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0년 넘게 약 챙겨 먹지만…괜찮다 말하는 아픈 몸들

④ 이대로도 괜찮은, 아픈 몸

류마티스 관절염 등을 가지고 있는 이혜정씨가 지난달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기 위해 봉투를 뜯고 있다. 성동훈 기자

류마티스 관절염 등을 가지고 있는 이혜정씨가 지난달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기 위해 봉투를 뜯고 있다. 성동훈 기자

흔히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건강은 최선을 다해 추구해야 하는 절대 가치이자 선인 것이다. 반면 질병은 비극의 시작으로 예방이나 치료를 통해 극복해야 하는 악으로 여긴다.

질병이 없는, 아프지 않은 몸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같은 명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완치가 힘들거나 불가능한 질병을 가진 이들은 다르다. 국내에서는 매해 5만여명의 희귀 난치질환자가 새로 등록된다. ‘건강이 최고’라는 프레임은 물리적 통증에 더해 사회적 통증을 가중한다. ‘몸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천벌 받은 것’ 등 가족이나 지인, 주변의 반응은 아픈 몸을 가진 이들의 자책에 무게를 더한다.

경향신문 기획 ‘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 4회는 만성 희귀 난치질환 등으로 평생을 질병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픈 몸들의 이야기다.

질병은 이들의 삶을 크게 바꿨다. 자책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고, 가족이나 친구·동료로부터 상처받기도 했다. 직장을 여러 번 옮길 수밖에 없었고, 인간관계를 단절시켰다. 1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매일 약을 챙겨 먹어야 하고, 정기적 통원 치료도 받아야 한다. 그래도 이들은 괜찮다고 말했다. 다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회의 아픈 몸들이 조금이라도 사회적 통증을 덜 겪기를 바랐다.

연대에서 찾은 ‘아픈 몸’의 언어

류마티스 관절염 14년 차인 이혜정씨가 지난달 복용하고 있는 약을 설명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류마티스 관절염 14년 차인 이혜정씨가 지난달 복용하고 있는 약을 설명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직장인 이혜정씨(43)는 2010년 일 년 내내 감기를 안고 살았다. 직장 근처 이비인후과를 거의 매일 찾았다. 어느 날부터 무릎이 붓고 통증이 시작됐다. 단순 감기가 아닌 것 같다며 정밀 검진을 권했다. 대학병원에서는 일시적 증상으로, 치료받으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몇주 후 무릎뿐 아니라 손가락도 붓기 시작했다. 다시 찾아 검진한 결과 ‘류마티스 관절염’이라고 했다. 1년가량 병원을 오갔던 이씨는 이때 처음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됐다.

면역계 이상으로 면역체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류마티스 관절염은 손이나 손목·발목 등 관절에 염증이 생기는 만성 질환이다. 증상으로는 관절이 붓고 통증이 발생한다. 염증이 지속되면 관절 모양이 변형되고, 관절을 움직이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병명은 들어봤지만, 어떤 병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이씨는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보다 충격을 받았다. 손가락이 휘어진 이미지와 함께 ‘무서운 병으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치료제도 없다는 걸 알게 된 이씨는 절망감에 빠졌다.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 ‘완치되지 않는 병이지만, 관리를 잘하면 호전될 수 있다’는 의사의 설명 중 후자만 받아들였다. 본가에서 마주한 가족의 반응은 이씨의 고통을 더했다. 완치될 것이라 굳게 믿는 어머니 앞에서는 힘든 내색조차 할 수 없었고, 아버지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딸이 이런 병을 갖게 됐냐’며 자책과 한탄을 털어놓았다.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통증은 몸에 있는 모든 관절을 옮겨 다녔다. 나중에는 목까지 통증이 올라왔다. 이씨는 “손가락 통증으로 자판을 치는 것도 힘들었고, 심할 때는 화장실 문고리를 돌리지도 못하고 변기 레버도 내리지 못할 정도였다”면서 “용변을 보고 한참 이따 통증이 가라앉으면 레버를 내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집안에서는 통증으로 힘들었다면, 집밖에서는 사회적 고통이 이씨를 힘들게 했다. 직장 동료에게 자신의 질병과 증상, 고충을 이야기했지만 이해해주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외관상 크게 드러나는 증상이 없다보니 ‘꾀병’으로 여긴 이들도 있었다. 동료에게 마음의 상처, 오해까지 받은 이씨는 직장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이직한 곳에서 또 비슷한 상황이 생겼다. 이씨는 타인이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기대를 점차 포기했다. 이씨는 “제 몸 안은 전쟁이고 통증이라는 엄청난 지옥 속에 있었다”면서 ”제 상태에 대해 충분히 얘기해도 ‘나를 못 믿는 건가’ 그런 생각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만난 이씨에게 ‘요즘은 몸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이씨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연골이 다 닳아 예전처럼 그렇게 아프진 않아요. 3년 전쯤 손목 부기가 줄어 의사 선생님에게 나아진 거냐고 물어보니 염증이 생길 연골이 없어져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이씨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아픈 몸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계기는 줄어든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질병과 함께 춤을’이라는 모임 덕분이었다. 이 모임에서 이씨는 자신처럼 질병을 가진 몸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각자 가진 질병을 이야기하고 글로 쓰며 자신의 몸을 객관화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됐다. 모임에서 얻은 ‘아픈 몸을 이야기하는 언어’로 직장 동료와 소통해 일과 통원 치료를 원활히 병행하고 있다. 그는 “제가 겪은 어려움을 돌아보니 아픈 몸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대화를 포기했기 때문이었다”라면서 “장애나 성평등은 이야기도 많이 하고 교육도 하지만, 질병은 사회적 이해가 굉장히 낮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질병 당사자들의 모임 ‘질병과 함께 춤을’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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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게 죄인 세상에, 질병과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 | 몸 EP.02

