이태원에서 아이들이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가 궁금할 뿐”이라며 “진상규명을 뺀 특별법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이정민 유가협 운영위원장은 “우리 유가족은 독립적 조사기구가 진상을 규명해주길 바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오고 있다”며 “20일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켜달라”고 했다.

18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및 4대 종교계 활동가들이 빙판길에서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전지현 기자

18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및 4대 종교계 활동가들이 빙판길에서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전지현 기자

무릎 보호대를 찬 유가족들은 점프슈트와 우비 등 차림으로 칼바람을 맞으며 북소리에 맞춰 오체투지를 진행했다. 보도블록길, 횡단보도, 빙판길에 몸을 누인 이들에게선 한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희생자 김정훈씨(사망 당시 32세)의 아버지 김순신씨(61)는 “한 번도 오체투지를 해보지 않아 몸에 무리가 가는지도 모르겠다”며 “참사가 자꾸만 잊히는 것 같다. 하루빨리 진상조사 위원회가 꾸려지기 바란다”고 했다.

떠난 아이들 생각하면
가족들 하나도 안 힘들어
아이가 울 것 같아 아파

강가희씨(사망 당시 25세)의 어머니 이숙자씨(53)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고개를 90도로 숙이는 것(반절)으로 행진에 참여했다. 지난해 10월29일 오후 8시30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강씨가 친구들과 해맑게 찍은 사진 한 장은 이씨의 마음을 때마다 미어지게 한다. 행진 도중 눈물을 보인 그는 “항상 아이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며 산다”며 “엄마들이 이렇게 하는 걸 보고 아이가 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18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및 4대 종교계 활동가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5문 앞에서 “이태원 특별법을 즉각 제정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지현 기자

18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및 4대 종교계 활동가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5문 앞에서 “이태원 특별법을 즉각 제정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지현 기자

오체투지로 국회 주위를 돌던 이들은 국회 본청이 가깝게 보이는 국회5문 앞과 의원회관·소통관이 보이는 국회3문 앞에서 잠시 멈춰 “이태원 특별법을 즉각 제정하라!” “윤석열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물러가라!”고 외쳤다. 국회를 한 바퀴 둘러 오후 1시20분쯤 출발지인 국회 앞 농성장으로 되돌아온 유가족들의 이마엔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희생자 오지민씨 아버지 오일석씨는 행진을 마치고 “작년 10월29일 찬 바닥에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생각하면 저희 가족들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이들은 본회의가 열리는 20일까지 매일 같은 시각 오체투지 행진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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