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

① 시간이 새겨진, 나이 든 몸

젊은 예술가들이 모인 프로젝트 그룹 ‘이야기청’이 지난해 서울 성북구 오동숲속도서관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진행한 참여형 전시 ‘주름의 숲’ 모습. 성북문화재단 제공

젊은 예술가들이 모인 프로젝트 그룹 ‘이야기청’이 지난해 서울 성북구 오동숲속도서관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진행한 참여형 전시 ‘주름의 숲’ 모습. 성북문화재단 제공

“평소에도 사람의 주름에 관심이 많은데, 어르신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꼭 몸이 인생의 장면을 기억하기 위해 스스로 주름이라는 형태로 기록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보다 많은 선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깊게 관찰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조주혜 작가(30)는 최근 젊은 예술가들이 모인 프로젝트 그룹 ‘이야기청’의 전시에 참가했다. 이야기청은 시각예술, 공연예술, 구술사 등 다양한 분야 작가들이 지역과 세대에 관심을 갖고 노년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모임이다. 2017년 서울 성북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성북구를 시작으로 매년 각기 다른 작가들로 흐름이 이어져왔고, 영등포구와 송파구, 전북 고창으로 확대됐다. “노인과 청년 사이에 사라져가는 관계성, 낯선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더 깊숙이 지역의 틈으로 파고든다”는 게 총괄디렉터 육끼(황지원)의 설명이다.

쓸모나 효용의 관점에서 보면 나이 든 몸은 생산 가능성을 상실한, 그래서 필요 없는 몸이다. 하지만 이야기청은 이를 거꾸로 생각한다. 나이 든 노인일수록 오히려 삶의 경험과 이야기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젊은 작가와 노년들이 생애사 작업을 함께해내가며 나이듦에 대해 탐구하고, 세대 간 장벽도 허물어진다.

조주혜 작가(맨 왼쪽)가 지난해 서울 성북구에서 열린 ‘주름의 숲’ 전시 당시 어르신들에게 직접 춤 동작을 가르치는 모습. 한국무용을 전공한 그는 퍼포먼스를 통해 노년의 삶을 풀어냈다. 조주혜 작가 제공

조주혜 작가(맨 왼쪽)가 지난해 서울 성북구에서 열린 ‘주름의 숲’ 전시 당시 어르신들에게 직접 춤 동작을 가르치는 모습. 한국무용을 전공한 그는 퍼포먼스를 통해 노년의 삶을 풀어냈다. 조주혜 작가 제공

한국무용을 전공한 조 작가는 성북구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고, 몸의 주름을 퍼포먼스로 함께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 조 작가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저랑 춤추실래요’라고 하면 당연히 이상하게 볼 수밖에 없다.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무용을 알려드리기 전 어르신들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몇시간이고 나누면서 친밀감을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나이 든 몸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표현하는 기회는 많지 않다. 10대부터 90대까지, 선 9개를 그려놓고 시기별 감정과 생각을 떠올리며 그 위를 걸어보라고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조 작가는 “춤을 잘 추고, 못 추고를 떠나서 어르신이 겪은 인생의 순간순간이 발걸음으로 드러나더라. 타인의 삶과 교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주혜 작가의 퍼포먼스형 전시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숲속에서 나무를 만져보고 있다. 조 작가는 “무릎의 주름이 나무의 나이테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고 여기서 동작을 착안했다”고 말했다. 박희수 작가·성북문화재단 제공

조주혜 작가의 퍼포먼스형 전시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숲속에서 나무를 만져보고 있다. 조 작가는 “무릎의 주름이 나무의 나이테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고 여기서 동작을 착안했다”고 말했다. 박희수 작가·성북문화재단 제공

지난해 서울 성북구 오동숲속도서관에서 열린 ‘주름의 숲’ 전시에는 조주혜 작가 외에 남정근,  모유진 작가도 함께 했다. 사진은 어르신 정희숙씨의 눈을 그린 남 작가의 회화 작업이 도서관에 설치되어 있는 모습. 남 작가는 “어르신들이 긴 세월 쌓은 다양한 경험은 눈에 반영돼 있다. 눈과 주름에 담긴 삶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희수 작가·성북문화재단 제공

지난해 서울 성북구 오동숲속도서관에서 열린 ‘주름의 숲’ 전시에는 조주혜 작가 외에 남정근, 모유진 작가도 함께 했다. 사진은 어르신 정희숙씨의 눈을 그린 남 작가의 회화 작업이 도서관에 설치되어 있는 모습. 남 작가는 “어르신들이 긴 세월 쌓은 다양한 경험은 눈에 반영돼 있다. 눈과 주름에 담긴 삶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희수 작가·성북문화재단 제공

이렇게 젊은 작가들과 소통하면서 자신의 나이 든 몸을 새롭게 발견하는 노년층의 만족도도 높다. 정희숙씨(69)는 “무용을 하면서 처음 해보는 동작이 많았는데, 인생을 다시 돌아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살면서 내 무릎을 자세히 들여다볼 일이 뭐가 있겠어요. 사진을 찍었는데 무릎뼈가 너무 예쁜 거예요. 구부렸다 폈다 할 때 무릎 모양을 보니까 아직 싱싱해서 고맙기도 하고, 참 예쁘기도 했죠.”

조 작가는 “외모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늙은 몸, 주름이 있는 몸은 안 좋다는 인식이 명확하다. 나 역시 있는 그대로의 몸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어르신들은 그게 숨길 게 아니라 내 흔적이자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더라”면서 “얘기를 들으면서 나 역시 앞으로 스스로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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