“바이러스가 아닌 사람”

HIV 감염인 상훈씨(활동명)가 지난달 서울 경향신문사 본사에서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HIV 감염인 상훈씨(활동명)가 지난달 서울 경향신문사 본사에서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올해로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 15년 차인 상훈씨(36·활동명)는 지금 자기 몸과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 바이러스 억제 치료제를 먹고, 3개월마다 병원에서 검진을 받는다. 그 결과 면역 수치는 ‘평범한’ 수준으로 유지 중이다.

HIV는 면역 체계를 파괴하는 바이러스다. 흔히 알고 있는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지만, HIV에 감염됐다고 모두 에이즈로 진행되는 건 아니다. 투약 등으로 면역 수치를 유지하면 에이즈로 진행되지 않는다. 에이즈로 진행해도 최근에는 충분히 관리할 수 있어 전문가들은 만성 질환으로 분류한다. HIV가 감염을 일으키려면 노출된 체액에서 바이러스양이 감염을 일으키기에 충분해야 하고, 혈류로 들어가야 한다. 이 때문에 바이러스양이 충분히 검출되지 않으면 감염력도 없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잘못된 정보로 막연한 공포와 편견이 강한 질병이다. HIV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상훈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투경찰로 군 복무한 상훈씨는 2010년 전역했다. 전역 다음날 우편물 한 통을 받았다. 발신지는 집 근처 보건소였다. 아버지는 무슨 일인지 빨리 알아보라고 그를 재촉했다. 상훈씨는 통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HIV 양성이래요.” 전역 3개월 전 정기 검진을 받았고, 양성으로 나온 검진 결과가 이날 통보된 것이다.

이때부터 상훈씨는 자기 몸을 ‘더러운 몸’ ‘시한부의 몸’ ‘바이러스’라고 생각했다. 두려웠던 그는 인터넷 포털 검색 창에 ‘완치하는 방법’을 여러 번 두드렸다. 상훈씨는 “감염 사실을 드러내면 다른 사람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까’, ‘밥을 같이 먹어줄까’, ‘내가 쓴 물건을 써줄까’ 이런 기본적이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상훈씨 역시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없다. HIV 감염 사실은 혈액 검사를 하거나 복용하는 약을 확인하지 않는 한 인지하기 어렵다. 세간의 잘못된 정보, 오해로 감염 사실을 밝히는 건 쉽지 않지만 그는 굳이 숨기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을 통해 감염 사실을 밝히기도 했고, 연애 상대에게는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다만 감염 사실 밝히기 불안해질 때도 있다. 불이익이나 차별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자료를 보면, 감염인들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거부당하거나 수술 순서가 밀리는 등 차별을 받기도 한다. 상훈씨의 경우, 수술받기로 한 병원에서 그의 감염 사실을 안 뒤 식기와 환자복 등 그가 쓴 모든 것을 폐기해야 한다며 추가 비용을 요구하기도 했다. 상훈씨는 “잘 관리하고 있다고 얘기했지만 막무가내였다”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고 과연 내가 아플 때 병원에서 적정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상훈씨는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몸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HIV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지만 온라인 감염인 커뮤니티에서 구체적인 정보를 얻었다.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감염인, 비감염인과 마주하는 시간이 쌓이며 자기 몸으로도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약을 복용한 지 3개월쯤 지났을 때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자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제가 질병이 아닌 ‘사람’으로, ‘감염인으로서 잘 살아갈 수 있구나’를 처음 느꼈다”고 말했다.

