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

① 시간이 새겨진, 나이 든 몸

박희수씨가 지난달 서울 중구 경향신문 내 스튜디오에 서서 앞을 응시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박희수씨가 지난달 서울 중구 경향신문 내 스튜디오에 서서 앞을 응시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100세 시대’ 준비를 돕는다는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있지만, 모두 ‘어떻게 해야 한다’는 지침이나 교훈만 있을 뿐, 뭘 하면서 어떻게 늙어가야 한다는 게 없어요. 노년은 저마다 경험에 따라 다른 삶을 살고, 각자 노화를 경험하는 방식이 다른데도 모두 하나로 뭉뚱그려지죠. 노년이 직접 느끼고 감각하는 변화에 대한 경험의 말을 더 경청하고, 여러 조건에 따른 교차적인 분석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김영옥 상임대표의 말이다. 옥희살롱은 나이듦과 젠더, 몸 정체성, 노년 인권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스스로 노년들을 만나며 몸과 마음이 늙어가는 현상에 대해 고민하는 그는 “단순히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몸’이 가치를 지니는 우리 사회에선 내가 70세, 75세에 어떤 존재이고 싶은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서 “사람이 나이 드는 데에도 선행학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후 준비 됐다’ 8%뿐…나이 든 몸 이상과 현실의 괴리

한국은 급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2~2072년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2022년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이 17.4%를 차지했다. 내년이면 고령자 문턱을 넘은 65세 이상이 20%를 초과하고, 2050년에는 4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길에서 마주치는 5명 중 2명이 노인이 된다는 뜻이다.

노인이라서 뭉뚱그려지는 몸…나이 드는 데도 준비가 필요해 [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 ①]

고령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우리는 정작 나이 든 몸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늙은 자신의 몸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방법보다는 노화를 최대한 늦춘다거나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2배 이상 높고, 고용률 역시 높은 현실을 반영한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발표한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어떻게 늙을지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큰 괴리가 드러난다. 지난해 3월 말 기준 전체 가구 중 가구주가 은퇴하지 않은 가구는 83%였고, 이들의 예상 은퇴 연령은 68.1세였다. 이들은 은퇴 후 배우자와 함께 생활하는 데 적정 생활비로 월 324만원이 든다고 했지만, 노후를 위한 준비가 ‘잘되어 있는 가구’는 7.9%에 그쳤다. ‘잘되어 있지 않은 가구’는 53.8%로 조사됐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지금, 특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나이 든 몸 안에서도 편차가 크다는 사실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살아내는 방식은 모두가 다르다. 언제 태어나서, 어디서 살아왔고,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신체 조건을 가졌고, 경제적 능력이 어떠한지 등등 여러 변수와 조건이 오랜 시간 교차하며 저마다 다른 몸을 만들어낸다.

차사룡씨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에서 운동을 마친 후 자택으로 귀가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차사룡씨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에서 운동을 마친 후 자택으로 귀가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1년 펴낸 ‘한국 노인의 삶과 인식 변화’를 보면 노인에 대한 인식은 출생 시점과 노년으로 접어든 시점에 따라 큰 차이를 나타냈다. 예컨대 지금 80~90대인 1930년대생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 때 성인이 됐고, 2000년대 이전에 이미 노년에 접어들어 복지제도의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한 취약한 집단이다.

반면 지금 60대인 1950년대생은 급격한 경제성장기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두루 겪고, 부모와 자녀를 모두 부양한 경험이 있는 세대다. 같은 노년 집단 안에서도 느끼고 경험한 바가 다를 수밖에 없다. 앞으로 교육과 삶의 질에 대한 관심도 높은 베이비부머 집단이 본격적으로 노인 인구로 진입하면, 이들의 다양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여성 관절 퇴행, 남성 고립…나이듦과 함께 오는 불청객

나이 든 몸에서 세대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건 성별에 따른 차이다. 가사와 돌봄 노동에 주로 종사한 여성들은 다양한 직장에서 일한 남성들에 비해 변화를 겪는 신체 부위도, 나이 들어 느끼는 감각도 다르다. 어경옥씨(61)는 “30~40대에는 나도 영원히 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완경 이후 일단 무릎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몸무게가 늘어나고 뱃살도 계속 쪘다”고 회고했다.

어씨는 여성이 하는 일과 남성이 하는 일이 확연히 구분되던 시대를 살아왔다. 집안일을 모두 아들 대신 딸이 했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오롯이 엄마나 아내의 몫이었다. 그는 “아기를 매일 안고 업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10㎏짜리 쌀 포대를 들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면서 “그런 것들이 다 몸에 영향을 미치는 거였는데, 예전엔 미처 몰랐다”고 했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대표적 노인성 질환인 퇴행성 관절염 환자의 70% 정도가 여성이다. 애초에 여성이 남성에 비해 무릎 주위 근육이 적은 데다, 폐경기 이후 여성호르몬 분비가 급감하며 연골이 약해지는 탓이다.

한 노인이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 노인이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반면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고립 문제를 더 심각하게 겪는다. 여성들은 노인일자리 사업 등에서 남성보다 참여율이 높은데, 남성들은 나이가 들면 사회활동이 줄면서 고립된다. 박을남씨(63)는 서울 중랑구가 자원하는 ‘건강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년층이 지역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도록 함께 걷기 운동을 진행하고, 방문 간호사 등과 함께 맞춤형 건강 관리를 돕는 일종의 ‘노노 돌봄’ 역할이다. 그는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여성들이다. 남성은 부부가 함께 다니지 않는 이상 외출을 잘 안하고, 하더라도 잠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박승희 성균관대 교수는 “나이 든 몸이라고 다 같지 않다. 무조건 나이로만 나눠선 안되고 몸을 실제로 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재 복지 시스템은 연령, 장애나 질병 여부에 따라 나눈다. 몸 안에서도 차별을 두는 것”이라면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인간다운 최저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보장 시스템을 갖춰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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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 기획팀
김경학·김정화·박하얀(스포트라이트부), 성동훈·조태형(사진부), 양다영·백준서(뉴콘텐츠팀), 이수민(데이터저널리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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