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에 갇힌, 그날의 진실

“참사의 구조적 원인 못밝혀”···이태원 독립조사기구 필요한 이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소속 활동가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촉구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소속 활동가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촉구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세월호 사례에서 이미 경험했듯이 참사를 이용한 불필요한 정쟁과 많은 소모적 논쟁이 있었지만 새로운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만희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지난 12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진상규명 대신 피해자 보상에 초점을 맞춘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발의하며 이같이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특별조사위원회부터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까지 조사가 8년간 이어졌으나 새롭게 밝혀낸 것이 없었으니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도 무의미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세월호 조사기구들이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뚜렷하게 한 가지로 결론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9월 활동을 종료한 사참위는 최종보고서에 ‘내인설’과 ‘외력 충돌 가능성’을 모두 담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참위 등 조사기구가 ‘아무것도 밝히지 못했다’는 것은 팩트가 아니다.

사참위 보고서를 보면 사참위는 참사의 구조적인 원인을 조사해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선원들의 낮은 임금 수준이 여객선 안전운항의 저해 요소로 작용해 승객 안전을 위협한다’며 선사의 구조적 운항능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연안여객선 안전공영제 도입을 권고하는 식이다. 처벌이 목적인 수사로는 파악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분석해 개선방안을 도출한 것이다.

사참위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유사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양재난 수색구조 체계를 개선할 것, 선사·선원의 안전 운항 능력과 책임을 강화할 것 등 12가지 권고사항을 명시했다. 재난 피해자의 인권침해 및 혐오표현 확산 방지를 위한 대책 등 참사 이후 대응에 관한 권고도 있다.

재난조사 전문가들은 참사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선 사회에 잠재된 제도적 모순을 찾아내야 하는데, 이는 ‘수사 아닌 조사’를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진행된 이태원 수사는 여러 기관을 압수수색하며 마치 모든 책임자를 수사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왜 예방·대비·대응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구조적 문제는 없었는지는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처벌이 목적인 수사는 ‘위법성’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희천 전 사참위 피해지원국장은 “수사는 법적 처벌을 목적으로 하므로 입증 가능한 범죄가 아니면 간과되기 마련”이라며 “현장 실무자가 위험을 인지했는데 보고 과정에서 간과한 것인지 아니면 현장에서 아무 위험을 못 느낀 것인지 구체적인 문제를 확인해야 개선할 수 있는데 현재로선 참사 당일 현장에 있던 실무자들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세월호 특별법 논의와 조사기구에 참여했던 이들은 이태원 참사 조사가 세월호 조사의 시행착오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세월호 조사기구는 내부 위원 사이의 갈등으로 조사 방향을 통일하지 못했고, 침몰 원인에 대해 단일 결론을 내놓지도 못했다. 결과적으로 3개 조사위가 활동하고도 ‘아무것도 밝히지 못한’ 채 정치적 싸움에 이용됐다는 비난도 받았다.

박상은 전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은 “세월호 조사위가 결론을 제대로 내지 못한 것은 ‘진상규명을 통한 처벌’과 ‘처벌을 위한 진상규명’을 구분하지 못하고 높은 처벌 열망에 결론을 끼워 맞추려고 했던 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참위에 의견을 개진했던 이기중 정의당 전 부대표는 “세월호 특조위는 처벌에 중점을 두고 진행돼 누적된 시스템의 문제를 소홀하게 다뤘다”며 “재발방지책에 초점을 맞춰야지, 형사처벌이 제1의 목표가 돼선 안 된다”고 했다.

박 전 조사관은 “처벌을 위한 진상규명이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서사를 남기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며 “위원들과 조사관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조사 관점과 방법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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