상훈씨는 지금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 커뮤니티 ‘알’에서 일한다.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감염인 상담, 인권 침해 상황에 필요한 대응 지원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상담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잘 살고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때라고 한다. 상훈씨는 “제가 ‘감염돼도 괜찮다’ ‘잘 살 수 있다’ ‘우리도 그런 과정을 겪고 잘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아픈 몸과 건강한 몸을 모두 이해하는 몸

류마티스 관절염 14년 차인 이혜정씨가 지난달 자신의 손목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류마티스 관절염의 영향으로 2~3년 전 연골이 다 닳아 손목을 바깥쪽으로 꺾을 수 없다고 했다. 성동훈 기자

류마티스 관절염 14년 차인 이혜정씨가 지난달 자신의 손목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류마티스 관절염의 영향으로 2~3년 전 연골이 다 닳아 손목을 바깥쪽으로 꺾을 수 없다고 했다. 성동훈 기자

대학원생 안희제씨(29)는 인생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다고 헀다. 계획이라고 해봤자 향후 2년 정도를 고민해본 게 가장 긴 기간이다. 크론병 때문이다. 크론병은 소화관에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장 질환이다. 원인도 불명확하지만, 향후 어떤 합병증으로 전개될지 불분명한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원 진학도 처음부터 생각한 게 아니었다.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둘 다 지원했다. 대학원은 합격했지만, 취업은 매번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다. 안씨는 “군 면제를 받았는데 면제 사유를 적어야 했다”며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실제 다 떨어졌다. 학과와 성적만 보면 서류 전형에서 탈락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는 경우가 잦은 안씨는 항상 불안을 안고 산다. 약속 당일 약속을 취소하는 때도 적지 않다. 안씨는 “전날 무리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아침에 못 나갈 것 같은 상태가 되기도 한다”며 “크론병을 갖기 전에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무리하다 과호흡이 와서 쓰러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안씨는 재수생 시절이던 2014년 크론병 진단을 받았다. 진단 직후 ‘왜 하필 나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고등학교 때까지 배드민턴 선수로 활약했을 정도로, 운동을 즐기던 그였다.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안씨는 자습실에 앉아 병원에서 받은 크론병 관련 책자만 2주 내내 정독했다.

안씨의 삶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해 재수 학원이 제공하는 도시락을 먹지 못했다. 따로 밥을 챙겨 먹던 안씨는 친구들과 서서히 멀어졌다. 안씨는 “당시에는 두통 관절통도 심해 진통제를 먹어야 했다”면서 “진통제를 먹어도 나아지지 않아 조퇴하는 날이 많아 친구들과 가까워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자신의 몸을 “설명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 몸”이라고 정의했다. 크론병 역시 겉으로 증상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안씨는 “크론병 증상 중 하나인 피로나 통증 같은 경우는 설명하기 더 어렵다”면서 “설명을 해도 ‘요즘 누구나 다 피곤해’ 같은 식의 얘기가 돌아온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외향적이던 안씨는 대학에 입학한 뒤부터는 여럿이 함께하는 자리가 불편해졌다. 술자리에서는 매번 술을 안 마시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고, 자신의 몸 상태에 관해 설명하면 사람들이 과도하게 조심성을 보이거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안씨는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 나가도 가까워지는 느낌을 못 받다 보니 점점 그런 자리는 안 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안씨는 지금도 매일 면역 억제제를 3알씩 먹는다. 덕분에 일상적 증상은 없지만 면역이 약한 상태라 감염성 질환이나 염증이 자주 생기는 편이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며 아픔과 주변 시선에도 익숙해졌다. 그는 자신이 질병을 수용했다기보다 체념에 가깝다고 했다.

“치료되지 않고, 설령 치료된다고 하더라도 질병이 남긴 흔적은 영원히 남아 있으리라 생각해요. 수용도 부정도 아닌 체념에 가깝죠. 한편으론 단단해진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안씨는 자신이 “아픈 사람 중 꽤 건강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라면서 아픈 사람들과 건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혜정씨가 복용 중인 약. 성동훈 기자

이혜정씨가 복용 중인 약. 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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