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허리’ 서지원 단장 “몸 부딪치며 다른 점 알게 됐죠”

김경학 기자

③ 다름을 알려준, 장애가 있는 몸

2003년 설립된 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

차별·피해 서사 아닌 다른 방식 시도

20년 넘게 이어지는 연대 비결은 ‘갈등과 소통’

서지원 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 단장(오른쪽)이 지난달 서울 강동구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서지원 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 단장(오른쪽)이 지난달 서울 강동구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배우분들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우셨죠? 오른쪽, 왼쪽으로 돌리고, 누워서 편안하게 힘을 느껴볼게요. 허리가 바닥에 잘 닿았는지 느껴보고, 허리가 편안해지기 위해 옆에 있는 도구를 쓰거나 다리를 세우셔도 좋습니다.”

지난달 21일 서울 강동구 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춤허리) 연습실에서는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예행연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과정공유회로 이름 붙인 이 공연은 ‘이동’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여기서 이동은 ‘움직임(移動)’뿐 아니라 ‘다르게 움직임(異動)’, ‘다르면서도 같음(異同)’ 등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서지원 단장(44)을 포함한 배우 4명은 혼자 드러눕거나 서로의 몸에 기대기도 했다. 한 배우가 몸을 움직여 새로운 자세를 잡는 데 애를 먹자 비교적 이동이 자유로운 발달장애 배우가 다가가 도움을 줬다.

공연은 기승전결이나 이야기 전개가 있는 극이라기보다는 몸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실험극에 가까웠다. 흔히 장애가 있는 몸은 차별이나 피해를 중심으로 이야기되는데, 이들은 장애가 있는 몸에 대한 표현과 논의가 더 다양해지길 바라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서 단장은 “활동지원사와의 거리 두기, 의학이나 전문가에 의해 관찰되는 몸이 아니라 현재의 내 몸과 그대로 대면하는 감각을 이야기하고 싶다”면서 “서로 퇴화하지 않기 위해 평소 안 쓰던 살, 근육, 뼈를 이동시키는 과정을 무대로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대에서 가장 눈에 띈 건 벽에 걸린 커다란 ‘대본’이었다. 무대 가장자리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글자로 써놓았다. 서 단장은 대본을 몸으로 외우고 있다고 했다. “발달장애여성 배우가 활자에 익숙하지 않아 대사를 읽기 어려워요. 큰 종이에 대사를 적어 벽에 붙이고 순서대로 소리 내 읽고, 몸을 움직이면서 장면을 외우고 있어요.”

춤추는허리 배우들이 지난달 서울 강동구 연습실에서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무대 뒤 벽에는 커다란 글씨로 대본을 써 붙여놓았다. 성동훈 기자

춤추는허리 배우들이 지난달 서울 강동구 연습실에서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무대 뒤 벽에는 커다란 글씨로 대본을 써 붙여놓았다. 성동훈 기자

춤허리는 2003년 설립됐다. 뇌병변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진 서 단장은 설립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핵심 구성원이다. 교회에서 알게 된 지인이 연극을 한다는 이야기에 우연히 공연을 보러 갔다 장애여성들의 이야기에 매료돼 입단한 지 어느덧 20년이 됐다.

서 단장은 갓 극단 활동을 시작했을 때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몸을 갖고 있었다. 무릎으로 연습실 구석구석을 누비는 그를 보고 극단 연출은 ‘저렇게 빨리 다니는 장애인은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랬던 몸도 40대가 된 뒤부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1년 전부터는 무릎으로 이동하는 게 많이 힘들어져 자주 넘어진다. 서 단장은 자신의 몸의 변화에 대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뇌병변장애 특성상 몸이 휘고 있어요. 뇌병변장애인 대부분 목 디스크가 있는데 저도 목 디스크가 오고, 입으로 펜을 무니까 치아도 많이 안 좋아진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몸이란 건 계속 변하니까요.” 서 단장은 입으로 조이스틱을 물어 전동휠체어를 운전하고, 문서 작업할 때는 입으로 펜을 물어 자판을 누른다.

춤허리 활동은 서 단장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히 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서 단장은 “춤허리 활동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사회가 제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면서 “가족이 들어주긴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저를 배제하고, 보호한다는 이유로 시도하지도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서 단장은 춤허리 활동을 통해 자신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갇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16년 전 발달장애를 가진 배우와 처음 만났을 때였다. 서 단장은 그 배우가 발달장애가 있기 때문에 대사를 외우지 못하고, 자신의 요구 사항을 이해하지도 못하리라 생각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지 못하고 가능한 한 친절한 말투로 듣기 좋은 말만 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속앓이하던 서 단장은 모두가 함께 모여 속내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그때야 자신이 갖고 있던 건 발달장애에 대한 편견임을 알게 됐다.

“사람들이 저를 차별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제가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다는 건 그때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웃긴 건, 그 배우도 지체장애여성에 대해 편견으로 차별하고 있었단 겁니다. ‘언니들은 못하니까 내가 도와줄게’ 이런 식으로 생각한 거였죠. 서로서로 차별하고 있었던 거예요(웃음).”

지난달 서울 강동구 춤추는허리 연습실 벽에 공연에서 상영될 영상이 투사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지난달 서울 강동구 춤추는허리 연습실 벽에 공연에서 상영될 영상이 투사되고 있다. 성동훈 기자

현재 춤허리에 소속된 배우는 6명, 스태프까지 포함하면 10명가량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기획이나 연습 단계에서 의견을 주고받다 자주 싸운다. 화를 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소리를 지르거나 울기도 한다. 구성원 간 이견을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리더 입장에서는 서로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게 오히려 나을 때가 있다. 아예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웅크려 있는 게 더 골치 아픈 일이다. 서 단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때로는 서로 아무 얘기도 안 할 때가 있어요. 진짜 그때는 환장하겠어요. ‘왜 말을 안 하지? 어떤 마음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죠.”

그렇게 가만히 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침묵 속에서 서로에게 더 주목하게 되고 몸을 부대끼며 서로 다른 몸에 대해서도 점차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서 단장은 다른 이와의 소통에서 중요한 건 장애 유무가 아니라 얼마나 상대에게 집중하는지라고 강조했다.

“연기하기 위해선 서로 몸을 계속 부딪쳐야 해요. 몸을 부딪칠 때나 상대를 밀 때 과하면 안 되니 어느 정도까지 힘을 줘야 하는지 알기 위해선 서로 소통을 해야죠. 사실 소통할 때 언어장애는 문제가 아니에요. 서로에게 얼마나 집중하고 들으려 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언어장애가 없다고 해도 집중하지 않으면,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통이 안 되거든요.”

서지원 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 단장이 지난달 서울 강동구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예행연습을 하며 웃고 있다. 성동훈 기자

서지원 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 단장이 지난달 서울 강동구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예행연습을 하며 웃고 있다. 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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